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의 박해영과 '파수꾼'의 기태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기태, 동윤, 희준은 어쩌면 지금쯤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미숙하고 치졸했던 지난 날을 떠올리고는 눈물 빠지게 웃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작은 오해는 모두의 인생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길로 이끌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시그널'의 박해영과 '파수꾼'의 기

ⓒtvn공식홈페이지

드라마 <시그널>의 인기가 엄청났다. 나 역시 본방을 사수하며 다음회를 기다리는 빅팬이었다. 극중 박해영역의 이제훈의 연기는 드라마 방영 초반 당시 어색하고 인위적이라는 악평을 받으며 드라마 자체의 평가저하로 이어질까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건과 단서에 의심을 갖고 가장 먼저 상황에 접근하는 박해영은 당연히 늘 흥분된 상태일 수밖에 없다. 프로파일러가 가질법한 정확하고 침착한 성격을 꼼꼼하게 표현한 이제훈의 방식이 나는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그의 연기가 패러디 되고 있는 것도, 그냥 즐기고 웃어 넘기면 그만이다. 그런 이제훈의 편애하에 선택된 영화가 바로 윤성현 감독, 이제훈 주연의 <파수꾼>이다.

'시그널'의 박해영과 '파수꾼'의 기

이 영화는 엉뚱하게도 성소수자의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했다. 세명의 남학생 기태(이제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의 미묘한 감정선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일텐데, 그도 그럴 것이 동윤과 희준에 비해 여학생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친구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기태의 감정선만을 따로 떼놓고 본다면 무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정 표현과 감정 전달이 서툴렀던 사춘기 남자들의 엇갈린 우정에 관한, 알고보면 매우 슬픈 영화이다.

 

영화는 불안한 10대의 심정과 행동을 반영하 듯 시종일관 핸드헬드로 주인공들을 따라다닌다. 그들이 즐겁게 뛰어 놀든, 치고 박고 싸움을 하든 언제나 그들은 불안한 위치에 처해있다. 불완전한 그들의 우정은 매우 일부의, 그러나 전부였을지 모르는 사소한 오해에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입이 간지러워, 결론을 먼저 던져 놓고 말한다면 사실 기태만큼 의리있는 친구도 없었을 것이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한다던 보영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에도 희준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 고백을 거절하고, 동윤과 몸싸움을 벌일 때도 오히려 자신을 도와주는 다른 친구들에게 화를 내며 동윤을 구해준다. 그럼에도 기태에게 돌아오는 시련은 희준의 전학과 동윤의 자퇴, 그리고 아예 세상에 없었어야 했다는 가슴 아프고 힐난한 비난뿐이었다. 기태는 끝까지 동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래서 세상에서... 사라진다.

 

기태는 성소수자는 아니었지만 동윤과 희준을 자신은 별 관심이 없는 여학생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철없는 시절의 질투가 오해를 낳고 결국, 꽤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앞서 말한 핸드헬드의 효과는 불안한 10대의 심리를 반영한 것 뿐만 아니라, 기태의 아버지(조성하)의 추적과도 연관이 있다. 예고없이 불현듯 찾아온 아들의 죽음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심리도 담겨져 있다. 영화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불안한 지난 일상과, 그 불안의 심리로 현재의 일상을 추적하고 있다. 그 추적의 결과는 지난 날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담담하게 꺼내 놓는 희준과 동윤의 이야기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오해는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 기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기태가 느꼈을 배신과 원망, 그리고 그리움과 기다림은 까맣게 바래버린 야구공에 고스란히 배어있을 뿐이었다.

'시그널'의 박해영과 '파수꾼'의 기

영화 '파수꾼' 스틸컷

영화는 그렇게 철없던, 미숙했던, 알듯 말듯 불투명했던 10대의 모습을 간결하고 아련하게 담아냈다.

'시그널'의 박해영과 '파수꾼'의 기

영화 '파수꾼' 스틸컷

<시그널>의 이제훈이 격하고 긴장된 모습을 눈에 보이게 연기했다면 <파수꾼>의 이제훈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연기했다. 사실 이것은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시그널의 박해영이 불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비교적 감정을 솔직하고 신랄하게 표현하는 인물이라면 파수꾼의 기태는 모든 감정을 숨기고 그 감정을 반대로 표현하는, 그런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켜내는 인물이다. 10대의 복잡 미묘한 그 감정을 배우 이제훈은 매우 훌륭하게 소화해낸 것이다. 파수꾼의 기태는 자신보다 약한 친구들을 거느리며 10대 특유의 허세로 무장했지만 기태는 그 누구보다 여리고 순수한 아이였다. 자신의 돋보적인 힘으로 친구들을 지켜내고 싶기도,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가정환경에서 자존심을 지켜내고 싶기도, 무엇보다 동윤과 희준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훈은 그런 기태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때 그 시절, 조금만 더 솔직하고, 조금만 덜 불안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과연 누군가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린 그냥 흔들렸을 뿐인데...그것도 모두다...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진아]

2016.03.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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