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책자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

Jeanie Tomanek, little Foxes,출처:https://www.etsy.com/shop/EverywomanArt

"나는 홀로 환상의 칼싸움을 연습하러 간다"

 

-보들레르, <악의 꽃> 중에서

그대에게. 

 

오늘도 외로운 거리, 홀로 서정 시인이 되어 인적 드문 거리를 찾아 헤매며 그대의 시적 전리품을 낚아채려는 괴물들과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을 고독한 그대에게.

 

본래 자아가 약한 자들이 늘 뭉쳐 다니는 법이에요. 자기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다수의 집단을 형성하고 패거리 문화를 만들죠. 

그래서 그 과장된 힘을 빌려 '단독'인 자아를 공격해요. 동물의 세계를 봐도 그렇잖아요. 사자와 하이에나를 봐요. 하이에나는 사자가 사냥감을 잡기를 숨죽이고 기다렸다가 사자가 사냥감을 잡는 순간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와 단독인 사자를 공격해 사냥감을 빼앗아가죠. 동물들의 습성을 보면 인간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하이에나 같은 자들에게 그대의 것을 빼앗겼다고 너무 분해할 필요 없어요. 그들이 그대에게 비열한 술수를 쓴다는 것은 그들이 정당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대를 넘어설 수 없음을, 그들의 나약함을 단적으로 자백하는 거와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그대에게서 훔쳐 간 트로피에는 순결한 영광의 빛 대신에 추잡한 얼룩만 있을 뿐이에요. 

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

Andrew Wyeth, Turkey pond, 1944

비록 그대 빼고 모든 이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겁먹고 편승할 필요는 없어요. 우매한 그들은 군중 무리 속에 안정감을 찾고 단독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그들의 세상은 그대와 내가 아는 자연의 상태가 아니에요. 그들은 사람을 학생, 교사, 회사원, 군인, 의사, 기혼자, 미혼자 등 '제도의 이름'을 부르며 ‘존재’를 구별하죠. 

세상은 그들의 세계를 두고 앎의 세계이며 논리의 세계라고 부르곤 해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은 제도 속에 기원을 둔 천편일률적 ‘보편자’로 둔갑하여 특색 있는 ‘개별자’를 깡그리 지워버리고 그들만의 고루한 원칙, 그 귀머거리 논쟁으로 ‘가능의 세계’를 위협할 뿐이에요. 이들은 상상할 수 있거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세계를 ‘안보’라는 핑계로 차단해버리죠. 고매한 단독이 위협으로 간주되어버린 사회가 된 거에요. 

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

Lesley Oldaker, The Glass Wall

어디에 '소속된다는 것' 그것은 '안위'와 '속박'을 동시에 의미하지요. 이 사회는 단체의 목표 달성이 곧 내 삶의 목적이 되고 종국에는 내가 소속된 단체의 정체성이 곧 나 개인의 정체성인 양 둔갑시켜요. 어디 이뿐인가요? 요즈음은 개인의 나르시시즘이 자신이 속한 단체의 위상, 명성, 부에 기인한 '공동체 나르시시즘'으로 이행되는 기이한 현상마저 보여요. 내가 소속된 단체가 갖는 사회적 힘과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소속 단체의 구성원으로서의 나의 위상도 동시에 드높아진다고 믿는 것이지요. 이 잘못된 확신은 나를 자발적으로 을의 위치로 강등시키고 단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기꺼이 복종시켜요. 

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

Wayne Gilbert, loneliness

인간은 무엇이든 규정지으려 하고, 정의를 내리고, 체제와 질서를 세우고, 자격을 부여하기를 좋아해요. 때문에 이 분류체계 범주에서 배제된, 분명히 존재하나 기존 분류체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포괄할 수 없는 혹은 부정하고 싶은 불쾌한 것은 아예 삭제해버려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이상한 종’이란 이름의 범주에 갇힌 이들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인간이란 직시의 대상이 아니라 ‘의미의 단독체’, ‘해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 말은 단지 몇 가지의 범주로 묶일 만큼 인간이 그렇게 간단한 종이 아니라는 거에요. 

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

Munch, Young Woman on the Beach,1896

있잖아요, 부탁이에요. 

온몸을 다 해 부딪치지 말아요. 가볍게 살아요 우리. 삶이 너무 무거우면 존재가 가벼워지는 법이에요. 

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

Norman Rockwell,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들어봐요. 고독한 그대에게 한 가지 팁을 알려줄게요. 소설가 은희경의 책<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요: ‘내가 아는 나’와, ‘타인에게 보이도록 내가 구성한 나’, 그리고 ‘타자가 보고 싶어 하는 나’ 이렇게 나를  몇 개로 나눠서 살아.

 

이건 위선이 아닐 꺼에요. 엄밀히 말하면 작위겠지요. 하지만 작위적이라 해도 이는 결코 부도덕한 일도 아니에요. 무리의 일원이 될 수 없다면 거리를 두고 관조할 수밖에요.

보들레르처럼, 나는 외로운 도시의 산

Jeanie Tomanek, Red is Nature’s Vanity, 출처:https://www.etsy.com/shop/EverywomanArt 

그러니 보들레르가 그랬던 것 처럼 무정한 거리의 외로운 산책자쯤으로 살아요. 그대는 무리 속에 침잠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면모를 더욱 잘 파악 할 수 있게 될꺼에요. 그대는 스스로 고독을 채울 수 있기에 홀로 존재할 줄도 알죠. 그 모든 유희와 그 모든 고통을 오롯이 그대의 것으로 누릴 수 있어요.

 

p. s 아! 그 열렬한 환희를 그대는 알 수 있을 테지!

 

[디아티스매거진=양효주 motung-e@hanmail.net]

2016.03.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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