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사이드먼의 『잘 파는 세일즈맨의 비밀 언어』에 나오는 일화

[컬처]by 예스24 채널예스

가끔 그 시절의 추천 방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하는 추천이고, 직접 물건을 보여주면서 하는 추천이고, 손님에게 일정 분량의 환상을 심어주는 추천이다. 그런 추천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요즘은 실제 물건도 없이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추천하는 시스템이어서 조금은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물건을 사는 장점도 무척 많긴 하지만.

댄 사이드먼의 『잘 파는 세일즈맨의

다섯 번째 문제. 세일즈맨의 죽음

<문제>

세계적인 컨설턴트이자 미국 최고의 세일즈 코치 중 한 명인 댄 사이드먼의 책 『잘 파는 세일즈맨의 비밀 언어』에 나오는 일화다. 댄 사이드먼은 세일즈 회의 참석자 600명에게 긴장을 풀고 눈을 감으라고 한 다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멋진 휴가를 보내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비행기 좌석은 365개이고 그 중 당신은 다리를 쭉 뻗어도 충분할 만큼 공간이 넓은 좌석에 편안하게 앉는다. 비행기 안을 둘러보다가 비어 있는 좌석 하나를 발견한다. 그 비어 있는 좌석을 제외하고 승객들은 모두 수다를 떨고 있고 곧 일광욕을 즐길 설렘으로 행복해 보인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여행객들 모두 꿈같은 여행을 할 생각에 들떠 있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멋진 것들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다. 그 유명한 캥거루와 멋진 백상아리, 서핑, 스쿠버 다이빙, 포도주 관광,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해산물 요리,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 등. 이 얼마나 재미있는 여행인가! 그야말로 환상적인 여행이다.”

 

댄 사이드먼은 여기까지 얘기한 다음 사람들에게 눈을 뜨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이 이야기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1. 우리가 만약 1년 중 하루를 낭비한다면, 우리는 놓친 그 기회를 절대 회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 오스트레일리아는 행복한 곳임을 암시하는 이야기입니다.

3. 비행기에 타지 못한 사람의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4. 우리의 1년 365일은 모두 축제 같은 날이며, 단 하루 정도만 불행하다는 뜻입니다.

 

(문제 해설)

물건을 팔아본 경험은 거의 없다. 친한 가게 주인을 대신해 잠깐 가게를 봐줬을 때가 한두 번 있었나. 그럴 때도 주도적으로 물건을 판 것은 아니다. 계산만 해줬을 뿐이다. 물건을 파는 능력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님의 심리를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하고, 친절해야 하고, 망설이는 손님에게 미끼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딱 한 번 열심히 물건을 팔았던 적이 있다. 한 인터넷서점의 CD/DVD 팀장직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홍대 근처의 매장 관리까지 함께 해야 하는 자리였다. 관리라고 해봤자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손님이 없었다. CD/DVD 팀원은 나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이었고, 손님은 하루에 여섯 명이 올까 말까였다. 팀원들은 매장 한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새로 나온 음반 이야기를 하거나 홍보용으로 나온 음반을 들으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이 내게는 직장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한가롭고, 평화롭고, 충만했다. 손님이 거의 오질 않으니, 매장에 손님이 들어오는 순간 모두들 비상사태로 돌변했다. 무조건 팔아야 했다.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하나 사게 하자.

 

CD/DVD 팀원들은 대부분 음악 고수들이었다. 나도 소싯적에 음악 좀 들었네 하고 뻐길 때가 있었는데,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 헤비메탈 마니아도 있었고, 힙합에 정통한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다양한 음악을 추천 받기도 했고, 음반 파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음반을 판매하는 클래시컬한 방법은 세일즈 매뉴얼에 자주 등장하는 ‘영향력 행사하기’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점원 : 어서 오세요.

손님 : (묵묵히 매장을 돌아본다.)

점원 : 뭐 찾는 음반 있어요?

손님 : (대답 없이 묵묵히 매장을 돌아본다.)

점원 : (신경을 쓰지 않는 척한다.)

손님 : (한참 후에) 혹시 스피리추얼라이즈드 있어요?

점원 : 어떤 앨범요?

손님 : 레이디스 앤드 젠틀…

점원 : 네, 그 앨범은 없네요.

손님 : 네.

점원 : 혹시…

손님 : 네?

점원 : 혹시, 스페이스맨 쓰리는 들어보셨어요?

손님 : 이름은 들어봤어요.

점원 : 이 앨범 들어보셨어요? 플레잉 위드 파이어.

손님 : 아뇨.

