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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김길원의 헬스노트

"이국종 교수가 제 아들을 살렸습니다"

by연합뉴스

2016년 11월 27일 새벽 5시. 광주·전남 지역에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시각 인근에서 승용차 운전대를 잡고 있던 대학생 A(27)씨는 광주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호남고속도로 갈림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광주 방향 도로로 진입한다는 게 빗속에 순간의 착각으로 서울로 가는 도로에 잘못 올라타고 말았다. '아차' 하는 생각에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운전대가 흔들렸고, 승용차는 빗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넘어 옹벽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그렇게 A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A씨의 어머니 이모(55)씨가 아들의 사고소식을 들은 건 사고 1시간쯤이 지난 후였다. 아들은 이미 구급차에 실려 인근 조선대병원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이송된 후였다. 당시 아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의식이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갈비뼈, 목뼈, 척추뼈가 부러지는 등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당시 진단명만 15개나 됐다.

"이국종 교수가 제 아들을 살렸습니다

이국종 교수와 환자 A씨 [환자가족 제공=연합뉴스]

이후 중환자실에 있는 3일 동안 아들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상태가 더 나빠져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폐렴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이씨와 가족들 눈에는 제대로 된 치료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의료진이 마치 아들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회복은커녕 아들을 잃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렇다고 아들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때 서울에 사는 오빠한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여러 사람한테 물은 결과,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를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오빠는 이씨에게 "이국종 교수에게 가면 아이를 살릴 수도 있다. 빨리 병원에 연락해서 애를 당장 옮기라"고 했다.

 

온 가족이 나서 천신만고의 노력을 한 끝에 A씨는 사고 3일만인 11월 30일 낮 12시 조선대병원에 온 소방헬기를 타고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로 갈 수 있었다.

 

이씨는 당시 조선대병원에 아들을 이송하러 온 이국종 교수와 김은미 외상전담간호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아주대병원 헬기가 옥상에 도착하고 나서 이국종 교수를 보는 순간 '이제 우리 아들은 살았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더욱이 아들을 헬기에 태우고 돌아가는 이국종 교수는 "아들을 꼭 살리겠습니다"라며 가족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이 교수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의 보호자한테 이 얘기를 꼭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행히도 이씨의 희망은 이국종 교수가 아들을 돌보고 나서 현실이 됐다.

 

A씨를 데려간 이 교수팀은 환자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이튿날 약 6시간에 걸쳐 외상외과와 신경외과 의료진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대수술을 했다. 물론 이 수술을 받고 나서도 아들에게 다시 패혈증이 찾아오면서 위기는 이어졌다.

 

하지만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이 교수의 일념에 가족의 간절함이 더해지면서 A씨는 의식불명 보름만인 12월 12일 의식을 되찾았다. 이국종 교수를 찾기 전만 해도 '아들을 잃을지도 모르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주변의 위로가 귓가를 맴돌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을 훨훨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이 씨는 "아들이 살아난 건 이국종 교수였기에 가능했고, 기적이었다"고 되뇌었다. 아들 A씨는 이후 12월 28일에 일반병동으로 옮겨졌으며, 1월 19일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국종 교수가 제 아들을 살렸습니다

A씨가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기부한 헌혈증서 61장. [환자가족 제공=연합뉴스]

환자도 이런 의료진의 고마움에 화답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헌혈증서 61장을 기부한 것이다. A씨는 "내가 받은 큰 사랑을 중증외상 환자에게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서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진료를 받고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경험을 한 이씨는 요즘 귀순 병사를 구한 이 교수를 소식과 권역외상센터 예산지원 소식을 전해 들으며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아들을 옮길 당시 조선대병원과 가까운 전남대병원에 아주대병원과 동등한 권역외상센터가 있었다는 사실도 요즘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또 응급실에 실려 가야 할 환자와 외상센터에 가야 할 환자를 적절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도 처음 눈을 뜬 대목이다.

 

이씨는 "교통사고 당시 아들은 누가 봐도 중증 외상에 해당했는데도 외상센터 대신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 하지만 당시엔 이런 문제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다"면서 "외상센터의 예산지원이 확대된 만큼 그 역할과 중요성도 국민한테 제대로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가지 궁금증을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만약 이런 사고가 다시 생긴다면 이국종 교수를 찾아가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외상센터를 찾으시겠습니까?". 물론 그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지만 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bi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