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초상, 모차르트(Mozart)

[컬처]by 인문잡지 글월
천재의 초상, 모차르트(Mozart)

나에게 서양 작곡가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누구냐고 한다면 쇼팽이고,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베토벤이다. 하지만 음악 그 자체만 놓고 가장 순수하고 재기발랄하며 넘치는 재능을 주체하지 못한 말그대로 천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를 꼽을 것이다.

 

그가 왜 천재였는가를 일일이 증거를 나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가 35세의 나이로 죽을 때 까지 600여곡을 남겼고, 이 중 수 많은 곡이 인류에게 영원불멸로 남을 곡들이라는 것, 글자도 알기 전에 음악을 한 번 들으면 이를 그대로 외우고 연주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 10살도 되기 전에 교향곡과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는 것 등등.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의 41곡에 달하는 교향곡 중에서 오늘날까지도 연주될 만큼 제대로 된 모차르트의 ‘작품’ 반열에 오른 교향곡은 25번 정도 이후에서다. 정말로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들은 그것이 너무나 어린아이가 작곡했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지 작품 자체가 후세에도 두고두고 연주될 만큼의 수준은 아니였다.

 

우리는 종종 모차르트를 음악의 신동이라고 부르며 그가 처음부터 넘치는 악상으로 너무나 쉽게 최고 수준의 곡들을 줄줄이 써내려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오늘날 모차르트의 음악이라고 듣는 곡들은 대부분 그가 죽기 약 10년 전, 빈에서 살면서 일종의 프리랜서 음악가로 일할 때 작곡한 곡들이다.

 

그리고 그가 넘치는 악상으로 특별히 의뢰받지 않은 곡들도 단순히 재미삼아 작곡한 곡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차르트 역시 선대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년이 된 모차르트는 바흐를 만나 대위법을 배워 자신의 교향곡을 작곡하는데 활용했고, 하이든을 비롯해서 다른 작곡가들의 방식을 베끼면서 스스로의 음악을 정립해 나갔다.

 

요컨데 모차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천재였으나 그 역시도 ‘모차르트의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확립하기까지는 음악을 접한 이후로 거의 20년 정도의 수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단번에 눈치채고 자신의 아들에게 인생을 걸었다. 그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유럽으로 음악 신동의 연주여행을 다닌 것이다. 18세기에 마차를 타고 유럽을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차르트 가족은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수 많은 왕족들, 귀족들, 부유층 사람들을 상대로 수 많은 연주회를 열었다. 개중에는 모차르트의 명성을 의심하여 시험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들이 낸 까다로운 문제들을 너무나 쉽게 그자리에서 해결하는 모차르트를 보며 열렬한 지지자로 돌아선 이들도 있었다.

 

모차르트는 이 때 맺은 럭셔리한 인맥과 생활로 인해, 평생 자신의 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하며 사치를 일삼으며 살았다. 당시의 작곡가들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은, 왕궁이나 교황청, 혹은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등 상위 층의 집안에 주종관계식 계약을 맺고 그들이 주는 의뢰를 받아 예술품을 만들고 돈을 받았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도 교회와 관련되어 작곡을 하던 사람이었고, 그는 모차르트 역시 교황청 아래에서 일을 하길 바랬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자신의 능력이면 귀족들의 하수인이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당당한 예술가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모차르트 자신에게도 커다른 도전이었다. 10대 시절까지는 모차르트는 신동으로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만 연주해도 어디서든 환영 받았다. 하지만 20대 청년이 바이올린으로 어려운 곡을 연주한다고 해도 놀라워 할 사람은 누구도 없다. 갈수록 연주회를 열어도 수입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의 칭찬은 돈이 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즐길만한 음악을 작곡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빈에서 홀로서기를 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모차르트의 위대함은 동시대 사람들이 충분히 즐길만한 음악을 작곡하면서 동시에 영원히 기록될 예술성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만큼 꾸준한 천재는 아마 음악사에도 바흐나 슈베트르 정도일 것이다. 독주곡, 실내곡, 협주곡, 교향곡 등 어떤 장르든 가리지 않고 최고 수준의 음악을 쏟아내던 모차르트지만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오페라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페라는 음악만큼이나 극이 중요한데, 당시 뛰어난 극작가가 드물어 20편이 넘는 오페라를 남긴 모차르트지만 오늘날까지 연주되는 오페라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바니, 마술피리 등 3편 정도다.

