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또 쓰는 여행기

[여행]by 예스24 채널예스

여행작가로 가는 지름길

쓰고 또 쓰는 여행기

걷고 또 걷듯이, 쓰고 또 쓴다는 것의 어려움

지인 한 명이 부끄러운 듯 슬쩍 말을 꺼낸다.

 

“실은 저 요즘 여행 작가 수업을 듣고 있어요.”
“아니, 개성 넘치는 감수성에 글도 잘 쓰는 애가 왜?”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슷한 꿈을 가진 이들과의 친목 모임이라고 생각하며 나갈 수도 있을 만한 수업이다. 하지만 그 비용을 알고 났더니 ‘내가 다 속상 스튜핏’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기십만 원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지인은 나름 여행 에세이를 낸 우리가 못 미더워 손을 내밀지 않았던 걸까?

 

또 다른 지인은 석 달 동안 수료한 여행 작가 수업 사진을 SNS에 올리며 글 쓰는 게 너무 어렵다고 했다. 건실한 청춘들이 엉뚱한 데에 돈을 쓰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이건 너무 꼰대 감성인 것 같다가도, 도대체 여행 작가가 뭐길래 수십만 원을 투자해 수업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싶어진다.

 

‘여행의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여행 작가의 일반적인 정의이지만 그들이 바라는 모습은 ‘여행을 직업으로 삼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수입으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사람’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여행을 수입으로 연결시킬 방법일 테고 아마 여행 작가 수업은 더 쉽고, 더 높은 확률로 그 길에 빨리 진입하는 걸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애초에 지름길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뭐든 남보다 빨리 가고 싶을 땐 반드시 그 대가가 따라붙는데 말이다.

 

3년 전 이맘때,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고도를 서서히 높이며 4,160m까지 가야 하는 랑탕 밸리 코스였는데, 트레킹 경험이 많은 일행에 비해 나는 졸보에 체력도 약한 편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먼저 중간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뒤처진 나 때문에 30분이고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면목없지만 나는 내 페이스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일행처럼 걸었다가는 완주는커녕 중도에 포기할 걸 아니까….

 

그 남자와 나는 처음부터 여행 작가라는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글을 썼던 건 아니다. 2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와 뭐라도 하나 결과물이 손에 쥐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은 게 다이다. 더 솔직한 마음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감히 책을 낼 수 있겠어’였다. 출판사에서 원고가 채택되는 것보다는 직접 독립 출판으로 내는 게 좀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우리의 바람은 그저 여행이 끝난 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갖고 싶었을 뿐이니까.

 

글을 쓰는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자신의 속도로 ‘완주’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속도대로 세계 여행을 완주할 수 있다면 출판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다만 ‘기록으로의 완주’가 더해져 2년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 주도 글 쓰는 걸 포기하지 말자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켜냈다. (그야말로 지!켜!냈!다!)

 

히말라야에서 자신의 속도보다 빨리 걸었던 일행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쌩쌩하던 그 남자도 트레킹 막바지에 체력을 과신하다 저체온증으로 인해 말을 타고 내려가는 수모를 겪었다. 완주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던 나에겐 다행히 고산증도 저체온증도 찾아오지 않았다. 여행 작가 수업을 찾는 이들은 어쩌면 그 방법을 잊은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기를 ‘쓰고, 또 쓰고, 지칠 때까지 써야 함’을.

자기만의 돌무덤

쓰고 또 쓰는 여행기

돌무덤은 나중에 생각하세요. 돌 하나를 세우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자기 속도로 산을 오르는 그 여자를 따라 걸으니 천천히 풍경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계곡을 흐르는 거친 물소리와 설산 정상에서 흩날리는 눈보라 그리고 내가 밟고 지나는 길의 작은 돌멩이 모양까지 느끼면서 랑탕 계곡을 걸었다. 일행의 속도에 맞췄다면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풍경을 담기에는 그 여자의 속도가 딱 맞았다.

 

히말라야를 오르다 보면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 눈길을 끈다. 마을 입구마다 티베트 경전을 적어 매단 오색 깃발 다르촉 Tharchog이 그렇고 중요 길목에 작은 돌들을 쌓아 만든 돌무덤은 도대체 누가 저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함께 길을 오르는 셰르파족 포터(가이드)에게 돌무덤의 의미를 물으니 자신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이라고 한다. 그들은 언젠가는 그 간절함만큼이나 큰 돌무덤이 되길 바라며 중간중간 쉴 때마다 돌을 모으고 있었다.

 

옆에 큰 돌무덤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쌓아 올린 자신의 돌무덤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돌무덤은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려는 듯이 태양 빛 아래에서 하얗게 빛이 났다. 하지만 모든 돌무덤이 빛나는 것은 아니었다. 랑탕 계곡을 오르는 길옆에는 간절함의 손길이 끊어졌는지 무너져 내린 돌들도 볼 수 있었다. 무너진 돌무덤은 왠지 색깔도 거무칙칙해 보이고, 어두운 기운마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했다.

 

그 여자와 나는 ‘반드시 여행 작가가 되겠어’라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지 않았다. 다만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 기록들이 언젠가 한 권의 책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행하며 2년 동안 미루지 않고 글을 쓰기로 한 약속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도시가 아니라 남들처럼 일반적인 세계여행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비슷한 시기에 여행을 떠난 이의 글이 벌써 책이 되어 나오면 우리가 너무 늦게 가는 것은 아닌지,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보며 글 쓰는 것은 포기하고 영상을 찍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갈등하기도 했다. 우리의 기록은 이런 유혹과 갈등 속에서 멈추지 않고 긴 여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만약 초심을 잃고 글 쓰는 것을 멈췄다면, 혹은 여행을 포기했더라면 우리의 돌무덤은 무너져 내리고 검은빛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꾸준한 근성만으로는 여행 작가가 될 수 없고 또한 책을 낼 수도 없다. 기록하고 글로 담아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행의 콘셉트가 독특하거나 글 안에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방법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여행 학교를 찾아갈 게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느리더라도, 부족해 보이더라도 자신의 감정선이 활짝 열리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그 여자의 걸음이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히말라야를 담을 수 있는 속도가 딱 그 정도였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닦아 놓은 지름길은 따라가기 쉽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길은 자신의 길이 될 수 없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더라도 한걸음에 그곳에 다다를 수 없는데 우리는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글ㆍ사진 | 백종민/김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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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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