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보내는 여름 해발 1천m에서 즐기는 차박

[여행]by 연합뉴스

강릉 안반데기, 태백 두문동재·삼탄아트마인, 정선 함백산 등

온도 낮아 여름 여행지로 최적…불빛 없어 별 관측도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언택트 여행' 바람이 불면서, 사람과 접촉할 필요 없는 여행지가 인기다.


그런 의미에서 인적없는 곳을 다니는 오지 여행도 주목을 받고 있다.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면 최적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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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너덜샘에서의 차박. 캐논 5D mk4카메라와 16∼35㎜ 광각 렌즈로 장노출한 뒤 프로그램으로 사진 수백장을 붙여 별의 궤적을표현했다. [사진/성연재 기자]

올해는 특히 차박(車泊)을 비롯한 아웃도어 열풍이 거세다.


그러나 자칫 장소를 잘못 고르면 차박은 잠 못 이루는 '열대야박'(熱帶夜泊)이 될 수도 있다.


해발 1천m가 넘는 고원지대라면 이런 걱정은 사라진다. 고원지대는 차박 뿐 아니라 여름 여행지로도 최적이다.

해발 1천100m 강릉 안반데기

이 여름을 가장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푸른 바다 넘실거리는 동해? 얼음장처럼 시원한 물이 쏟아지는 계곡?


올여름 여행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아마도 차박이 아닐까.


바다와 계곡을 모두 버리고 고원으로 향했다. 해발고도가 낮을 경우, 차 내부는 찜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을 고심하다 정한 곳은 강원도의 고원들이었다.


해발 1천100m의 고지대인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의 안반데기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랭지 채소 재배지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온을 만끽할 수 있어 최근 몇 년 사이 '차박 성지'로 떠올랐다.


주변에 불빛이 없어 별을 관측하기 위해 밤중에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


안반데기를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꼬불거렸다. 올라가는 길에 정상 아래쪽 카페 앞 공터에서 차박을 한 60대 남성을 만났다. 승합차에서 잠을 잤더니 쌀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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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의 안반데기 [사진/성연재 기자]

가장 위쪽에 있는 멍에 전망대 인근 주차장은 한때 차박 성지로 알려졌으나 쓰레기 문제 등으로 강릉시에서 차박을 하지 못하도록 계도해 이곳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안반데기에서의 차박은 그래서 포기하기로 하고 서늘한 공기만을 만끽하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멍에 전망대 인근의 주차장에 올라가니 운해가 이쪽저쪽으로 흐른다.


저 멀리 한쪽에서 꼬물거리는 것을 보니 배추 심는 사람들이다. 방해하지 않도록 잠시 지켜보다 산을 내려가 태백으로 향했다.


태백은 해발 700m에 자리 잡은 도시다.

해발 1천268m 두문동재와 850m 삼탄아트마인

태백산 아래쪽은 태백시와 정선군이 자리 잡고 있다.


태백산국립공원은 면적 7만㎢로, 강원도 태백시(면적의 73.0%)·영월군(0.1%)·정선군(1.3%)과 경북 봉화군(25.6%)을 아우르고 있다.


태백산을 오르내리는 데 가장 좋은 곳은 태백시와 정선군 두 곳이다.


우선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삼탄아트마인을 들렀다. 삼탄 아트마인은 예전에 석탄을 캐내던 광산이 있던 곳이다.


그곳이 이제는 예술을 캐내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환골탈태했다.


아트마인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 석탄 갱도가 시작하는 부분이라 해발 850m 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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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삼탄아트마인에 운무가 낀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갱도 위의 '아빠, 오늘도 무사히'란 문구가 가슴에 와 박힌다. 그 문구가 박힌 곳이 '수평갱 850'이다.


운무가 삼탄아트마인 주변을 휘감았다. 고지에서 맛보는 서늘함이 좋았다.


내부에는 150여개국에서 수집한 10만여점의 예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삼탄아트마인에서 나와 태백산 쪽으로 더 올라가면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있는 해발 1천268m의 고개 두문동재다.


두문동재에서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냉장고에서 한기가 쏟아지듯 이쪽저쪽으로 운무가 춤을 춘다. 하얀 물 입자가 보일 지경이다. 마치 옛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나 나온 듯한 장면이다.


상쾌한 냉기를 즐기며 태백 쪽으로 향하면 해발 1천180m 지점인 태백시 화전동 기슭에 너덜샘이 보인다. '돌이 많은 지대'라는 뜻의 '너덜' 가운데 있는 샘이다.


너덜샘은 태백시가 2003년 샘터공원으로 조성한 덕분에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혹자는 1천300리 낙동강의 발원지가 황지연못이 아니라, 이곳 너덜샘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너덜샘은 갈수기인 한겨울에도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특히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 지역 주민들로부터 '자연 냉장고'로 불린다.

해발 1천180m 국내 최고(最高) 캠핑장 너덜샘야영장

덕분에 이곳은 여름철 지역 주민에게만 알려진 최고의 여름 캠핑장이 됐다. 해발 1천18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最高) 캠핑장이기도 하다.


인기의 가장 큰 이유도 그래서 시원한 날씨다. 여기에 태백 시내에서 가까운 데다 차량으로 바로 올라와 캠핑할 수 있다는 편리성, 풍부한 식수도 한몫한다.


옆자리에 주차한 승합차 주인은 온 지 20일째라고 한다.


