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의 ‘오직 나만이’

[컬처]by 원종원
투란도트의 ‘오직 나만이’

원작이 따로 있는 뮤지컬들이 있다. 아무래도 대중성이 짙은 장르다 보니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원형 콘텐츠를 재가공하거나 재해석하는 부류의 작업에 자연스레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나 연극, TV 드라마 등 엇비슷한 문화상품들에 비해 다소 높은 입장권 가격이 존재한다는 것도 익숙하지만 다시 새로운 뮤지컬 작품들의 등장에 일조한다. 기왕 시간을 들여 고가의 입장권을 사서 즐기는 것이니 낭패를 보기 싫다는 심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인기 공연으로 관객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장르는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 두드러진 사례로는 영화나 대중음악, 소설 등이 있다. 특히 무대 예술이 아닌 경우, 공연으로 다시 꾸며지는 변화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활자가 음악이 되고, 영상이 춤으로 구현되는 변화의 재미가 쏠쏠하다. 이른바 이종교배의 별스런 재미다. 역으로 동종교배도 가능하다. 이미 익숙한 연극이나 공연물을 가져와 다시 뮤지컬로 재해석을 한다. 다만 이 경우는 파격과 변화의 진폭을 크게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무대라는 구현양식이 엇비슷한데서 오는 차별화의 어려움을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과 재구성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도다. 원작을 알고 뮤지컬을 보면 더 재미있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 배경 탓이다. 얼마나 거리 두기를 효과적으로 잘 구현해냈는가가 이런 부류의 콘텐츠의 가장 일차적인 즐길 거리다.

 

오페라도 뮤지컬로 재해석될 수 있을까. 대답은 ‘물론 가능’이다. 오히려 성공 사례가 너무 많을 정도다. 예를 들자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을 베트남 전쟁에 맞춰 각색한 <미스 사이공>, ‘라보엠’을 가져다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재해석한 <렌트> 등이 대표적이다. 잘 알려진 원작에 새로운 시도를 더하는 문화산업의 원소스멀티유즈(OSMU)가 탄생시킨 재미난 실험의 결과다. 

투란도트의 ‘오직 나만이’

우리 창작 뮤지컬에서도 이런 도전이 등장했다. 얼마 전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됐던 뮤지컬 <투란도트>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야심 차게 준비해 여러 검증과정을 거쳐 서울 공연의 막을 올렸다. 이건명, 박소연, 리사, 임혜영 등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과 가수 알리, 정동하, 이창민 등 대중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지난 연말의 대구 공연은 한 달 남짓한 장기공연에서 ‘표구하기 힘든’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서울공연도 인기를 누리다 결국 마지막 날 공연을 한 회 더 추가해야 하는 좋은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지역의 뮤지컬 작품이 서울에서도 장기공연을 통해 인기를 누린 보기 드문 사례로써 의의도 지니게 됐다. 지역이 단순히 소비시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기지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는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초기 개발은 지역이 담당하고, 작품이 숙성되면 중앙의 큰 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하며, 다시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된 문화적 생산물을 지방과 글로벌 마켓으로 되파는 선순환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브로드웨이에서 혹은 웨스트엔드에서 곧바로 막을 올리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트라이 아웃 등 다양한 방식과 과정의 담금질을 통해 결국 대형 공연가에서 막을 올리는 작품이라면 이미 완성도는 어느 정도 검증된 것이라는 신뢰를 구축하게 마련이다. 글로벌 마켓에서 인기를 누리는 영미권 콘텐츠들은 바로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쌓고 세계 시장을 개척한 성공 사례들이다. 물론 우리도 벤치마킹을 해야 하는 재미난 문화산업의 흥행 공식이기도 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뮤지컬 <투란도트>의 원작은 푸치니가 만든 동명 제목의 바로 그 오페라이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아름답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공주 투란도트와 그녀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주와 결혼을 하려면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데, 문제를 풀면 사랑을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운명적 상황이 동양 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호기심과 맞물려 인기를 누렸다. 흔히 ‘공주는 잠 못 들고’로 잘못 알려져 있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는 원래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의미로, 새벽까지 약속된 시간 안에 왕자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진 누구도 잠들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담긴 노래다. 지금은 명을 달리한 이탈리아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투란도트의 ‘오직 나만이’

뮤지컬에서는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만의 음악과 시도들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바닷속 가상의 세계인 ‘오카케오마레’로 바뀌었고, 노래들도 모두 새롭게 만들었다. 제작진의 면면을 보면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싱글스> 등으로 유명한 장소영 음악감독과 <로미오와 줄리엣>, <애니>, <소나기> 등을 만든 유희성 연출이 콤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작품이라기보다 대한민국 정상급 제작진이 참여해 빚어낸 결과물이라 인정할만하다. 배우들의 연기나 무대, 영상을 적극 활용한 배경 등도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개인적으로 제일 크게 박수 보내고 싶은 것은 음악적 완성도이다. 요즘 가장 바쁘다는 장소영 작곡의 세심한 배려를 이곳저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눈앞이 침침해… 하지만 뚜렷해져, 저 먼 곳은”이란 선대왕 티무르의 노랫말이나 1막 뒷부분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 노래하는 사중창 ‘오직 나만이’는 꽤나 만족스러운 감상을 남긴다. 

 

흥미롭게도 오페라 ‘투란도트’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은 이 작품 말고도 다른 사례가 하나 더 있다. <투란도>로 알려진 故김효경 연출의 뮤지컬이다. 서울에선 이 작품이 대중들에게 익숙하지만, 딤프의 <투란도트>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관심을 모았던 경우다. 전자가 묵직한 정치적 메시지를 강조하며 오페라의 연장선에 머무른 경우라면, 후자는 뮤지컬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해외 특히 중국에서 여러 수상결과를 얻어냈던 경우다. 물론 애호가라면 비교해 가며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들을 유투브에서 감상해 볼 수 있다. 특히 ‘오직 나만이’, ‘누가 용기있나’, ‘마음이란 무엇인지’ 등은 중독성이 강한 이 작품의 대표적인 쇼스토퍼들이다.

2016년 공연에서는 스타 캐스팅을 접목해 뮤지컬로서의 재미를 강화하기도 했다. 알리가 노래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는 얼어버린 마음의 소유자인 투란도트 공주가 노래하는 방황의 노래로 인기를 누렸다.

'마음이란 무엇인지'를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박소연의 노래로 감상하고 싶다면 뮤직 비디오로 감상할 수도 있다.

칼라프 왕자는 초연에선 뮤지컬 배우 이건명이,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다시 이창민과 정동화가 트리플 캐스트로 무대를 꾸몄다. 특히, 이창민은 ‘부를 수 없는 나의 이름’의 뮤직비디오에서 특유의 아름다운 미성을 잘 보여준다.

사진제공 |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2016.10.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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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뮤지컬 컬럼니스트 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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