 

모차르트가 20대 중반에 프리랜서 작곡가로 독립하여 빈에 자리를 잡고 콘스탄체와 결혼한 것은 그의 아버지에게는 일종의 반란과도 같았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자신의 일생을 아들에게 걸었고 모차르트 역시 청년기가 될 때까지 매우 순종적인 아들이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부터 수 많은 왕족들, 귀족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려 지냈던 모차르트에게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하수인이 된다는 것은, 더군다나 그 넘치는 재능을 남들에게 봉사하며 인생을 산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곁을 떠난 모차르트를 아버지는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차르트에게 회유하는 편지도 보내고 때로는 질책과 협박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으나 끝내는 아들과의 교류를 거의 끊고 말았다.

 

모차르트는 이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듯이, 오페라 돈 조반니는 희대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의 음란함과 몰락을 다룬 오페라지만, 마지막에 돈 조반니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는 지옥의 망령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돈 조반니는 끝끝내 회개하지 않겠다를 외치다 지옥으로 떨어진다. 아버지와 끝끝내 화해하지 못해 스스로를 지옥에 떨어뜨리는 자책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버지가 무엇이라 하든 어쩔 수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청년 모차르트의 외로운 곡조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모차르트는 개인적인 아픔과는 별개로 어떤 의뢰가 들어오든 막힘없이 작업했다. 모차르트의 수입을 찬찬히 분석한 연구가도 있었는데 그의 수입은 당시 시민 계층의 연수입을 대비해도 결코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프리메이슨 단원의 일원으로 부유한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었고 스스로 정말로 수입이 부족했다면 모차르트는 단순히 제자 한, 두 명만 더 받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남을 가르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부유한 사람들과의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도 그들만큼 아낌없이 지출했으며, 결국에는 언제나 부유한 친구들에게 돈을 꾸어달라고 편지를 써야 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을 정도다. 돌려막기를 한 셈이다.

 

모차르트에 대한 가장 유서깊은 오해와 의혹은 궁정음악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하여 독살했다는 의혹이다. 이 루머는 연극에 이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지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루머로 실제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와 친구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가깝게 지냈으며, 모차르트에게 장송곡을 의뢰한 사람 역시 살리에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런 루머가 돌아다닌 것은 35살의 한창 나이에 왕성하게 활동하던 작곡가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죽어 독살이 아닌가 의심한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의 지병이 갑자기 도졌고 의사들이 모차르트에게 피를 뽑아내는 (당시에는 전통적인 치료법이었으나) 잘못된 치료가 그를 죽음으로 몰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남들은 교향곡이나 협주곡, 오페라 등을 쓰기 위해 수 년씩 걸리기도 하는데 고작 몇 개월이면 몇 개의 작품을 연달아 작곡할 만큼 악상과 음악적 구조, 악기에 대한 이해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이 최고의 천재를 한창 왕성히 활동하던 35살에 잃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남은 우리에게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그의 천재성이 몇 년이나 더 이어졌을지, 그가 더 긴 생을 살아 본격적인 자본주의 태동기에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가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슈만, 쇼팽 등 그 이후의 음악가들과 음악적으로 교류했다면 또 어떤 음악세계가 형성되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하지만 이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음악만이 남았다. 그의 일생을 대변하기에 그의 환희와 슬픔과 두려움과 죄책감과 쾌락을 느끼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우리에게 그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 줄 수 없으며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의 음악을 듣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저 마음 속으로 감사하며 그의 아름다운 음악이 끊어지지 않고 대를 이어 울려퍼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모차르트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글 박성표

2016.12.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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