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비극 담은 총알 70년 만에 무릎에서 꺼낸 81세 할머니

[이슈]by 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오빠가 장난감 총으로 발사한 실탄 무릎에 박혀

70년동안 잊고 살다 인공관절 수술 차 엑스레이 촬영으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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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혜 할머니 무릎에 70년 동안 박혀 있던 총알 [부산본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속이 시원합니다. 70년 세월 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죠."


이달 8일 부산 사하구 부산본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황정혜(81) 할머니는 지긋지긋한 관절염을 치료하면서 70년 동안 잊고 지내던 한국전쟁의 아픔을 함께 도려냈다.


15일 할머니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70년 전의 기억을 되짚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황 씨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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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무릎에서 총알 꺼낸 황정혜 할머니 모습. [부산 본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달 초 최근 악화한 무릎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내원한 황 씨는 무릎 엑스레이 촬영을 한 뒤 깜짝 놀랐다.


엑스레이 사진에 총알 모양의 금속이 나온 것이다.


병원 영상의학과와 의사도 몇번이고 엑스레이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지만 총알이 맞았다.


그때까지 몸속에 총알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황씨는 오래전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했고 문뜩 70년 전 한국전쟁 당시를 떠올렸다.


황씨는 11살이던 1950년 고향인 경북 의성을 떠나 경산에서 3개월간 피란 생활을 한 뒤 다시 의성으로 돌아왔다.


다시 찾은 고향은 폐허가 돼 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실탄과 망가진 채 버려진 총은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줬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것조차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황씨보다 5살 많던 오빠가 장난감 총을 만들었고 길에서 주운 실탄을 넣어 놀던 중 실수로 총이 발사됐다. 총알은 벽을 맞은 뒤 황씨 무릎에 맞았다.


아버지는 무릎에서 피가 나는 황씨를 엎고 20리를 뛰어 동네 의원에 도착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치료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의사가 핀셋으로만 확인한 뒤 총알이 없다고만 말했고 그렇게 상처는 아물었다.


그렇게 70년이 흘렀고 황씨는 최근 관절염 수술을 위해 엑스레이를 찍은 뒤 처음 총알이 몸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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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할머니 무릎에서 꺼낸 총알 [부산 본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병원은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서 총알도 함께 제거했다.


그의 몸에서 나온 총알은 길이 1.3㎝로 심하게 부식된 상태였다.


황씨는 "70년 동안 내 몸에 총알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신기하게도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깐 70년 전 한국전쟁 중 무릎을 다친 기억이 또렷하게 났다"고 말했다.


부산 본병원 한현민 원장 "총알이 뼈나 신경 등에 전혀 지장이 없는 근육 안쪽에 박혀 70년 동안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 같고 다행히 총알 제거와 인공관절 수술도 무사히 마쳐 환자가 잘 회복하고 있다"며 "병원에서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뜻깊은 치료를 하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handpother@yna.co.kr

2020.06.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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