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의 임종 선언을 한 의사 이야기

[라이프]by 예스24 채널예스

김여환 저자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마음으로 돌보고, 1천여 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누구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 수없이 임종 선언을 했어도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고 떠나보내면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깨달은 삶과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에 담았다.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에는 작가님께서 대구 의료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으로 지냈을 무렵, 천 번의 임종 선언을 하며 느꼈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는데요. ‘천 번의 이별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고 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얘기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찾아가지 않는 ‘잃어버린 여행 가방’을 경매에 부친다고 해요. 사람들은 그 가방이 열릴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는데, 꼬질꼬질한 속옷이 나올 때도 있고 애인에게 줄 예쁜 선물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씨도 ‘육신’이라는 여행 가방이 숨길 수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날 때, 나는 과연 그곳에 무엇을 담고 있을까? 라는 말씀을 하셨죠. 저는 호스피스 병동은 하늘나라로 가기 직전에 들리는 마지막 공항이라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많은 환자를 만났습니다. 수많은 환자의 죽음과 그들이 살아온 삶도 함께 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아등바등 바쁘게만 살았던 제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은 삶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남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졌지만,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죽음을 통해서 삶을 배운 것이죠.


죽음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지만, 떠올리고 싶은 않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섭다는 분들도 많고요.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은 늦으면 늦게 올수록 좋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외면합니다. 놀랍게도 죽음이 등 뒤에 닥친 말기 암 환자나 보호자조차도 외면하세요. 90살 된 노모를 모시고 호스피스 병동에 온 자식들도 환자에게 암인 것을 알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어떤 드라마 작가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는 드라마 중에는 초반이나 중반보다는 마지막 장면의 아름다움 때문에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고. 처음 심장 박동이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심장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인생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실패를 거듭할수록 세련되지고 완숙미를 보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죽음만은 그럴 수 없어요. 누구에게나 죽음은 처음이자 마지막 겪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건강할 때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고민해 두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당황하지 않고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호스피스에서 많은 죽음을 보셨잖아요. 책에도 다양한 환자와 가족들의 사례가 등장하는데, 비교적 안정되게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분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워하는 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편안하게 삶을 끝내는 환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 가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첫 번째는 자신이 암에 걸렸고,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입니다. 간혹 가족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사실을 알리면 상태가 나빠지리라 생각하고 감추는데요.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는 환자들이 의외로 통증 조절도 수월하고 심적으로도 더 편안해하세요. 


두 번째는 죽음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누구나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죽음은 권력자, 성직자, 재벌, 노숙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죽음을 부정만 하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많이 봤습니다. 죽음은 독학할 수 없어요. 타자로부터 배워야 해요. 그렇기에 죽음이 들이닥쳤을 때 호스피스에 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먼저 세상을 떠난 선배에게 죽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죽어감’에 대해 설명해 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가까운 지인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신 적이 있는데, 돌아가시기 1~2주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해주시더라고요.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뭔가요? 또, 죽음(임종) 단계는 얼마나 지속되는지 어떤 증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출생일은 비교적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임종일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임종이나 여명 기간을 예측하는 점수가 있기는 하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임종 단계의 시간도 질병의 종류, 환자의 컨디션에 따라서 매우 다릅니다. 의사가 말하는 말기 암과 일반인이 생각하는 말기 암은 의미상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말기 암이란, 죽기 직전의 상태가 아니라 더는 항암제가 암세포를 죽이지 못하는 시기를 뜻합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말기 암 진단을 받으면 갑자기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는 활력 징후가 흔들리는 임종 신호가 보이면 하는 것이 아니라 말기 암 진단을 받을 때 하면 좋습니다. 그때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임종 단계가 되어버리면 남겨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천 번이 넘는 임종 선언을 하셨지만, 가까운 지인이나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작가님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때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전업주부로 살 때 환갑을 채우지 못하시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떠나셨고, 어머니는 제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할 때 폐암으로 떠나셨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보다는 그래도 두 달여 동안 함께 지내면서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이 훨씬 덜 당황스러웠습니다. 한국의 대부분 딸처럼 저 역시 엄마의 죽음 자체보다 힘들었던 엄마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서글펐습니다. 그래서 훗날 저를 위해 울어 줄 딸을 위해서라도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다양한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셨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와 가족이 있다면 어떤 분들이셨나요? 


