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파리에서 플로리스트로 사는 일상, 궁금하신가요?”

[비즈]by 예스24 채널예스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삶의 풍요를 가꾸는 애호 생활 에세이 브랜드 ‘라이킷(Lik-it)’의 여덟 번째 책 『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가 출간되었다. 저자 이정은은 서울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파리로 꿈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어렸고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싶다는 꿈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언가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대학 졸업 후 한국을 떠나 시작된 해외 생활은 12년째 이어졌다. 운명처럼 파리로 건너가 플로리스트로 일한 지도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었다. 모국어에 더해진 두 개의 언어, 두 번의 이민 그리고 이방인의 삶.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꽃처럼 싱그러운 위로를 전하는 플로리스트의 삶을 통해 오늘도 그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의 삶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운 좋게 대학교 졸업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취업이 되었어요. 저는 고향이 대구예요. 외국어를 전공하면서 늘 더 넓은 세상을 동경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서울에서의 사회생활은 제 안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홀로서기의 맛보기 단계였던 것 같아요. 한 발 내딛은 독립을 통해 그 후 해외로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고요.


어느 정도 서울 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더 큰 곳을 보고 싶다는, 더 많은 것들로 저를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외국어 강좌를 신청해 들으러 다니기도 하고 유학했던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요.


당시엔 일본으로의 이민을 꼭 정하지 않았던 때라, 영어권 나라로의 유학도 많이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선배들은 열이면 열, 영어권 나라로의 유학을 추천해주었는데 결국 저는 일본으로 갈 운명이었나 봐요. (웃음)


처음에 일본 워홀에 한 번 떨어지고는 오기가 생겨 한 번 더 신청을 했어요. 그리고 붙으면 무조건 간다! 라는 생각으로 부모님 몰래 유학 자금을 모으며 준비를 했어요. 합격 발표가 나면 자금 운용 계획과 함께 퇴사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릴 생각이었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스물 중반, 어떻게 보내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상상으로 보내면서 연애조차 안중에 없었던 것이, 이거 열정이 좀 과했다 싶기도 하고요. (웃음) 유학 그 자체보다 ‘해외에서의 삶, 현지인처럼 살아보기’가 초점이었기에 생각할 게 많았던, 정해지지 않아 백지 위에 그릴 게 더 많았던 행복한 고민에 둘러싸인 시기였어요.


플로리스트가 말하는 꽃의 매력을 듣고 싶습니다.


모든 꽃은 아름답다는 사실은 진리죠.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치유와 공감을 얻기도 하고요. 플로리스트가 되기 전에는 그저 어떤 꽃이든 예쁘고 좋았다면, 지금은 흔치 않은 계절 꽃들에 더 눈길이 가요.


꽃마다 얼굴의 방향이, 그리고 전체적인 크기와 틀어진 각도가 다 달라요. 특성을 잘 파악한 후 만들어진 작품들은 눈에 띄게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캐릭터가 확고하게 잡힌 꽃들이 평범한 모양을 한 꽃보다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같은 맥락에서, 다소 거친 모습이어도 들판에 핀 이름 없는 꽃들 역시 제 역할을 묵묵히 그 자리에서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유심히 살펴보게 되고요.


그리고 꽃은 속도를 갖추고 서서히 아름다움을 발산한다는 걸 많이 느껴요. 일반적으로 활짝 핀 꽃은 얼마 가지 못한다고 제값 주고 사기 아까워하는 인식이 우리에게 있는데, 숍에서 그리고 집에서 매일매일 애정을 주고 꽃잎이 떨어질 때까지 돌보다 보면 활짝 핀 채 최상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는 꽃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럴 땐 아, 마지막 꽃잎이 지는 그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고 아름다움을 끝까지 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단지 시들었다고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아까운 것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꽃을 통해 새삼 느껴요.


단적으로 국내와 국외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이방인의 삶에서 오는 불편을 감수하는 일에서부터, 인생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을 갖추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차이점 같아요. 장점과 단점을 콕 집어 분류하기에는 만족스러운 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힘든 점만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여러 장단점을 포함해서 ‘이방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이 해외에 나와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부분인 거 같고요. 일상의 미묘한 경험들을 통해서, 내 나라의 좋은 점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죠. 그런 순간이 잦아져서 신기해요. 사실 유럽은 아름다운 도시의 외관에 가려진 생활상의 불편함이 너무 많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그리고 해외 생활이 주는 이점은 존재해요. 인생을 대하는 가치관이 다양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피부로 받아들이게 되고 배울 점이 많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된다고 할까요. 각 나라의 시스템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실업과 노후를 맞이하면서 나오는 사람들의 심적 여유도 큰 차이를 보이고요. 한국을 떠나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제 안에서 어떻게 소화되어 남을지는 온전히 제 몫이지만요.

플로리스트의 하루 스케줄은 어떻게 흘러가나요?


꽃 시장을 가는 날은 새벽 4시 30분 정도에 기상해요. 크리스마스 시즌이나, ‘엄마의 날’ 같은 큰 이벤트가 있는 때면 좋은 꽃들을 고르기 위해 더 서두르기도 하고요. 꽃 시장에서 4시간가량 사입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숍에 돌아와 오픈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꽃 시장 카페에서 파리의 친한 플로리스트들끼리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며 근황을 주고받기도 하고 꽃에 관한 이슈도 공유하곤 했는데, 상황이 어려우니 그 시간이 참 아쉬워요. 요즘은 숍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크루아상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업무를 시작해요. 사입한 날은 꽃이 대량으로 들어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죠. 기존의 디스플레이를 모두 새로이 바꾸고, 꽃 컨디셔닝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요.


