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Glenn Gould)

[컬처]by 인문잡지 글월
글렌 굴드(Glenn Gould)

20세기는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넘쳐 났다. 오죽하면 필립스 레코드가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Geat Piansts of the 20th Century)”이라는 타이틀로 200장에 달하는 세트를 기획했을까. 그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 역시 러시아 피아니스트로 건반위의 사자라는 에밀 길레스,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말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건반의 여제라는 아르헤리치, 앙코르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했다는 빌헬름 박하우스, 클래식을 넘어 재즈까지 영역이 넓었던 프리드리히 굴다, 지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뛰어넘은 모차르트의 대가 클라라 하스킬, 지적인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알프레드 브렌델, 베토벤 소나타의 정석이 된 빌헬름 켐프, 그 외에 20세기 초기 천재들이었던 알프레드 꼬르또나 미켈란젤리, 로잘린 투렉, 현대 쇼팽의 대가들인 마우리치오 폴리니나 크리스티앙 짐머만 등등등. 그 특성이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수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피아니스트를 꼽으라면, 역시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 – 1982)가 아닐까 싶다. 전통적인 피아노 음악에서는 한 발 벗어나 있지만 독특함과 대중적 인지도, 영화나 다른 매체 등에서 꾸준히 인용되고 회자되는 등 클래식 음악의 영역을 벗어나서까지 문화적 영향력이 미치는 몇 안되는 피아니스트이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박사는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식사를 했다. 그 외에도 굴드의 바흐 연주는 종종 여러 영화들에서 OST로 쓰였다.


고작 13살의 나이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하며 대중 앞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굴드는, 1955년 첫 레코드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연주곡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20대에 러시아로 연주여행을 가며 자신의 경험과 음악의 평을 넓히며 크게 성공했으나 30살에 더이상 청중 앞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오직 스튜디오에만 틀어박혀 레코딩에만 전념한다. 그는 피아노에 아주 가깝게 구부정하게 앉는데 이를 위해 의자 다리를 잘라낸 자기만의 의자를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음악에서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허밍으로 그 음을 따라 노래를 부른다는 것인데, 그의 레코딩에는 그 허밍 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모두 들어가 있다. 큰 키에 언제나 긴 코트를 입고 장갑을 끼고 손을 보호하는 기이한 남자. 이러한 여러가지 요소들은 글렌 굴드를 기이한 피아니스트의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역설적으로 이런 요소들이 또한 그의 성공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굴드 역시 그 점을 알고 활용하기도 했다.

Genius Within:The Inner Life of Glenn Gould는 때때로 과장되는 굴드의 기이한 면모들과 함께 굴드의 가족, 친구들, 연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글렌 굴드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굴드의 어머니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음악가인 그리그의 사촌이었다. (정작 굴드는 그리그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굴드는 특히 성악가인 어머니에게서 노래하는 법도 배웠는데 이때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로 따라하던 버릇을 죽을 때 까지도 고치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굴드는 10대에 이미 캐나다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고 20대 초반 골드베르크 연주곡 레코딩을 통해 전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기행들로 인해 굴드에게는 늘 기이한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굴드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굴드에 대해 느낀 것은 굴드는 특히 음악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아주 극렬하게. 그는 특히 콘서트를 꺼렸는데, ‘청중’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음악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결코 한 명 한 명 개개인의 관객들의 인격을 모독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모여 음악을 듣고 자신이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음악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후 레코딩에 몰두하게 되고, 레코딩을 하면서 자시의 피아노 연주 뿐 만 아니라 레코딩 기술과 편집에도 일일이 관여했다. 그와 함께 오래 편집 작업을 오래했던 엔지니어는 굴드가 신뢰하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녹음에 있어서의 굴드의 엄격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굴드는 집에서 언제나 밤 늦게까지 연주하며 연습하는 것은 물론, 악보와 음악 외에 다양한 책을 읽으며 공부도 굉장히 열심히 한 피아니스트였다. 또한 관심도 음악에만 있지 않고 스스로 라디오 쇼를 기획하거나 단편 필름을 기획하고 감독하고 직접 출연하는 등 기록 영상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는 자신의 음악에 있어 대단히 엄격하고 타협을 몰랐던 만큼, 결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사회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은 못되었다. 연애도 몇 번 있었고 한 때 결혼까지 갈 뻔한 진지한 관계도 있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녀는 화가였고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둘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굴드와 잠시 살기도 했지만 결국 굴드와 결혼하지는 않았다. 굴드는 아이들에게도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통제를 원하고 아무래도 예민한 굴드의 성격이 그에게 평범한 행복은 허락하지 않은 듯 하다.


굴드의 이러한 내면은 분명 음악을 통해 발현하고 있다. 그의 피아노는 무엇보다 소리가 아주 명료하다. 파문을 일으켰던 골드베르크 녹음은 굴드의 신선한 해석 만큼이나 그 명료하고 또박또박한 피아노 소리가 인기에 한 몫을 했다. 굴드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한 음 한 음 음악 소리가 아니라 마치 피아노가 무언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고 있는 것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또한 러시아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가 자신은 오로지 악보에 기인해 연주한다는 것과는 달리, 굴드는 종종 악보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연구와 내면에 의해 더 좋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연주한다. 20대의 굴드는 번스타인과의 협연에서도 자시의 해석을 굽히지 않아 번스타인을 애먹인적도 있었다. 이런 굴드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사건은 바로 굴드의 두 번에 걸친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이다. 굴드는 1955년 자시의 데뷔 녹음에 이어, 1982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시 녹음한다. 거의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후 녹음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전에 비해 템포가 거의 2배 가까이 느리다. 바하는 우리는 젊을 때 배우고 늙어서 이해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젊은 날의 굴드와 중년이 된 굴드 사이에 바하에 대한 이해의 차원이 달라진 것일까? 확연히 달라진 두 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작곡가의 의도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를 스스로 내면화하여 재해석하는 굴드의 음악관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굴드는 주로 바하의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간혹 모차르트나 베토벤, 하이든 등의 작품도 다루긴 했지만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인 쇼팽이나 슈만, 리스트 등의 작품은 연주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쇼팽의 음악에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그에게 낭만주의나 로맨티시즘같은 감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연습할 때는 간혹 다루기도 한다고 했지만 결코 음반을 남긴적은 없다.


굴드는 1982년 50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었다. 신기하게도 굴드는 그의 연인에게 자기는 50살에 죽을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가 자살한 것은 아니다. 예민한 굴드는 평소에도 자신의 건강을 끔찍하게 챙기곤 했다. 누구보다 영리하고 환상적인 실력을 갖춘대다 오직 완벽만을 추구했던,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순수했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그 완벽함을 위한 기행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가장 독보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의 음악관은 분명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의 관점과는 한 발 비껴서 있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관점의 문제이다. 그의 음악이 옳다 그르다, 혹은 그가 허밍으로 음악을 따라 부르는 것이 옳다 그르다. 심지어 그가 레코딩만 전념하는 것, 낮은 의자에 앉아 구부정하게 피아노를 대하는 것 등등을 우리는 옳다 그르다로 결코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음악이 나에게 좋다 아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 없다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설사 글렌 굴드라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총체적인 예술적 아우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열정만큼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박성표©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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