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리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

백자달항아리(白磁大壺), 조선시대, 31.5x13.5x12.8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구수하고 큰 맛'  저 순백의 달항아리의 자태를 보라! 정말 밤하늘에 떠있는 보름달 마냥 둥근형에 손 뻗어 품에 안으면 가득 찰 정도로 푸짐하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째 달항아리 서있는 품새가 똑바르지 않다. 무게중심이 한족으로 기울어져서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엉덩이 불룩한 조선시대 아낙네를 떠오르게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순우 선생은 달항아리를 두고 “넉넉한 맏며느리 같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우리가 흔히 백자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그릇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약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조선왕조의 왕립가마가 위치한 사옹원의 분원인 경기도 광주에서 만들어 진 것을 말한다. 높이 40cm가 넘는 원형의 무늬 없는 그릇이다. 경기도 광주는 조선왕조 내내 관요가 위치하면서 현재 알려진 가마터만 340여개에 이르는데 특히 금사리에서 구워진 대형 그릇 중 이 달항아리가 많이 나타난다. 조선왕조 후기 영조와 정조의 치세가 이어진 18세기를 흔히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고 부를 정도로 이때 새로운 학문과 예술의 부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배경에는 농법의 발달과 제도정비를 통해 이룩한 경제적 안정이 결정적이다. 이 시기 회화에서 진경산수가 나타나 이전 회화와 큰 별점을 가진다면 단연 도자기에서는 백자 달항아리를 비롯한 유백색 혹은 설백색이라고 부르는 우윳빛의 금사리 도자를 대표적인 명품으로 꼽을 수 있다.

-한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완전한 구형이 아니다. 가운데가 불룩하니 배가 나왔다. 도자기를 만들 때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흙을 빚어 반구를 두개 만든 다음 그것을 위아래로 붙여 가운데를 이은 것이다. 그래서 완전한 구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허리 통통한 달항아리가 만들어졌다. 왕실에 납품하는 도자기인 만큼 조선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도자기 장인들이 빚은 건데 왜 정형의 도자기를 만들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의도된 '불완전함의 미학'이다.

 

달항아리를 보고 있자니 당시 조선시대의 미의식(美意識), 미감(美感)을 엿볼 수 있다. 고전주의 미는 비례와 균형 엄격한 조형질서에서 비롯되는데 조선의 달항아리는 이이런 형식주의를 따르지 않고 도공의 마음 가는 대로 도공의 손길이 가는 대로 빚어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조선 18세기, 도자공예에 자유로운 회화의 양식이 도래한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조선시대의 달 항아리, 그 것의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멋이란! 과연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이다.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

김환기, '항아리와 여인들', 1951, 출처:구글이미지

'항아리 귀신'이란 별명으로 불린 김환기는 평소에 우리나라 항아리를 사랑한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항아리 사랑은 하도 지극하여 그의 회화작품에서도 유독 '항아리' 주제의 그림이 많다. 김환기는 항아리를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싸늘한 사기지만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 내가 아름다움에 눈뜬 것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었다.” “목화처럼 따사로운 백자, 두부살같이 보드라운 백자, 쑥떡 같은 구수한 백자”

-김환기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1954, 출처:구글이미지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

김환기, '정원', 1956, 출처:구글이미지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

김환기, '매화와 항아리', 1957, 출처:구글이미지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가지', 1958, 출처:구글이미지

한국인의 구수하고 큰 맛, 백자달항아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1958, 출처:구글이미지 

완벽하고 완전하고 반듯한 것은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내 인생살이도 그런 것 아닐까? 나의 조금 모자람이 혹은 칠푼이 팔푼이처럼 때때로 넘치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가 산업 물(재화)에게 요구하는 통일성, 틀림없는 완전성을 영혼 깃든 인간에게 똑같이 요구하지 말자. 너와 내가 서로 뿜어내는 '개성'이, 각자 빚어내는 '다름'이 사회를 다양하고 더욱 풍요롭게 살찌운다.

 

자연스러운 것, 인간미 있는 것, 그래서 절대 같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위대한 작품 masterpiece 이라는 것을!

 

양효주 칼럼니스트  |  motung-e@hanmail.net

2016.01.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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