물이 콸콸 흐르는 너덜샘 바로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자리를 잡았다는 표현을 쓸 것까지도 없다. 차를 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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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샘 야영장 위로 쏟아지는 별빛 [사진/성연재 기자]

우선 2열을 접어 바닥을 평평하게 한 뒤 매트를 깔고 침낭을 폈다. 텐트를 펴는 캠핑에 비해 여러 과정이 생략돼 편리했다. 트렁크를 열고 테이블과 의자를 내렸다.


그리고 불을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비화식' 식사를 했다. 야영장이긴 하지만, 태백산 국립공원 내부라 심적인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식사하고 트렁크 문을 열고 하늘을 봤더니 별이 쏟아졌다.


삼각대를 들고 이쪽저쪽을 찍다 보니 자정이 넘어간다. 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높은 고도에서의 캠핑이라 동계용 오리털 침낭을 준비했다. 조금 열어놓은 유리창 사이로 쌀쌀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차량용 모기장을 준비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높은 고도라 모기가 없었다.


기분 좋은 쌀쌀함을 느끼며 잠에 빠져들었다.

해발 1천300m, 바람과 구름의 매봉산

내친김에 태백시 창죽동 소재 매봉산 바람의 언덕도 올라가기로 했다.


1천300m 높이의 매봉산 바람의 언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시사철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한때는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시원함을 잠시 즐기려는 사람들만이 찾고 있다.


공교롭게도 비가 내려 운무가 가득 차는 바람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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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의 고랭지 배추밭 [사진/성연재 기자]

길도 좁고 미끄러워 시내로 일단 철수한 뒤 태백의 명물 '물닭갈비'를 맛보기로 했다.


시내 한 물닭갈비 전문점 골목길에 차를 댄 뒤 음식을 먹던 중 쿵 하는 소리가 나 골목길을 내다봤다. 누군가가 후진하다 내 차를 받은 것이다.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날이다.


힘들게 올라간 매봉산은 시계 제로였고, 접촉 사고로 밥도 못 먹고 다시 나왔다.


보험회사를 부르고 사고 처리를 하는 동안 구름이 살짝 걷힌다. 잠시 고민하다 다시 매봉산으로 향했다. 날이 갤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꼬불거리는 길을 올라 해발 1천300m까지 다시 올라갔는데 잠시 해가 뜨는가 싶더니 다시 운해가 자리를 잡는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서늘한 공기를 만난 것에 만족해야 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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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물닭갈비 [사진/성연재 기자]

해발 1천330m 함백산에서 만난 '진또배기'

태백산에서의 기분 좋은 차박을 끝내고 이번에는 정선군 고한읍의 함백산 쪽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로는 지방도 414호선의 함백산 만항재 구간으로, 해발 1천330m다.


만항재 쪽에서 운탄고도 쪽으로 난 임도를 5분가량 가면 풍력발전소가 보인다. 그 아래쪽에 작은 공터가 있는데 차량 몇 대가 차박을 하고 있다.


개조된 승합차가 눈에 띄어 인사를 했다. 중년 부부는 자신을 왕년에 가수로 활동한 '머루와 다래'라고 말한다.


최근 '미스터 트로트'에서 리바이벌돼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 '진또배기'의 원곡자다. 진또배기 외에 '심봤다' 등의 히트곡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강원도 정선에 자리를 잡고 '108 산사 순례의 길' 등 불교 행사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자주 이곳에 올라와 차박을 하거나 피크닉을 즐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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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에서 만난 '머루와 다래' [사진/성연재 기자]

400만원을 들여 서울에서 차량도 개조했다. 올해 초부터 차량 구조변경 절차가 간단해졌기 때문이다.


평탄화를 통해 잠을 잘 수 있도록 했고, 아래쪽은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공연하러 다닐 때를 대비해 침실공간과 트렁크 공간을 분리할 수 있도록 가림막도 설치했다.


최근 코로나19로 공연이 뜸해져 이렇게 차박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한다.

차박 준비물과 주의점

차박은 말 그대로 차 내부의 공간을 활용해 숙박하는 것으로, 짧은 여행 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세운 뒤, 차 내부에서 자며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차박은 캠핑이나 낚시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던 숙박 방법이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차박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차박을 위해서는 우선 '평탄화'가 필요하다. 바닥이 평평해야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2열을 접으면 트렁크와 같은 높이가 되는 차량을 소유한 경우 평탄화에 따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국산 차량의 경우 쉐보레의 올란도나 한국지엠의 윈스톰 맥스, 기아의 쏘렌토 등이 가장 평탄화하기 쉬운 차량으로 알려졌다.


수입차의 경우 랜드로버, 지프의 그랜드체로키나 랭글러 등이 편리하다. 이외의 차량은 직접 짜 맞추거나, 전문 업체에 평탄화 침상을 주문하면 된다.


단돈 몇만원에서 100만원대까지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고가의 제품은 아래쪽에 수납공간을 둘 수 있다. 기타 필요한 제품으로는 캠핑용 매트와 침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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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용 선루프 모기장 [사진/성연재 기자]

여름철 차박 캠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차량용 모기장이다. 차창에 뒤집어씌운 채 문을 닫으면 모기장이 형성되는 형태로, 최근 차박 캠핑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선루프가 있는 차량용 모기장과 트렁크에 장착하는 모기장도 판매되고 있다.


초심자들이 놓치기 쉬운 것이 타프(그늘막)다. 한여름의 경우 고원지대를 제외하고는 차량 내부에서 생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차박 타프는 블랙펄 코팅이 된 제품을 찾는 것이 좋다. 일반 타프와 비교하면 차광효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


차박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쓰레기, 주차 등의 문제로 주민과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오고, 주차장에서 취사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대형 마트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시장을 이용하는 것을 권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polpori@yna.co.kr

2020.08.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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