점원 : 아, 이걸 안 들으셨구나. 이게 제이슨 피어스가 주도적으로…, 아니네요, 손님한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사실 스페이스맨 쓰리를 안 들으면 스피리추얼라이즈드가 왜 그런 음악을 하는지가 잘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이게 좀 마니악해서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혼잣말인 것처럼) 아아아아아, 이걸 안 들으셨구나. 하아…

손님 : 그 앨범도 좋아요?

점원 : 이거요? 좋냐고요? 이건 명반이죠. 5번 곡 레볼루션 들어보면 ‘아, 이래서 이 앨범을 추천해주었구나’ 싶을 거예요. (두 달째 팔리지 않는 음반이라는 말 대신에) 아, 이건 진짜 구하기 힘든 건데…

손님 : 그거 주세요.

팀원들은 내게 ‘아아아아, 이걸 안 들으셨구나.’라고 말할 때의 탄식 가득한 목소리를 가르쳐주었다. 목소리에는 허무한 세월의 인식이 녹아 있어야 했다. 이 음반을 듣지 않았으니 지금까지는 헛산 거나 마찬가지라는 듯,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는 듯, 아련한 목소리로 ‘아아아아' 하고 탄식해야 했다. 팀원들에게 배운 걸 몇 번 써먹어본 적이 있다. 제법 잘 먹혔다. 물건을 팔았을 때의 쾌감을, 내가 추천한 물건을 손님이 받아들였다는 데서 오는 승리감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가끔 그 시절의 추천 방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하는 추천이고, 직접 물건을 보여주면서 하는 추천이고, 손님에게 일정 분량의 환상을 심어주는 추천이다. 그런 추천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요즘은 실제 물건도 없이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추천하는 시스템이어서 조금은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물건을 사는 장점도 무척 많긴 하지만.

 

소설 방문 판매에 대한 농담을 자주 하곤 했다. 내 소설을 직접 들고 돌아다니면서 낯선 집의 벨을 누르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곧장 낭독을 시작한다. 내 소설을 읽어 나간다. 내 소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면 이렇게 설명을 해줄 것이다. “이 소설이 좋냐고요? 아, 이건 명작이죠. 다섯 번째 단편을 읽어 나갈 때쯤이면 ‘아, 이래서 작가 분이 직접 와서 책을 추천해줬구나.’ 싶을 겁니다. 이거 진짜 구하기 힘든 책인데…”

댄 사이드먼의 『잘 파는 세일즈맨의

출처_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한 장면

무엇인가를 사야 할 때 파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판매자들이 있다. 긴 말 하지 않는데 적당한 때에 와서 간결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인사는 정중하되 소란스럽지 않고, 아주 가끔 구사하는 유머의 성공률도 무척 높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정확히 추천하고, 그 물건의 장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그런 사람에게서 물건을 사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대화의 일부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잊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윌리가 친구 찰리에게 신세 한탄을 하는 장면이다.

윌리 : 생각해보게나. 내가 그 녀석 이름을 지어주었다니까. 하워드라고 말이야.

찰리 :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걸세. 이름쯤 지어준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워드란 이름을 지어주었기로서니 그걸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세상에선 팔 수 있는 거라야만 돼. 우습지 않나. 자넨 세일즈맨이면서 그걸 모르다니.

이제 문제 풀이로 넘어가야겠다. 문제의 답은 놀랍게도, (아니 나만 놀랐을지도 모르겠지만) 1번이다. 책에는 뒷이야기가 이렇게 적혀 있다.

 

한 영업 전문가가 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생각을 소리쳐 말했다. “이 이야기는 여행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비행기에 관한 거라 할 수 있죠. 365개의 좌석 중에 하나가 비어 있다고 했죠. 그것이 의미하는 건 우리가 만약 1년 중 하루를 낭비한다면, 우리는 놓친 그 기회를 절대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요.”

 

그의 압승으로 게임은 끝났다. 그 영업 사원이 정확히 꿰뚫었다. 어떤 관점에서 그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은유이다.

 

비행기는 빈 좌석으로 생긴 매출 손실을 결코 회복할 수 없을 것 - 영원히 사라진다 - 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시간의 가치와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 당신은 하루하루를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문제에 대한 내 답은 3번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한 사람을 생각했다. 그 사람의 사연을 상상했다. 왜 늦었을까. 오는 동안에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일까? 여행이 필요 없어진 것일까?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나? 아니면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나? 대체 왜 제시간에 비행기를 타지 못한 것일까. 364명이 도착했지만, 비어 있는 한 자리는 무척 크게 느껴진다. 나는 비어 있는 한 자리를 살펴보기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효율과 매출의 손실을 따지기 전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한 사람을 걱정하는 것이 예술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1번이었지만, 내 마음대로 고치겠다. 나의 정답은 3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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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2015.11.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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