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요양보호사가 써내려간 요양원 24시

[라이프]by 예스24 채널예스
『돌봄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 전계숙 저자

원하든 원치 않든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돌봄은 필수가 되었다. 한동안은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셨던 보호자로, 이제는 3년차 요양보호사로 요양원을 경험한 현직 요양보호사가 써내려간 요양원 24시. 이 책은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기적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들, 그 어르신들의 기적을 조석으로 마주하면서 함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애쓰는, 그럼에도 아직 사회적 인지도가 낮은 요양보호사”의 분투기가 가슴 찡한 드라마처럼 담겨 있다.  


엉뚱하고 생뚱맞은 어르신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인생의 이치를 배워가는 등단 작가 출신의 요양보호사의 예민한 시선은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해, 나이 듦과 통증에 대해, 사랑과 용서에 대해, 허위와 진정성에 대해 우리를 깊은 성찰로 이끈다. 또한 요양보호사로서 좌충우돌하며 겪어낸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여 얻어낸 어르신 돌봄을 위한 자세와 지혜는 전문 요양보호사는 물론 집에서 어르신을 직접 돌보는 보호자들에게도 귀한 안내가 되어 준다. 마지막으로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을 요양원에 모셔야 할지를 고민하는 보호자들에게도 선택을 위한 친절하고도 따뜻한 안내를 전하고 있다.

현재 요양보호사 3년째, 돌봄 노동을 하면서 글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와 이유가 있다면요?


처음 1년은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어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배우고 실습도 했지만, 현장에서 어르신 돌봄을 한다는 건 다른 차원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요양원이라는 조직의 룰을 따르며 함께 일하는 요양보호사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꽤 시간이 들었습니다. 마음만 앞선 초보 시절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책에도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요양원 생활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어르신들의 일상이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치매 어르신들을 볼 때면 80년 이상 살아오신 삶이 치매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구나 싶었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 어르신들 곁에서 지켜보니 치매 전과 후가 모두 그들 삶의 연속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우리가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치매로 요양원에 모셨던 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생각하니, 무엇보다 그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 한 가지 제 주변 사람들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를 모른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생각해보니 저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 전까지는 그 차이를 알지 못했던 거지요. 그래서 요양원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관점은 다양하므로, 제가 보고 경험한 요양원 어르신들의 실제 삶은 밖에서 보듯이 인생의 나락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가 가진 얕은 지식이나마 독자들과 공유해서 병든 부모님을 어디에 모셔야 할지 망설이는 보호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던 경험 때문인지 남다른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 같습니다.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 여기는 것이 무엇이며, 그걸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 있다면요?


요양보호사의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이중 가장 큰 차이라면 주간 근무할 때는 빡빡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므로 어르신들과 정서적 교감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야간에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밤새 어르신들의 방을 오가며 스킨십을 하고 주무시지 못하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요.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서적 돌봄을 할 때 역지사지와 인지상정의 감정을 가지고 하는 것이에요. 나는 주간 근무를 할 때에도 틈나는 대로 어르신들과 대화를 많이 하되 진지하기보다는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대화를 나누려고 해요. 


잠깐의 짬을 이용해서 트로트를 불러 어르신들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고, 어르신들이 내 춤과 노래에 신명 나 하시는 것에 내심 열광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능하면 어르신 돌봄 시간에 대화, 농담, 스킨십 그리고 노래와 춤을 병행하는 일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어르신 돌봄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또 그 이유는요?


솔직히 유머러스한 요양보호사가 나 하나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드문 것도 사실이에요. 나는 오랫동안 학생들의 과외 선생으로 생활해 왔기에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직업적으로 유머를 키우는 일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이런 재능을 어르신들과의 대화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고, 애로사항을 알게 되고,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요? 내가 출근하면 어떤 어르신이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아이고 기다렸어. 손톱 좀 깎아줘.” 

“그때 갖다 준 고추절임 잘 먹었어. 고마워.”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의 하루는 무척 단조롭고 무료해요. 자식들에게 버려졌다는 느낌을 표현하지는 못해도 낯선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은 있으실 거예요. 단조로운 일상에서, 무료한 일상에서 그리고 소외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드렸을 때, 어르신들이 내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을 읽어낼 때 제일 기쁩니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무엇을 배웠고, 그러한 배움이 저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 삶의 이력은 모두 달라요. 하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의 삶은 우리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일제 강점기, 해방, 6.25 전쟁과 빈곤 국가, 산업화 과정을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오신 분들이에요. 어르신들은 농어촌이든 도시든 어디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가난과 고난의 세월을 겪으시며 살아서 그런지 억척스럽고, 거칠고, 인내심 강하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깊어요. 


자글자글한 어르신들의 얼굴 잔주름과 손바닥에 단단히 박힌 굳은살이, 두꺼워진 손발톱이, 치아 다 빠져 잇몸만 남은 입을 볼 때 참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고단하고 지난한 삶을 겪어낸 어르신들에게서 인생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무한한 인정과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밥 먹어라.’ ‘그만 쉬고 자거라.’ ‘힘들겠다.’ ‘고생이 많다.’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 어르신들에게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배웁니다. 


나는 굉장히 어둡고 염세적인 사람이에요. 아픈 가족사가 그렇고, 순탄치 않은 내 삶을 긍정하며 사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한데 요양원 생활 3년을 거치며 나는 제법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생, 뭐 있어?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거지.’ 언제부턴가 이런 가치관이 생긴 것 같아요.


보호자들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놓고도 죄책감과 불안함으로 많이 힘들어하는데, 그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치매 걸린 부모님을 집에서 수십 년간 모시다가 함께 죽음을 택한 가족의 이야기를 종종 뉴스에서 보곤 합니다. 강풀 작가의 웹툰 원작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또한 그런 내용이잖아요. 


