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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사진톡톡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by연합뉴스

"공부가 제일 행복해요!"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팔순의 수능 공부

"몸 좀 푸세요. 수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이 중요한 거죠."

 

영어 선생님의 말에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켭니다.

 

손녀뻘인 강래경 선생님이 "우리 따님 여기 계셨네요." 하며 한 할머니의 손을 맞잡고 인사합니다. 여기저기서 여선생님에게 '엄마'를 외칩니다.

 

"우리는 열일곱, 열여덟 살이에요. 선생님은 엄마, 아버지예요."

 

"너무 행복해요. 못 배운 한을 풀고 있어요."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일성여고 고3 교실

'평생 학교'인 일성여중고 고3 교실은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연령대는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합니다. 늦은 배움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못 배운 '한'은 모두 한결같습니다.

 

근현대사 시간에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 내용이 나옵니다.

 

"나도 외삼촌을 찾으러 여의도에 갔었지…."

 

78세 차영옥 할머니가 혼잣말합니다. 평안남도 진남포가 고향인 차 할머니는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30년 전 위암과 6년 전 췌장암으로 고생했습니다. 투병은 길었습니다. '암' 보다 못 배운 '한'이 큰 까닭에 2년 전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쳤습니다.

 

"공부를 안 시킨 아버지는 참 나쁜 사람이었다"며 아직도 원망입니다.

 

"대학은 뭐…. 수능은 그냥 한풀이지. 졸업장을 들고 제일 먼저 아버지 묘소에 찾아갈거야..."라며 차 할머니가 책상에 앉습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쉬는 시간 종이 울립니다. 수업내용이 이해가 안 간 학생은 냉큼 선생님에게 달려갑니다. 선생님도 마다치 않습니다. 당번은 칠판을 지웁니다. 짧은 복도도 어수선해집니다. 몇몇 학생은 책상 사이를 콩콩 뛰어다닙니다.

 

체육 수행평가 연습입니다. 서로 자세를 봐주고 '까르르' 웃습니다. 뛰는 게 부러운 학생도 있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여행 가방 벨트로 두 다리를 묶고 있던 77세 문선영 할머니는 교실을 나가 걸어봅니다. 허리 수술로 수업 중에는 두 다리를 묶고 있습니다. 교정을 위해서입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쉬는 시간에도 수업은 계속...

수업 종이 울립니다. 소란은 채 가시지 않습니다.

 

"지혜의 덕목!"하고 반장이 외칩니다. 이내 소란은 한목소리가 됩니다.

 

"한계단 한계단 성장의 계단을 오르자. 기쁨이, 보람이,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칠판 맨 위에 적혀있는 문구입니다.

 

"선생님께 인사."

 

"굿모닝!"

 

반장 할머니가 귀띔합니다.

 

"수업 종이 울려도 떠드니까 집중시키는 거지. 애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호호호"

 

그렇게 시작한 수업은 진지합니다. 할머니들도 영어, 수학이 제일 어렵습니다. "아이구, 아이구, 어렵네!" 하면서도 영어 단어 하나하나에 뜻을 적어 봅니다.

 

영어책은 어느새 메모로 가득합니다. 듣기평가도 대비합니다. 열심히 들어봅니다. 잘 몰라도 반복합니다. 따라 합니다. 즐겁습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할머니의 영어 필기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요."

 

73세 김명선 할머니입니다. TV에서 학교 소개를 보고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찾아왔습니다. 가슴 아팠던 것을 풀어주니 마냥 즐겁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목을 길게 빼고 선생님을 '해바라기' 합니다. 해맑은 미소는 함박웃음에 묻히기를 반복합니다.

 

선생님들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실력이 상당해요. 다른 교과 선생님들도 이런 거 물어보면 바로 답이 안 나와요."

 

솔직하기도 합니다.

 

"너무 어려워요. 선생님!"에 한마디 합니다. "당연하죠!"

 

"암만 봐도 모르겠네."라는 한 학생 말에 "그러니까 배우러 왔죠" 합니다.

 

박미영 한문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며 말합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는데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졸업을 존경합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즐거운 여고 시절

82세 장일성 할머니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통학합니다. 양원초 4년, 일성여중 2년, 일성여고 2년. 8년을 꼬박 다녔습니다. 교과과정을 일 년에서 이년 빨리 끝내야 해서 격주로 있는 토요일 수업에도 참석합니다.

 

서울 마포에서 남양주까지 왕복 4시간입니다. 걷는 시간도 꽤 됩니다. 지하철 경로석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서서 가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도 여느 할머니들과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옆에 있는 사람과 쉽게 말을 걸어 대화합니다. 힘들면 중간에 아이스크림도 사서 한번 깨물어 봅니다. 동네 근처에선 우연히 양원초등학교 후배를 만나 다른 평생 학교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본인의 학교만큼 수업이 좋지 않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합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즐거운 여고생

8년을 다니는 동안 고비도 있었습니다. 일 년 전 남편이 혈액암으로 갑자기 떠났습니다.

 

이년 전에 남들은 다 선생님이 써주는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굳이 남편에게 내밀었습니다. 당신이 허락해야 간다는 뜻이었습니다. 집을 많이 비우니 미안한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에 남편이 나간 뒤 책갈피를 살펴보니 원서가 꽂혀 있었습니다. 그런 남편이었습니다.

 

장 할머니는 식품영양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수시에 붙은 다른 학교도 있습니다만 너무 멀어 다니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몇 개 대학 수시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온 길이 꿈만 같습니다. 멈출 수는 없습니다.

 

집에 가도 할머니는 쉴 틈이 없습니다. 중 2, 초 6년 손자를 돌봐야 합니다. 며느리는 주말에 집에 옵니다. 아들은 바쁩니다.

 

8남매 중 넷째인 장 할머니는 강원도 영월에서 살았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는 꽤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집안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아프신 할머니를 돌봐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숨어서 울었습니다. 해방 이후 야학을 다니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장일성 할머니의 방

장 할머니는 결혼해 3남 1녀를 두었습니다. 학부모 역할은 곤혹스러웠습니다. 학교에 갈 일이 있으면 겁부터 났습니다. 언젠가는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기에는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8년 전 시작한 공부입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수학공부

일성여중고 고3 졸업생 수시 합격률은 100%입니다. 입시전형이 꼭 수능만을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발 벗고 나서는 선생님들 덕도 큽니다. 올해는 208명의 고3 학생 중 80%가 수능을 봅니다.

 

"수시합격이나 수능응시는 학생들에게 성취감이에요."

 

박상의 선생님의 말입니다.

 

수업을 마친 60대 초반의 이석례, 이순욱 학생은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몸이 건강해졌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순욱 학생은 고지혈증약을 더는 먹지 않습니다. 이석례 학생은 갑상선암 수술 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몸이 아닌 '말'을 사렸습니다. 지금은 당당합니다. 여전히 생활고는 있지만 즐겁습니다.

 

물론 다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 할머니는 수업 중 눈물을 흘립니다. 어렵게 구한 전세방을 주인이 갑자기 나가달라고 한 겁니다.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울리는 주인집 전화가 서럽습니다. 친구들이 위로합니다. 격려합니다. 다시 공부합니다. 집에 가서 계약서를 차근차근 살펴볼 일입니다.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요. 너무 고마워요."

 

학생들의 일관된 대답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존중받음'으로 치유된 느낌입니다.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정성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지만, 최대한 정장을 입으려 합니다. 학생에 대한 예의입니다. 교육의 의무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학교입니다.

칠순, 팔순 할머니의 수능 도전기

수업 집중!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xyz@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