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이시 조 "음악은 곧 나 자신"

[컬처]by 예스24 채널예스
히사이시 조 "음악은 곧 나 자신"

나는 작곡가이다. 외국에서는 작곡가를 ‘컴포저(composer)’라고 한다. 음악을 구성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작곡가가 아니라 컴포저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음악을 만들 때의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감독으로부터 이번에 이런 영화를 준비 중인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러면 일단 시나리오를 읽어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만든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감독의 작품처럼 애니메이션인 경우에는 그림 콘티를 본다. 그런 다음에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나 희망 사항 등을 듣는다. 그리고 주제는 무엇인 지, 어떤 악기를 사용해서 어떤 곡조로 만들 것인지를 전체적으로 구상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장면에 어느 곡을 몇 분 몇 초로 넣을 것인지, 몇 곡을 만들 것인지 협의한 다음 실제로 곡을 완성해서 녹음(recording)을 한 후, 믹스다운(mix down, 멀티트랙 녹음에서 적은 수의 트랙을 가진 녹음으로 옮기는 일)을 한다.

 

여기까지가 내 일이다. 즉 영화에 들어가는 모든 음악을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내 멋대로 곡을 만들 수는 없다. 영화의 세계관과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감독이다. 감독이 “이 음악은 아니다”라고 말하면 내가 아무리 좋다고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나 영상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된다. 감독의 이미지 안에서 무난한 작품을 만들면 작곡가로서 아무런 재미가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감독은 풍부한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창조 에너지를 쏟아 부어 영화를 만든다. 따라서 영화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그에 걸맞은 풍부한 창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감독은 항상 자기 이미지의 껍질을 깨뜨려 줄 신선한 음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음악을 만들 때의 일이다. 메인 테마곡을 정할 때, 나는 그의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 음악을 한 곡 준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품의 세계관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껴안으면서도 내가 밀고 싶은 음악을 한 곡 더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둘 중 후자를 선택했다. 그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창조력을 발휘해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예정조화(豫定調和)를 싫어한다. 그래서 나도 매번 진검승부를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고 나 자신을 한계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야만 일반적인 범주를 초월한 작품이 태어나는 것이다.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상상을 초월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일의 재미가 아니고 무엇이랴.

 

흔히 ‘창조’의 기본은 ‘감성’이라고 한다. 창조와 감성이란 두 단어를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말을 매개로 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작곡가로서 일하는 나의 방법과 사고방식, 시점, 무의식 안에 잠들어 있는 감각 등을 말로 표현하면 투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지금 작곡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콘서트 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한다. 또 이벤트의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하고,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음악 이외에 울타리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일을 통해서 사회와 관계를 맺는 사이에 내가 하는 일을 말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창조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똑같지 않을까?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좋은 의미에서 예상을 뒤엎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위해 평소부터 감각을 연마하고 센스를 키우는 것, 이러한 것들은 비단 음악의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리라.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하루하루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전함으로써 사람들이 “창조력이란 무엇일까?”, “감성이란 무엇일까?”란 것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일에 반영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으리라.

 

글 히사이시 조




히사이시 조 "음악은 곧 나 자신"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히사이시 조 저/이선희 역 | 샘터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을 영화음악가의 길로 이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만남부터 늘 긴장감이 맴도는 작업현장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어디에서도 밝힌 적 없는 명곡 탄생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또 영화음악과 현대음악을 오가며 창작의욕을 불태우는 음악가로서의 열정과 30년이 넘게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창조성의 비밀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도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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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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