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크고 비쌀 수록 좋다?

[컬처]by 인문잡지 글월
카메라는 크고 비쌀 수록 좋다?

지금은 그런 경향이 많이 줄었지만, 컴퓨터 업계가 한창 성장하던 90년대 중-후반 무렵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대기업 컴퓨터는 쓸데없이 비싸기만 하고 사용자가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으니, 더 싸고 호환성도 더 높은 조립품 컴퓨터를 사는 게 낫다고 말이다.


이 말은 컴퓨터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진리로 통했고, 가끔 컴퓨터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조언을 구해올 때마다 변함없이 들려주는 클리쉐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아주 틀린 말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대기업 제품에는 아무래도 생산라인이나 홍보비용 등을 뽑아내기 위한 큰 폭의 마진이 설정되게 마련이었고, 이런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전자상가 중소업체들의 조립품 컴퓨터가 가격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다들 조립품 컴퓨터를 저렴하게 구입하고 행복해졌을까? 천만에.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립품 컴퓨터의 폭넓은 호환성이란 어차피 쓸모없는 것이었고, 외려 어딘가 이상이라도 생길라치면 주위에 컴퓨터 잘 아는 이에게 날품팔이를 청하는 것 외에는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원래부터 잘 아는 이들에게야 에러 현상을 접하는 순간 어떤 부분을 점검해봐야 할지 감이 오지만, 컴퓨터가 그저 미지의 기계이기만 한 초심자들에게는 “부르면 바로 달려와서”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해결해주는”(돈은 좀 받더라도) 워런티가 훨씬 더 유용할 터였다.


이와 비슷한 법칙은 카메라에도 적용된다.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구입하기 전에, 주변에서 사진 좀 찍는다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는 한다. 그러면 이들의 추천은 대체로 두 가지로 갈린다. 추려내보면 다음과 같다.


“무조건 비싼 쪽으로 가라. 한 방에 가는 게 낫다.”

“초보자 땐 뭘로 찍든 다 잘 나온다. 일단 입문기부터 시작해라.”


둘 중에 어떤 조언이 맞느냐고? 둘 다 틀렸다. 이 두 관점은 모두 ‘사진 깨나 찍어본’ 사람들이 바라보는 관점이다. 어차피 자신들은 거쳐온 과정이므로 ‘한 방에’ 고급기종으로 넘어가든, 혹은 ‘차근차근히’ 입문기종에서부터 조금씩 업그레이드를 하든, 결국은 자신과 같은 사진 매니아(?)가 되리라는 전제를 밑바탕에 깔고서 던지는 조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메라 구입을 원하는 모든 이들이 ‘사진 찍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건 아니다. 외려 반대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최대한 ‘좋은’ 카메라 한 대를 사서 추가적인 지출 없이 주구장창 쓰는 일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이 카메라가 ‘잘 나온 사진’을 ‘안정적으로’ 뽑아주는 물건이면 좋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다. 더 좋은 사진을 위해서 수십~수백만원을 들여 렌즈를 산다든가, 삼각대 같은 주변물품을 구입한다든가 하는 것은 애초에 고려에 넣지도 않는다.

전형적인 낚시형 판매 꼼수

예전에 한 카메라 회사에서 자기네의 렌즈 교환형 미러리스 제품 중 입문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품목을 대단히 저렴한 가격에 푼 적이 있다. 물론 이 기종은 카메라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실패작’으로 통하는 물건이었고, 저렴한 판매의 이면에는 후속기종 출시를 앞두고서 재고떨이를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워낙 가격이 저렴했던지라, 어찌되었든 목표했던 판매량은 충분히 달성했다.


사실 가격만으로 놓고 보면 싸게 나온 건 분명했다. 설령 다소 성능이 안좋더라도, 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면 분명히 이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전혀 이득이 아니라는 점, 혹은 전혀 ‘현명한’ 소비가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이 낚시형 떨이판매에 물려든 사람들 대다수는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초심자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회사 자체가 카메라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누구나 아는 업계 1위의 회사였고, 제품 또한 입문 카테고리에 속하는지라 초심자들을 타켓으로 어필하기에는 충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입문 카테고리라 해도 근본적으로는 ‘렌즈 교환형 카메라’라는 점, 그리고 이런 종류의 카메라는 결국 소비자에게 ‘다른 렌즈’라는 추가지출을 강요하게 된다는 점이 함정이었다.

번들렌즈면 된다는 헛소리

사진 좀 찍어본 사람들이 흔히 하는 헛소리가 있다.