보통 오후엔 주문 건과 쌓인 메일 건을 처리하고 고객 응대도 동시에 진행합니다. 저는 현재 일본에 본사가 있는 숍의 파리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으므로 일본 시차에 맞춘 미팅과 업무 보고도 중간중간 이루어져요. 코로나 이전에는 저희와 계약된 파리 호텔과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꽃들을 매주 신선하게 준비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현장에서 직접 작업하곤 했어요.


그렇게 하루치 작업 건과 숍의 일과를 마치면 어느새 해가 저무는 시간이 되죠. 사진을 찍을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틈틈이 제작한 부케들을 숍이나 외부에서 촬영하고, 그 사진들을 정리하고 보정해 회사 SNS와 온라인 숍에 홍보합니다. 사실 제가 이 숍에서 하는 일이 멀티예요. (웃음) 플라워 숍을 운영하는 모든 플로리스트들이 그렇듯이요.


학기 중 인턴 시절에는 파리의 다양한 숍들을 돌며 파리 플라워 숍의 시스템과 고객 니즈 파악, 프랑스 꽃의 특성 등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제가 언어를 포함해서 인풋(input) 했던 기술들을 아웃풋(output) 하는 시간이라고 여겨서 지금 이 시간들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최근 유럽 꽃 시장의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유럽도 나라별로 꽃의 트렌드가 조금씩 다른 게 재미있어요. 스타일도 워낙 다양하고요. 공통점은 유럽은 땅이 넓고 다양한 품종의 꽃을 생산해내는 이미지가 강해 자연적인 느낌의 소재를 많이 쓰는 분위기예요. 정해진 색감과 종류의 규격화된 꽃보다는 꽃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최대한 살려 플로리스트들만의 색깔로 표현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아파트라는 개념보다는 메종(Maison) 집, 전원주택, 일반 주택이라도 새시가 없는 테라스가 워낙 많아서 모두 정원의 삶을, 꽃을 키우는 재미를 즐기죠. 책에도 언급했지만 플로리스트들 못지않은 전문적 지식을 지니고 가드닝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또 한동안 드라이플라워에 대한 수요가 대단했어요. 온·오프라인으로 드라이플라워만 제작해서 판매하는 숍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을 정도니까요.


최근 파리에는 플라워 카페를 운영하는 젊은 연령대의 사장님들이 많아졌고, 아틀리에만을 운영하며 이벤트 플라워를 하는 젊은 플로리스트들도 늘어나는 추세예요. 코로나가 종식되면 더 많은 플라워 활동들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요?


오랫동안 혼자서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건강하게 일어났다는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기본적인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요. 그리고 매일이 어슷비슷하지만 분명 제가 마주하는 풍경들을 다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무료한 날은 평소와 다른 길을 밟아 퇴근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와인이나 디저트 먹기를 시도해보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낭만을 찾는 편이에요. 이 도시에서 사는 이유, 그리고 제가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서요. 추억거리가 될 만한 아주 소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다음 날을 맞이하는 게 무의식적으로 기대되겠죠? 어디에서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유학이나 이민을 꿈꾸는 분들은 생각보다 높은 현실의 장벽 앞에서 용기를 내기 쉽지 않은데요, 꼭 전하고픈 한마디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고등학교 시절 과외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생각은 1만 하고 9는 행동에 옮기라고. 그땐 어렸으니 또 그게 가능했겠지만 지금도 정말 맞는 말 같아요. 고민을 한다는 건 어떤 행동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니까요. 기회비용을 따지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저는 늘 선택에 앞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면 후회할까? 안 하면 후회할까?’


그리고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후회하지 않기를 모토로 삼고 결과가 실패로 이어지든 성공으로 이어지든 그 안에서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으려 노력한 편이었어요. 어떤 일이 되었든 삶에서 절대로 무의미한 과정은 없거든요. 부여하기 나름이죠. 그러니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지니고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을 땐 작은 것부터 도전하세요. 꿈을 이뤘을 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요. 저 역시 서른이라는 나이에 적잖이 부담을 느꼈어요. 현실적으로 늦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처음 반년 정도로 잡은 목표 덕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용기가 가상했고 실행력은 있었지만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레이스가 이렇게 길 줄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이에 제 안의 용기가 뜨겁게 되살아났어요. 새로운 목표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설정되었고요.


지치지 않을 만큼의 목표를 잡아, 도전하세요. 그러다 지치면 다시 목표를 잡으면 돼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희로애락의 과정이 없다면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도 없을 테니까요. 누가 뭐라고 하든 나를 지키는 작은 것들이 모여 나를 꿈꾸던 모습 그대로 만들어줄 거라 믿어요.

*이정은

스물여섯, 캐리어 하나 달랑 끌고 일본으로 워홀을 떠났다. 무엇이든 이루고 싶다는 마음, 아직 만나지 않은 꿈을 쫓기에 바빴다. 정착을 결심하고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서른, 인생이 바뀌었다. 운명처럼 파리로 건너가 플로리스트로 일한 지 7년차, 해외 생활 도합 12년차. 모국어에 더해진 두 개의 언어, 두 번의 이민 그리고 이방인의 삶. 꽃처럼 싱그러운 위로를 세상에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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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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