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된다면

[여행]by 예스24 채널예스

아침저녁 일교차가 심하므로 감기를 조심하라고 뉴스에서 말하더니, 딱 감기에 걸렸다. 머리는 뜨거운데 몸은 춥고, 목이 마른데 목구멍이 따갑고, 정신이 몽롱한 것이 예전에 여행하다 아팠던 일이 생각난다.

 

여행이 꼭 예상대로 되는 것은 아닌데, 질병에 걸리면 그런 낭패가 없다.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엔 달라지는 시차 때문에 생기는 피로감, 물갈이라고 부르는 잦은 설사와 갑작스레 바뀐 계절 때문에 걸릴 수 있는 감기 등 다양한 위험이 뒤따른다.

 

처음엔 피부였다. 페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내 얼굴엔 각질이 하얗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따끔거리는 정도더니 나중엔 얼굴에 유리조각을 문대는 듯 아파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원인은 건조한 기후와 햇빛 때문이었다. 처음 가 본 건기의 남미가 그렇게 건조할 줄 누가 알았던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다녔으니, 타고 갈라지고 얼굴이 엉망이었다.

 

문제는 한동안 무엇이 원인인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왜 아픈지 모르니 꾹 참고 다닐 수밖에. 하지만, 피부는 나아지는 일 없이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마침내는 밥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약국에 갔지만, 말이 통해야 말이지. 여행서적을 뒤져 ‘아프다, 얼굴’ 이란 단어를 짚어서 보여줬다. 약사가 갑작스레 닥친 외국인에 당황하며 연고를 건네줬다. 한참이나 연고 설명서를 읽은 후에 이렇게 말하면서.

 

"이거, 얼굴, 오케이. 여기, 써, 있음."

 

나는 스페인어가 안 되고, 약사는 영어가 안 됐다. 어쨌거나 연고를 바르고 피부는 빠른 속도로 진정을 되찾더니 며칠 후엔 다 나았다.

 

그 때 셀프로 박피를 한 것 때문인지, 지금도 피부과에서 하는 기본적인 얼굴관리도 못 받는다. 얼굴에 조금만 마사지를 했다하면 온 얼굴이 붉어지며 난리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 할 때도 수분 팩만 덜렁 바르고 얼굴관리를 끝냈었다.

 

하지만, 남미에서 그 난리를 당한 건 나만이 아니라 손과 팔의 피부가 다 갈라진 여행자도 만날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미 할머니가 '쯔쯔, 여자 손이 이게 뭐고'하면서 핸드크림을 줬다고 했다. 

 

우기는 몰라도 건기의 남미는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도 남미에 있다.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인데, 수건을 빨아서 널어놓으면 두 시간 만에 다 마르는 곳이었다. 빨래하긴 좋았지만, 다들 피부도 머리도 푸석푸석해서 인상 깊은 곳이었다.

여행 중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된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마을

여행 중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된

공기도 버석버석한 느낌이다.

그래도 거기까진 애교였다. 쿠스코에선 고산병에 걸렸었다. 침대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누워만 있는데, 동행이 없었으면 호스텔에서 굶어 죽었을 거다.

 

내가 느낀 고산병의 증상은 빈혈과 비슷했다. 눈앞이 노래지다 자기도 모르게 쓰러지는 것이다. 몸이 축축 쳐지며 계속 기절하듯 잠이 오고, 소화도 잘 안 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낫지 않는다.

 

빈혈은 그늘에서 좀 쉬면 훨씬 괜찮아지고, 먹을 걸 먹으면 좀 나아진다. 그런데 고산병은 계속 그 상태다. 귀에선 이명이 울리고, 침대에서 앉기도 힘들고, 밥은 소화를 못 시키니 스프밖에 못 먹는다.

 

호스텔 바로 앞에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는데 한 열 걸음쯤 되는 거리였을 거다. 그런데 그 거리를 움직이지 못 해 가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서 동행이 삼시세끼 식사를 배달해줬다.

 

다행이라면 페루에선 식사로 스프를 팔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에피타이저 정도로 여겨지지만, 페루엔 다양한 스프가 있었다. 호박과 감자 등을 넣은 야채스프, 고기를 넣은 스프, 그리고 고향의 맛 잉카스프까지. 죽 대신 그걸 먹고 버텼다.

 

잠을 너무 자서 머리가 아픈데, 일어날 수가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마, 배낭에 책을 넣어와 그걸 읽으며 버텼다. 아무리 아파도 좋아하는 소설이나 만화를 읽고 있으면 아픈 것도 모를 때가 있잖은가? 가방 무겁게 괜히 가져왔다 후회했던 책이 아파서 꼼짝을 못 할 때는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스프만 마시며 침대에서 점점 말라가고 있자니, 상태가 심각해보였는지 동행이 말도 안 통하는 약국에 가서 정체불명의 약을 하나 사 왔다.

 

도대체 어떻게 사왔냐고 물어보니, 머리 옆에 대고 손가락을 돌리는 시늉을 하면서 '헤드 에이크, 베리 베리 에이크' 이렇게 말했더니 ‘오, 마운틴 시크니스’하고 바로 주더란다.

 

그 약을 먹었더니 단박에 몸이 나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약이 꽤 독한지 약을 먹기만 하면 식도부터 위까지 쓰라리기 그지없었지만, 고산병은 높은 지대에서 벗어나야만 낫는 병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먹고 다녔다.

여행 중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된

두 번 가라고 하면 못 갈 것 같은 마추픽추

그렇게 마추픽추에 올랐다. 가이드를 따라 마추픽추를 보는데 정말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 번은 보고, 그길로 바로 마을로 내려왔다.

 

사실 마추픽추가 보고 싶어서 남미에 갔던 거였는데, 몸이 아프니 눈에 들어오는 게 아무 것도 없더라. 그래도 그 이후로 크게 아픈 적은 없다. 혼곤한 정신에 볼리비아에서 가방을 털리긴 했지만 말이다.

 

마추픽추 위엔 에너지 스톤이 있는데, 가이드가 거기에 손을 대면 잉카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구부정한 허리로, 독일에서 온 할머니와 똑같은 속도로 비실비실 대며 ‘살려주세요’하고 빌었다. 효험이 있었는지, 그 이후론 여행 내내 건강했다.

 

원래 마추픽추는 꽤 신비한 여행지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꽤 달라졌다. 미국과 가깝다 보니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단체로 여행을 올 정도다.

 

예전엔 낡은 버스가 한 대 덜거덕 거리고 올라가면, 헬로우 소년이 버스보다 먼저 따라 내려와 팁을 요구하기도 했다는데 그런 일도 이젠 없다. 버스가 거의 10분에 한 대씩 출발하는데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좌석버스로 바뀐 지 오래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전하게 잘 다녀오는 여행지지만, 고산병에 걸리면 나와 같은 쓸쓸한 일정만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고산병에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하고, 비상시에 연락할 수 있는 인맥을 꼭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의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글ㆍ사진 | 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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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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