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은 35분간의 여행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지독한 우울함에서 찬란한 아름다움으로의 여행,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아름다운 선율과 피아노를 부술 것 같은 강렬함

그리고 그 모든 선율, 하나 하나가 몸으로 들어오며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

뒤이어 온 몸에 퍼지는 지독한 우울함과 고독함. 이를 넘어서는 찬란한 빛까지

 

처음 듣는 사람들조차, 대부분이 단번에 빠져들 정도로 굉장히 매혹적인 선율을 지닌 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마치 고통을 겪는 인간이 고난을 뛰어넘는 모든 과정을 35분 안에 모두 새겨놓은 작품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입체적인 감정이 담겨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탄생 뒤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은 35분간의 여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러시아 출신인 라흐마니노프는 굉장한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그가 태어날 당시에는 차이콥스키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그의 할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가였기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일류 음악 교육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머지않아 아버지가 실직하며 가문이 몰락하고, 부모님의 이혼과 함께 그의 불행이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 파탄은 그를 음악 학교에 입학하게 만들었다. 당시 귀족 교육을 하는 군사 학교는 수업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악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장학금을 받을 만큼 실력은 있었지만, 음악 외의 수업에서는 모두 낙제하며 퇴학위기 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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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라흐마니노프'

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퇴학은 면하게 되고, 라흐마니노프는 뛰어난 피아노 실력으로 순탄하게 피아니스트의 삶을 걷게 된다. 아주 잠시 동안...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였지만 그는 곧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작곡가로서의 삶에 대한 회의는 물론이고 연주자로서의 삶에도 염증을 느끼며 완전히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의욕상실에 빠진 그의 증세는 점점 심해지며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불행스럽게도 라흐마니노프는 이 우울증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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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젊은 시절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찾아온 우울증, 그를 3년 동안 괴롭혔던 이 병마로 인해 이 시기동안 라흐마니노프는 그 어떠한 음악적 영감도 얻지 못하고 창작 활동조차 못하게 된다.

 

우울증이 점차 심해지는 것에 심각성을 느낀 그는 이제 우울증을 털어 내고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낀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때 라흐마니노프는 주위의 권위로 '니콜라이 달' 박사를 만나게 되는데, 박사는 아마추어 비올라 연주자이자 열광적인 음악 애호가였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음악이라는 교집합 때문이었을까?

 

치료가 시작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의사와 환자 관계 이상의 교감이 이루어졌고, 박사의 정성과 집념의 치료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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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식 치료법으로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했던 '니콜라이 달' 박사

그런데 치료 방법이 굉장히 독특했다.

 

최면과 암시를 통한 치료였는데,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거의 매일 이 방법을 계속해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세르게이, 자네는 새로운 협주곡을 쓸 것이야. 최고의 협주곡을 쓸 거야"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최고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거야!"

 

그런데 암시를 통한 치료는 이 위대한 곡의 씨앗이 된다.

 

믿기 힘들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이 방법으로 완치됐다고 전해진다. 3년이 걸렸지만 그는 다시 일어선다. 어쩌면 박사는 그에게 치료보다 마음 속 상처를 보듬어주며,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라흐마니노프는 창작 활동에 몰두했고, 놀랍게도 박사의 암시는 정말 현실이 된다.

 

새롭게 태어난 라흐마니노프의 창작욕은 불붙었는데, 병마에서 이긴 그가 제일 먼저 작곡한 곡이 바로 이 장대하고 강렬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곡을 자신을 치료해준 은인인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헌정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다양한 매력이 녹아있는 이 작품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지만, 당시 대중들에게도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 곡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곡을 두고 '깊이 없는 영화음악', '달콤함과 같은 인간의 얇은 매력에 의존하는 사탕같은 곡'이라고 혹평했다.

 

러시아적이고 민족적인 것만을 최고의 예술로 추구하던 당시에 '낭만'을 추구했던 그의 음악은 시류에 벗어난 이단아의 작품으로 평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유의미성과 매력은 여전히 유효했고, 세계 각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울려퍼지게 된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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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를 딛고 위대한 작품을 창작한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유명 피아니스트라면 한 번쯤 레퍼토리로 삼을 만큼 발매 된 음반또한 굉장히 많다.

 

가장 유명하고 희대의 연주로 손꼽히는 것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피아노 협연과 스타니슬라프 비슬로키가 지휘한 앨범이다.

 

강렬하고 선명하고 거대한 피아노 타건과 함께, 바르샤바 국립 관현악단의 거침없는 활시위도 굉장히 매력적이고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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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명연, 리히터와 비슬로키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물론 미국 연주자인 바이런 야니스의 연주도 이에 필적할만큼 유명하고 매력적이다.

 

바이런 야니스는 호로비츠가 최초의 제자로 삼은 피아니스트로 알려져있다.

 

그의 연주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막힘없이 매끈하지만 그럼에도 강렬하니, 마치 '모순되는 아름다움'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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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바이런 야니스'

비평가들의 혹평이야 어쨌든 이처럼 수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빛나도록 위대한 녹음을 많이 남겼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향한 대중들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고 너무나 슬프게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라는 숲이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작품이라는 '나무'들을 가리기 시작한다.

 

대중들의 기대는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같은 선율 뿐 이었고, 그의 다른 작품에서 기대했던 선율이 확인되지 않으면 냉정하고 매정하게 라흐마니노프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라흐마니노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나아간다.

 

하지만 대중들의 외면이 심해지고, 아버지의 사망을 계기로 그는 작곡보다 연주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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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작품도 자주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연주 활동에 전념했지만, 향수병으로 힘들어 했으며 또 다시 우울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비극적이게도 그는 결국 암에 걸리고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숨긴 체 마지막 은퇴공연을 갖는다.

 

자신의 운명을 예상이라도 한 듯,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장송 행진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이 끝난 지 6주가 지나고, 라흐마니노프는 운명한다.

죽는 날까지 연주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마지막 소원은 이룬 셈이다.

 

병마를 딛고 일어난 라흐마니노프가 탄생시킨 희대의 명작, 하지만 그를 옭아매기도 했던 작품, 피아노 협주곡 2번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은 그였기에 탄생시킬 수 있던 명작이 아닐까?

[디아티스트매거진=김성현]

2015.07.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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