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예류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인 누나들

[여행]by 디아티스트매거진

혼자 여행하면 말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는 경우 더욱 급격히 줄어든다. 외국인과 사진도 찍고 SNS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올 것이라는 자신감과 기대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 시점이 지나면 동포애가 심각해지면서 한국인만 보면 반사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내가 타이베이에 도착한 날은 타이베이에 심각한 태풍이 몰아친 다음 날이었다. 출국 전 하나같이 들었던 말은 ‘어딜가든 한국 사람이다’라는 말이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그 말에 나름 안심했다. 그러나 공항에도, 주요 역에도, 게스트 하우스에도 한국인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한국 뉴스와 신문에서 타이완을 급습한 태풍과 그 피해 규모를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한국 여행객들이 대거 여행 일정을 취소한 것이었다. 하루 전 급하게 타이완 여행을 준비한 나의 입장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었던 소식이었다.

타이완 예류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인

타이베이 시외지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해주는 허브, 타이베이 메인스테이션

어찌 되었든 반강제로 말 수가 줄어든 탓에 다소 지루하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나를 스쳐가는 두 여자의 목소리에서 친근한 언어가 들려왔다. 예류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도시락에 열중하고 있던 터라, 탑승하는 승객을 미처 확인하지 못 했는데 분명 한국 사람이었다.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말을 걸만한 거리가 없었다.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던 도중, 한 분이 말을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 분 맞으신가요?”

 

“아, 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뭣 좀 여쭤봐도..”

 

다행히 상대방이 용건이 있던 터라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화제는 길 묻기였다. 그들은 나에게 길을 물어 보고 있었다. 타이베이를 여행하게 되면 예·진·지(예류·진과스·지우펀) 코스는 거의 필수적으로 포함되는데, 최근에는 ‘택시투어’의 형태로서 비용은 비교적 높지만, 시간과 체력을 절약할 수 있는 방식이 생겨났다. 시외버스를 이용하게 되면 세 곳을 방문하는 동안 여러 환승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 소모가 클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된 경로로 빠지면 여행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대체 나는, 그리고 그녀들은 왜 시외버스를 탔는가.

 

나는 택시투어를 알고 있었지만, 혼자서 택시투어를 하기에는 비용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네 명이었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녀들은(나중에 알고보니 한참 누나들이었다) 택시투어를 모르고 있었다. 어쩐지 시외버스에 외국인이라고는 나와 그녀들 뿐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시외지역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이었다. 심지어 누나들은 구글 지도조차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누나도 없었다. 나보다 더 한 사람들이 아닌가.

타이완 예류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인

상당한 이동 시간이 요구되는 예진지 코스

말 동무가 절실했던 나에게, 정보가 간절했던 누나들에게 우리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예류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올라탔던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예류를 함께 여행하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따로 여행하고 있었고, 적어도 그 때까지 나는 ‘앞으로 남은 일정도 그렇게 되리라, 그 누나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몇몇일 뿐’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운명같은 우연이 따라주었다.

 

예류에서 지우펀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누나들을 다시 만났다. 아까와는 달랐다. 새롭게 길을 찾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만난 우리들은 서로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꼈을 터였다. 어렵사리 환승까지 하면서 지우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지우펀의 골목골목에는 태풍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제외하고는 한국사람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마치 함께 여행온 듯이, 지우펀의 명물인 땅콩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고, 일본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2001)》의 배경에서 함께 셀카를 찍었다. 함께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온 이후 서로의 일정이 달랐기에,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타이완 예류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인

시끌벅적한 지우펀의 골목길

타이완 예류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인

누나들과 함께 한 땅콩 아이스크림의 추억

타이완 예류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인

너도 나도 카메라를 꺼내 들게 만드는 지우펀의 야경

홍대입구 연남동에서 누나들을 만났다. 타이베이 여행을 마치고 2주 가량 지난 뒤였다. 누나들도, 나도 말끔한 복장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니, 서로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허둥지둥 땀을 흘려가며 길을 찾고, 먹방인지 여행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그 때를 떠올리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 이야기였다. 타이베이를 오기 전에는 어디를 여행했는지, 타이베이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는 어딜 여행할 예정인지 등등.. 이 시간들이 오히려 타이베이에서 보낸 시간들보다 기억 속에 더 진하게 남아 있다. 만약 누나들과 같은 시간대의 예류행 버스를 타지 못 했더라면, 그래서 한 마디의 대화조차 나누지 못 했더라면, 그리고 지우펀을 함께 가지 못 했더라면.. 어쩌면 나의 타이베이 여행기는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여행 이야기 중 하나로 끝맺었을지도 모른다.

타이완 예류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인

추억이 물들어 있는 지우펀의 야경

혼자 떠난 여행에서 누군가와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비록 짧은 순간들이었을지라도 어떠랴. 흔치 않은 경험이고, 값진 순간들이다.

 

[디아티스트매거진=이상석]

2016.10.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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