십 년 동안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으로 일하면서 천 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임종 선언을 했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누군가의 죽음은 익숙해지지도, 담담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호스피스를 그만두었음에도 많은 환자와 가족들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임종실에서 플루트을 부시던 분, 뜨개질하시던 분, 장구 치면서 내가 떠나도 울지마라 하시던 분 등...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그 모든 분들은 제 가슴 속에 오랫동안 살아 계실듯합니다.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을 읽고, 호스피스에 대한 오해가 많이 풀렸다는 리뷰가 많았어요. ‘호스피스 병원 = 환자를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오히려 임종 직전에는 입원할 수 없다는 것이나 암성통증에 쓰는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은 통증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다는 것. 모르핀을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까지 표현하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해서 주변에 ‘죽는 것보다 아픈 게 걱정인’ 사람이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살짝 안심도 되더라고요. 왜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통증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지 얘기해주세요.


통증은 호스피스 병동에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반드시 조절되어야 하는 증상입니다. 특히 말기 암은 다른 병보다 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현대의학은 90% 이상의 통증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1970년대 위암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극심한 통증으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앉아서 돌아가셨는데, 2012년 폐암이 뼈에 전이까지 되었던 어머니는 방사선치료와 마약성 진통제로 고통 없이 편히 누워서 떠나셨습니다. 현대의학의 진수는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통증 없이 존엄성을 가지면서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 장례식에서 불효자들이 가장 많이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 가족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게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의외로 사소한 부분에서 후회합니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해드릴걸, 김치찌개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사다 드릴걸, 그때 그런 말은 하지 말걸...” 저 역시 환자가 입원해서 떠나는 시간까지 의학적인 부분 외에 어떤 일을 해드려야 환자와 가족들이 후회가 없으실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칠순 잔치를 앞두고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보호자가 있으면 미리 앞당겨 칠순 잔치를 열어드렸고, 현대 무용가인 환자가 자신이 연출한 현대무용 공연을 다시 한번 더 보는 것이 소원이라면 공연도 열어드렸어요. 고혈압 환자여서 평소에 먹지 못했던 젓갈이 먹고 싶다면 젓갈을 드리기도 했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고 싶다면 막걸리 처방도 냈습니다. 각자의 삶이 다른 것처럼 삶의 끝자락에서 원하는 것도 환자마다 많이 달랐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일이 아닌 오늘 꼭 행복하셔야 합니다. 누구도 내일이 완벽하게 보장된 사람은 없기 때문이에요. 행복하기 위해서 굳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마 쑥스러워 못했던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마지막에 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해보세요.


저는 어려서부터 책 읽는 일은 좋아했지만, 글을 써서 칭찬받은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호스피스 의사를 하며 책을 내는 작가가 됐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첫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마지막 문장을 생각한 뒤 글을 써나가면 흐름에 일관성이 생기고 글 전체가 한 호흡으로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인생도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제대로 응시하고 살면 삶에도 일관성이 생기고, 순간순간 중요한 갈림길에 섰을 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게 될 거예요. 그것이 우리가 죽음을 배워야 하는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김여환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마음으로 돌보고, 1000명이 넘는 환자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호스피스 의사. 1991년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졸업 후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서른 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 중 암성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환자들을 보며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고위과정을 수료하고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으로 일했다. 국가암관리사업평가대회 호스피스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을(2009년), 국립암 호스피스 사연 공모전 우수상(2011년)을 받았다. KBS 〈아침마당〉을 비롯해 MBN 〈속풀이쇼 동치미〉, KBS 〈강연 100℃〉, 채널A 〈닥터 지바고〉 MBN 〈엄지의 제왕〉 등에 출연했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스포츠생활지도자 2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스포츠 지도자로서의 활동도 겸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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