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예술계에 폭탄을 던지다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예술계에 폭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는 ‘아트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에 걸맞게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 위에 그림을 그리고, 대영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 도둑 전시를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연일 화제를 일으킨다. 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지 그 유별난 행보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로 세상에 돌직구를 날려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뱅크시라는 태그네임 외에는 그 어떠한 신상정보도 밝혀진 바가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영화를 만들었다. 일명 세계최초스트릿아트테러무비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원제: Exit Through the Gift Shop)’이다.

“I mean, it's not ‘Gone with the Wind’, but there's probably a moral in there somewhere.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로맨스는 아니고 ‘어떤 길이 옳은 길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단순히 스트릿 아트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일 거라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뱅크시와 다른 스트릿 아티스트들이 아닌 티에리 구에타라는 촬영광이다. 온종일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을 촬영한다는 점만 빼면 옷가게를 운영하며 사는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이던 티에리는 우연히 자신의 사촌이 스트릿 아티스트인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후로 스트릿 아트에 매료된 티에리는 카메라를 들고 스트릿 아티스트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리처드 홀리의 ‘Tonight the streets are ours’를 배경으로 많은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 영화는 계속해서 티에리와 함께 그가 스트릿 아트 작품과 작업 방식을 담아내는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뉴욕에서 열린 뱅크시의 전시회 “Barely Legal”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로 스트릿 아트가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곧 세계적인 스트릿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기 시작하고, 뱅크시는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뱅크시는 이제 사람들에게 스트릿 아트에 대해,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줄 때가 되었다며 티에리에게 스트릿 아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라 제안한다. 하지만 티에리가 만들어낸 것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이에 뱅크시는 자신이 대신 영화를 만들 테니 티에리에게는 그동안 예술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한다. 그 사소한 제안은 티에리의 인생뿐만 아니라 현대미술계, 그리고 스트릿 아트 씬 모두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예술계에 폭

“Most artists spend years perfecting their craft finding their style. Thierry seems to have missed all those bits. I mean there's no one quite like Thierry. Even if his art looks quite a lot like everyones else's. :보통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스타일을 찾고 완성하기까지 수년이 걸리지만, 티에리는 그 모든 과정을 넘어버린 것 같이 보여요. 그의 작품이 다른 아티스트 작품과 비슷해 보이더라도, 정말 티에리만큼 빠른 사람은 못 봤어요.”

사실 뱅크시가 티에리에게 예술을 한 번 해보라는 말은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동안 누구에게나 예술을 할 것을 권유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뱅크시의 제안은 티에리는 가슴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티에리는 무모한 도전을 하기로 했다. LA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개인전을 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리곤 자신의 돈과 시간, 열정 그 모든 것을 쏟아 붓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빈티지 옷가게를 운영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스트릿 아트에 빠져 아티스트들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하고, 뱅크시의 권유 한 번에 시작하게 된 티에리의 대규모 개인전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의 개인전은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고, 티에리는 하루아침에 미술계의 엄청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티에리는 사실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엄청난 천재였던 것일까? 사실 티에리의 작품은 뱅크시를 비롯한 다른 아티스트들, 심지어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에게마저 지독한 혹평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만의 정체성이 없는 기존 작품의 짜깁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웃음을 받으며, 모두가 실패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 선착순 200명에게 제공할 200장의 각기 다른 자신의 작품을 위해 똑같이 복제된 200개의 그림 위에 아무렇게나 물감을 흩뿌리며 만드는 장면이나, 자신의 작품도 기억하지 못하고, 전시회 시작 몇 시간 전에 빈 벽에 작품을 아무렇게나 걸으라고 지시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티에리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I came up with the idea that the whole movement of art is all about brainwashing. Obey is about brainwashing. Banksy is about brainwashing. So I use MBW, and I am Mr. Brainwash. :모든 예술의 움직임은 세뇌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오베이도 세뇌와 관련돼 있고, 뱅크시도 세뇌와 관련돼 있고. 그래서 ‘M.B.W’라는 약자를 만들었어요. 저는 Mr. Brainwash(세뇌)입니다.”

티에리의 작품과 전시회는 그가 팔던 구제 옷들과 그의 옷가게와 매우 비슷하다. 과거 티에리는 ‘50달러에 산 옷들을 봉제선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으면 디자이너 상품이라 하고 400달러에 되팔면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그는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이건 마치 금광 같아요. 그냥 스프레이로 뿌리고 ‘이건 얼마예요?’ 하면, 만 팔천 달러! 만 이천 달러!” 그는 매장의 손님들에게 옷을 권유하고 팔 듯 자신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판매한 셈이다. 적어도 그는 타고난 아티스트는 아닐지 몰라도, 타고난 장사꾼임은 틀림없다.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예술계에 폭

아티스트로서 티에리가 거둔 엄청난 성과에 허탈한 기분이 드는 한편, 그가 아티스트로써 지은 ‘Mr.Brainwash’라는 이름이 그의 상황에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가 시작하기 전 수많은 이들은 모두 잔뜩 기대하고 왔다며 하나같이 들뜬 얼굴을 하고 있다. MBW는 그 전시회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작품 활동을 한 적이 없는 신인임에도, 전시장 입구부터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티에리의 부탁을 받은 뱅크시를 포함한 수많은 스트릿 아티스트들의 홍보와 LA Weekly의 기사, 그리고 전시장의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함에 압도된 관객들은 이미 스스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기 전에 대단할 것이라 세뇌당해 버렸다. 만일 그가 정말 이를 의도하고 자신을 스스로 Mr.Brainwash라고 부르고, 그에 맞는 작품 활동과 전략을 세웠다면 충분히 천재라고 불릴 만하다. 진실은 티에리 자신만이 알겠지만, 그의 언행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I always used to encourage everyone I met to make art. I used to think everyone should do it. I don't do that so much anymore. :저는 항상 제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예술을 해보라고 말했었어요. 모두가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젠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영화의 제목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항상 미술관을 나서기 위해서는 선물가게를 지나야 하는, 어느 순간부터 지나치게 돈을 좇아가며 지나치게 상업화된 미술계를 비꼰 제목이다. 심지어 그 전에 생각해두었던 제목은 ‘쓰레기 같은 작품을 바보에게 팔아넘기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뱅크시는 그동안 그래피티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고발해왔고, 이 영화 또한 자본에 휘둘려 ‘누구나’가 아닌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있게 만들어버린 현대미술계를 고발하는 그의 예술 활동의 연장선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들은 항상 불편한 진실을 꼬집으면서도 항상 유쾌하고, 기발하여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그의 테러가 기대된다.


[THE ARTIST 매거진=김소형 에디터]

2016.09.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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