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오필리 검은 피부의 성모 마리아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크리스 오필리는 나이지리아 태생의 영국 작가로서, 미술학교를 다니던 중에 영국정부의 후원을 받아 아프리카 짐바브웨를 여행하게 되었다. 이 여행을 계기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립과, 아프리카계 흑인으로서의 진정한 뿌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의 아프리카적 혈통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작품에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콜라주 회화는 유채물감과 수지, 반짝이와 코끼리 똥 등의 복합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를 비 관습적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흑인 마리아는 초현실적 배경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배경을 이루는 것은 잡지에서 오려 낸 적나라한 여성의 성기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전통적으로 성모 마리아를 수행하는 아기 천사들의 대행자인 마냥 화면 속에 통합되어 있다.

크리스 오필리 검은 피부의 성모 마리

Chris Ofili. The Holy Virgin Mary, 1996

코끼리 똥과 여성 음부는 일상 오브제 메르츠, 즉 기존 회화 재료가 아니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신성모독이라 칭한 자들은 코끼리 똥과 여성의 음부라는 더럽고 불경스러운 것으로 성모마리아를 표현했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오필리에게 있어 코끼리 똥과 여성의 음부는 아프리카의 토템에서 비롯되어 오필리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닌 더없이 성스러운 존재이다. 배설물과 여성의 성기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모든 생명의 뿌리는 흙으로 돌아가는 배설물에서 잉태되며, 모든 것들은 여성으로부터 탄생한다. 여성의 성기를 포르노로 취급하고 배설물을 가장 더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오필리 작품의 한끝밖에 보지 못하는 편견임과 동시에 본질적인 탄생 근원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필리의 성모마리아는 지금껏 고착화 되어있던 백인 중심 가치에 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흑인으로 표현된 성모 마리아를 통해 흑인에 대한 사회 문화적 편견에 도전하고, 백인 특권과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인종차별주의의 반인간적 부조리에 저항한다. 우리가 성화(icon)에서 보던 기존의 성모 마리아는 금발이나 황갈색 머리칼에 푸른 눈, 그리고 창백한 피부, 가냘픈 얼굴과 같은 북유럽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서구 문명이 얼마나 백인 중심의 폐쇄적 시각에 갇혀있는지를 시사한다. 백인 특유의 외모를 성스러운 존재와 동일시함으로서, 유럽,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편협한 사고를 대변하는 것이다.

크리스 오필리 검은 피부의 성모 마리

no woman no cry 중 확대

코끼리 똥과 흑인 여성이라는 두 가지 재료는 굉장히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코끼리 똥은 대지와 어머니의 이름, 정체성의 근원물이라는 환원의 단계를 거쳐 성스러움을 획득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의 모성적 특성을 아프리카의 민족 소재를 투사하여 표현한 것일 뿐이다. 오필리가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마리아의 성(聖)적, 신화적 이미지가 아니다. 백인우월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그 모습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흑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백인 사회에서의 흑인은 코끼리 똥보다 못한 존재였다. 자연의 환원이라는 이름으로 이해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코끼리 똥, 여성 성기와 달리, 흑인 여성이라는 재료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이 성녀를 열등함으로 종속시킨다.

 

즉 백인보다 열등한 입장에서 핍박받아온 검은 피부의 여인을 성인으로 내세워, 그들의 가치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흑인 여성은 자신의 위치를 흰 피부의 성인과 같은 선상에 올려놓기 위한, 권익 신장의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추구하던 절대적 가치를 쓰레기통으로 밀어 넣는, 그들 스스로 정립한 우월성을 ‘흑인 여성’이라는 열등한 집단으로 끌어내리는 수단이다. 백인들의 판단에 의해 이미 성스러운 것으로 당연시 여겨져 오던 성모 마리아를 격하시키고, 조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의 인종을 이용한다. 흑인이 열등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자기 학대적이고 비하적인 모습으로, 처절한 울분을 토해낸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차별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차별이란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정의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졸렬한 시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오필리는 전혀 반대의 방법을 사용한다. ‘틀림’으로 정의당한 흑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백인들은 느낄 수 없던 모욕감을 흑인으로 치환하여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껏 흑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가. 이것이 바로 차별의 증거이자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하도록 한다.

 

백인 성모마리아는 성스럽고 아름답다. 하지만 아프리카계 혈통으로 그려진 성모마리아는 ‘성모’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백인들이여, 당신들이 지금껏 숭배해 온 성모 마리아는 당신들이 조롱하던 흑인의 얼굴을 하고, 아프리카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것이 불경하다고 느껴진다면, 당신들은 흑인의 존재 자체를 불경하고 열등한 것으로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열등과 우월은 색으로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황희지 칼럼니스트  |  b140035@naver.com

2016.07.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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