“번들렌즈 하나만으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사진 좀 찍어본 사람들, 이라는 카테고리 내에서는 분명히 유효한 발언이다. 그러나 카메라 하나로 사진에 대한 금전적 지출을 멈추고자 하는 보통의 초심자들에게는 만고에 쓸데없는 조언이기도 하다.


초심자들이 생각하는 ‘잘 나온 사진’이란, 1) 흔들리지 않고, 2) 흐릿하지 않은(초점 잘 잡힌) 사진이다. 구도라든가 계조, 색감, DR, 이런 것들을 신경쓰는 사람은 이미 초심자 카테고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사진에 큰 관심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저 두 항목만 충족되도 ‘좋은 사진’이고, ‘남에게 자랑할 만한’ 사진이 된다. 그러나 렌즈 교환형 카메라와 번들렌즈의 조합은 외려 이 두 개의 조건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어떤 제조사의 렌즈든, 렌즈 교환형 카메라에 번들로 제공되는 렌즈는 조리개값(f) 3.5~5.6 대의 어두운(Slow) 렌즈다. 그러나 보통 비슷한 화각대(줌이 가능한 범위)를 커버하는 고급 컴팩트 카메라(이를테면 후지 X30이나 소니 RX100)의 경우에는 1.8~2.0 정도의 밝은(Fast) 렌즈를 채택한다. 앞서 말한 ‘두 조건’에 어울리는 쪽은 단연 후자 쪽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렌즈 교환형 카메라는 센서 판형이 더 크므로 이미지 표현이 더 탁월하고, 해상력이나 계조 표현에서도 유리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거, 초심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개소리다. 필름 사이즈에 근접하는 렌즈 교환형 카메라들은, 그런 이미지상의 이득을 얻는 대신 편의성과 신속성 등을 기회비용으로 포기해버렸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회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면서도 크고 비싼 카메라를 쓰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작고 가벼우면서도 쓰기 편하고, 그러면서도 “사진이 잘 나오는” 카메라를 원한다.


또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센서 크기가 커질수록 고감도 성능이 뛰어나므로, 어두운 렌즈는 고감도로 커버할 수 있다. 글쎄, 이 역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렌즈 교환형 카메라의 전형적인 센서(APS-C)가 보여주는 고감도 성능이란, 1인치 크기의 센서를 쓰는 고급 컴팩트 카메라의 고감도 성능을 ‘압도’할 만큼은 못된다. 말하자면, f3.5와 f1.8 사이의 약 2~2.5스탑에 달하는 차이를 커버할 정도로 고감도 성능이 더 뛰어나지는 않다는 소리다. 이런 차이는 결국 ‘흔들리는 사진’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현명한 카메라 소비를 위하여

결국 주위의 부추김과 예상 외의 할인 판매, 그리고 ‘이왕 사는 거’ 라는 한국인 특유(?)의 호승심이 맞물려서 덜컥 렌즈 교환형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들 중 많은 숫자는 몇 번 사진 찍어보다가 ‘뭐야 왜 나는 광고에서나 친구놈이 찍는 것처럼 선명한 사진이 안 나오지?’ 하는 볼멘소리와 함께 카메라를 장농 안에 쳐박아버리고 만다. 이게 사실은 수십 년 전에도 똑같이 벌어졌던 현상이다. 종종 집안 장롱에서 FM2나 X300과 같은 고대의 유물(…)이 출토되곤 하는 것은, 우리의 부모 세대 역시 비슷한 식의 시행착오를 겪어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의 카메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야 하는 지점은 ‘저렴한’ 입문 카테고리의 렌즈 교환형 카메라가 아니다. 그보다는 비슷한 가격대임에도 초심자에게 더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게 해 주는 고급형 컴팩트 기종들이 더 적합하다. 카메라든 컴퓨터든 자신의 입장과 숙련도, 그리고 원하는 용도에 맞춰서 구입을 하는 게 최고지, 무조건 객관적인 스펙이나 전문가들의 평가에 기대서 구입할 물건들이 아니다.


설령 이런 물건들이 ‘눈 돌아갈 정도’로 저렴한 가격으로 나오더라도, 결국 번들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해 밝은 단렌즈 따위에 눈을 돌리게 되고, 이런저런 것들 사모으다 보면 렌즈 갈아끼는 귀찮음과 이들을 싸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 따위에 허덕이다가 결국은 비싸게 주고 산 카메라를 멀리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항상 들고 다녀도 부담이 없고, P&S(Point and Shoot)을 가능하게 해 주는 컴팩트 카메라가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무관합니다.

 

글 박성호

201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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