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버거움에 대하여

[라이프]by 예스24 채널예스

순수하게 ‘사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몇 해 전 딸의 태아보험을 들기 위해 상담을 하다가 보험상담사의 "100세까지 보장이 돼요"라는 말이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였다. 하마터면 “아니요, 그렇게 길게는 필요 없을 거 같아요” 라든지 “100세까지요? 농담이시죠?” 라고 할 뻔했다. '아 정말 이제 100세 시대구나' 라는 실감과 함께 한편으로는 좀 섬뜩했다. 100세라니! 장수프로그램이나 기네스북에 오른 장수노인의 대명사 ‘100세’가 이제 다들 누구나 사는 나이가 된 것이란 말인가?

 

글쎄, 의학의 기술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건강하게 경제적 걱정 없이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제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보험에 가입을 해야 하는 걸까? 남은 세월 너무나 길다. 뭘 해서 먹고 살지, 그리고 남편과 60년도 더 넘게 살아야 한다니(농담이다). 그 긴 세월에 막막해진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주위에서 순수하게 ‘사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잘 나가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 새로운 출발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 일찌감치 자기 사업을 시작한 사람. 모두 지금 하는 일 말고 더 오래 할 수 있는 무언가 다른 일을 찾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만 하고 있다.

 

그런 고민을 내놓을 때 마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이나 긴 말 필요 없이 책 속 글귀 하나 보내곤 한다.

"남은 세월,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걱정에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진짜다. 오직 먹고 사는 문제로'만', 가슴이 답답하고 밤새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단 말이다. 살기 위해 음악을 들어야 하는 날들도 있단 말이다. 내가 제라늄 화분을 정성스럽게 키우는 이유가 못 견디게 힘겹고 외롭고 슬퍼서란 사실을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면 좋겠다. 공항이 그리운 밤이다"

여행작가인 최갑수의 책 『잘 지내나요? 내 인생』에 나오는 문구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 있다 한들 그 힘겨움과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글들도 가슴에 많이 와 닿았지만, 이 글귀를 읽는 순간 코끝까지 찡해지며 ‘아…’ 하는 짧은 탄성이 흘러 나왔다. 마치 나의 숨겨놓은 마음 속을 들킨 것만 같았다.

 

작가는 힘들어 하는 독자와 자신에게 '아자 아자 힘내자' 하는 글이 아니라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동감의 메시지를 던진다. 때론 나만 이렇게 혼자 힘든 것이 아니라는 동지의식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고는 새벽에 깨어 이런 저런 근심걱정들이 하나씩 엄습할 때마다 이 새벽 어딘가에 나와 같이 잠에서 깨어 음악을 듣고 화분을 만지며 긴긴 밤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100세 시대의 버거움에 대하여

위로가 필요한 밤이면 최갑수의 『잘 지내나요? 내 인생』를 꺼내 읽어본다. 에세이류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 책은 가장 좋아하고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엔 이미 늦은 듯 하고, 이대로는 안될 것 같은 서른과 마흔. 아픈 것이 꿈을 잃은 청춘만은 아니다. 간신히 젊음의 터널을 건너왔더니 이제는 빨리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고 독촉이는 온갖 광고들. 궁금해진다. 다들 제2의 인생을 잘 준비하고 있는지, 나만 이렇게 막막한 건지.

 

사는데 의기소침해지고 외롭다고 느껴지고 실패했다고 느낀다면 책 한 권 읽으며 잠시라도 생각을 비워보기를. 100년의 반도 살지 못한 우리의 인생을 벌써부터 너무 힘겨워 하지 말자. 또 그렇게 살아가지는 것이 아닐는지.

 

글ㆍ사진 |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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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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