처음 얼마간은 24시간 치매 걸린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는 그 간결한 옛말에 많은 뜻이 담겨 있잖아요. 오랫동안 곁에서 모시다 보면 지치고 힘들어져서 보호자와 환자 모두가 불행해질 수 있어요. 이런 사정은 보호자가 직업이 없다 해도 달라지지 않아요. 물론 요양원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쯤은 되지 않을까요?


요양원에 처음 오시면 어르신들이 낯설어 하시지만 조금 지나면 적응하며 지내십니다. 시간이 약인 셈이지요. 심지어 같은 방에 계신 다른 어르신들과 친구처럼 잘 지내시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요. 요양원은 치매 환자를 수년간 보살펴 온 기관이에요. 그만큼 전문기관이라는 얘기지요. 당연히 그 안에서 어르신 돌봄을 하는 요양보호사도 전문가이고요. 가끔 요양원에서 노인 학대를 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일부의 이야기가 침소봉대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할 말로 집에서 부모를 모시는 자식들 가운데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불효자도 있는 법이니까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끝까지 모시고 살다가 임종하는 것까지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은 뿌리 깊은 유교적 관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전문 요양시설에 모시는 것이 고려장을 치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 부모님을 요양원이라는 낯선 곳에 모셔다 놓고 돌아서는 마음이 어찌 안타깝고 슬프지 않겠어요. 


보호자의 경우에도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도 적응하는 것처럼 보호자 또한 적응하게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두 달 후 면회 와서 만나보면 알 수 있어요. 활짝 웃으며 자식을 맞이하는 부모님을.

어르신 돌봄의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요양보호사와 어르신을 요양원에 보낸 보호자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요양보호사들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이죠. 요즘 요양보호사에 관한 공익광고가 전파를 타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 하면 궂은일 하는 사회 하층 노동자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공익광고가 요양보호사의 사회적 인지도를 올려주고, 자존감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직업병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근골격계 질환들이요. 물리치료를 받고, 주사를 맞아가며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이 직업을 선택한 요양보호사는 거의 없을 거예요. ‘말년에 할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가 아마 선택 이유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요양보호사입니다. 그러니 이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양보호사보다 치매 어르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 말이에요.


간혹 ‘돈을 지불하고 부모님을 입소시킨 것이니 내가 갑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보호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자기 대신 부모님을 돌보는 요양원 종사자들에게 고마워합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우리는 힘이 나기도, 지친 마음이 말끔히 가시기도 합니다. 따라서 보호자분들께 ‘고맙다’는 말 한마디나 눈인사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계신 다른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요양원도 사람 사는 곳이고, 그곳에서의 삶도 여느 곳에서의 삶과 마찬가지로 존엄하고 가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리 사회에 갈수록 노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어요. 버스를 타도, 병원에 가도, 한적한 동네 놀이터나 재래시장에도 노인들이 대다수입니다. 노령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생산인구의 빠른 감소가 시대의 흐름이라면 어쩔 수 없더라도 이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종종 합니다. ‘노인들이 집에나 있을 것이지 굳이 출퇴근 시간에 나와서 버스나 지하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짜증스럽다.’고요. 이런 시선들이 비단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노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지어 ‘틀딱’이라는 은어까지 등장했습니다. 틀니를 해서 딱딱거리는 노인들에 대한 비하의 표현입니다. 영화 <은교>의 명대사로 내 마음을 대신 전하고 싶습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받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너무 진부한 말 같지만,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이 듭니다.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추세입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국가는 물론이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늙고 병들어 가는 노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사랑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에서 충분히 이야기했듯이, 우리 모두 비껴갈 수 없는 이 노화를 인정하고, ‘좋은 돌봄을 받는 몸’이 되기 위한 연습을 했으면 합니다. “헬스장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하고, 뱃살을 줄이고, 몸에 좋은 비타민을 먹고, 삼시 세끼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뭐 그런 거 말고”  “어차피 가지고 갈 재산 아닌데 기부도 좀 하고, 땡볕에 폐지를 줍는 허리 굽은 노인네들에게 음료수 한 잔 드리는 것,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사는 것, 살아 있는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 것, 지구 전체 환경을 생각하며 분리수거라도 잘하는 것, 노점상에게 사과 한 바구니 사면서 덤 달라고 떼쓰지 않는 것, 환경미화원은 대학 나온 젊은이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편견을 버리며 사는 것, 정화조 청소를 못 하게 되면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사는 것, 뭐 이런 것들” 말입니다. 

*전계숙

인천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시’ 부분으로 입상을 하면서 글쓰기에 매료되었다. 전업 작가를 꿈꾸었으나 그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았다. 중고등학생들의 국어와 논술을 지도했고, 자기소개서 코칭 등을 하며 글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2000년 우정사업본부에서 주최한 ‘전국 편지쓰기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글을 쓰게 되었고, 인천 새얼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소설반에 등록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소설 수업을 들으면서 소설 쓰기에 매진하였다.


2002년 인천 시민문예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학산문학으로 뒤늦은 등단을 하였다.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공모전에서 수필로 금상을 수상하였다. 인천 문인협회 회원, 새얼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 요양원에서 어르신 돌봄을 하면서 한동안 글을 손에서 놓았다가, 요양보호사로서 일하며 배운 인생의 참 모습을 글에 담고 싶어서 다시 펜을 들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요양보호사로 살아가며, 어르신들에게서 배우고 깨닫는 삶의 의미를 글에 담아 나누고자 한다.


okita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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