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보내는 여름 - 낙동강변에 숨겨진 마을들

[여행]by 연합뉴스

농무이·양원마을…경북 봉화의 청정 오지 마을을 가다


경북 북부에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청정한 오지 마을이 의외로 많다. 경북 봉화의 오지 마을로 통하는 길은 낙동강 옆으로 난 트레킹 코스뿐.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면 길이 잠기고 완전 고립 상태가 된다. 이곳에서 채취하는 토종 벌꿀과 산나물은 청정한 자연의 결정체다.

농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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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 속의 농무이 [사진/성연재 기자]

지난 2013년 스위스관광청은 소천면 분천리의 낙동정맥 트레일 한 구간에 '체르마트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체르마트길은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가끔 정차하는 비동 승차장 바로 앞에서 시작해 양원마을 앞까지 약 2.2㎞ 구간이다. 이곳은 스위스의 마터호른으로 향하는 관문인 체르마트처럼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열차로만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당시 스위스관광청은 이곳이 전기차를 제외한 일반 차량이 가지 못할 정도로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체르마트와 닮은 꼴이라 해서 체르마트 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 지역을 위성지도에서 보면 젖소의 늘어진 젖 모양과 비슷하다. 젖소의 배 부위를 스쳐 지나가는 곳이 체르마트길이라면, 아래쪽 젖 모양은 숨겨져 있는 농무이 지역이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체르마트길만 지나가기에 농무이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 언제나 비밀의 문은 남들이 다들 알고 있는 흔한 길목 한쪽 구석에 숨어있다. 농무이로 향하는 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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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접한 절벽에서 토종벌꿀을 살펴보는 윤재원 씨 [사진/성연재 기자]

체르마트길 초입에서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이 나타난다. 윗동네인 양원마을의 윤재원 씨가 토종 벌꿀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곳을 지나 5분가량 내려가면 20m 높이의 절벽과 함께 낙동강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펼쳐진다. 윤씨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잠시 서는가 싶더니 다람쥐처럼 절벽을 타고 내려가 절벽에 매달렸다. 토종 벌꿀의 생존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낭충봉아부패병이 전국에 급속도로 퍼져 토종벌 농가가 큰 피해를 봤다.한번 퍼지면 그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고 예방과 치료가 안 돼 피해가 극심하다.


윤씨를 따라 어렵게 절벽 길을 따라 내려갔다. 카메라를 매고 내려가려니 여간 몸이 뻣뻣한 게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저기 아래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이마와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하나를 왼손으로 잡고 서서 윤씨가 벌통 뚜껑을 따는 모습을 지켜봤다. 윤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곳 절벽 아래 설치된 토종벌통에는 병이 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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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벌이 지은 벌집에 꿀이 가득 차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그가 벌집 채 건네주는 꿀을 받아먹었다. 벌집은 벌들이 천연 꿀을 이용해 만든 밀랍으로, 먹어도 안전하다. 입에 넣고 씹었더니 밀랍이 부서지며 안에 가득 찬 벌꿀이 입안으로 흘러내렸다. 토종 벌꿀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이 일대뿐만 아니라 전국의 명산 절벽마다 벌통을 매달아 놓고 토종벌꿀을 생산한다. 절벽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사람 손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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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가 낙동강물이 넘쳐 흐르는 콧구멍 다리 위를 아슬아슬 건너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한번 그와 함께 벌꿀을 따는 현장을 방문한 사람은 단골이 된다. 그는 올해 꿀 생산이 많지 않아 수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무이 마을에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다. 윤씨는 "벌꿀 관리를 위해 지은 이 집에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와서 살겠다고 하면 가끔 내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양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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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마을의 배바위산 [사진/성연재 기자]

농무이와 각금의 들머리가 되는 오지 마을이 양원마을이다. 예전에는 기찻길이 마을을 관통했지만, 기차역이 없었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6.5㎞ 떨어진 분천역이나 5.6㎞ 떨어진 승부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봉화 춘양장을 본 뒤 돌아오곤 했다. 춘양장에서 돌아올 때는 아래쪽인 분천에서 내리지 않고 마을 위쪽인 승부까지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보따리를 차창을 열고 던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5.6㎞를 걸어와 물건을 가져갔다. 보따리를 가지러 철길을 걷다가 기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주민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1988년 주민들은 마을에 기차가 서게 해 달라는 간절한 손편지를 청와대에 보냈다. 비뚤비뚤, 손으로 쓴 순박한 상소문에 청와대가 반응했다. 철도청으로부터 역으로 인정을 해주겠다는 통보가 왔다. 그래서 주민들이 합심해서 손수 건설한 코딱지만 한 역사는 국내서 '가장 작은 민자역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10여가구가 산다.


농무이에서 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낙동강의 물이 콧구멍 다리 위로 넘쳐 거세게 흘러갔다. 며칠 전 비가 왔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펼쳐졌다. 윤씨의 승용차가 넘치는 물을 헤치며 나아갔다. 아무리 얕게 보여도, 낙동강 강물이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윤씨는 며칠 전에는 이것보다 더 깊었다면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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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향기와 함께 별을 바라볼 수 있는 라벤더 농장 [사진/성연재 기자]

윤씨는 염소 방목을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약초와 흑염소로 진액을 만들어 미리 주문한 도회지 사람들에게 판다. 인근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가 빛 공해가 없이 밤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지만, 이곳도 영양군에 뒤지지 않을 만큼 어둡다.


별 관측에는 이 마을 한쪽에 자리 잡은 라벤더 농장이 최적지다. 탁 트인 라벤더밭을 배경으로 별을 관찰하다 보면 라벤더 향기와 쏟아지는 별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한여름이라도 쌀쌀하니 긴 팔 차림을 권한다.


하루에 3번씩 무궁화 상·하행선이 오가는데, 이곳에서 정동진까지 2시간이 걸린다. 여름 휴가로 경북 내륙 오지와 동해안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양원마을 낙동강변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이 마을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 장아찌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주민들은 근처 산골짝마다 자신만 아는 산나물 군락지가 따로 있다. 그 위치를 이웃에게는 말해주지 않지만, 외지인들에게 주는 밥 인심만큼은 푸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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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 도시락 세트 [사진/성연재 기자]

방순자 씨 집에서는 10명 이상의 단체가 미리 주문하면 산나물 위주의 화전민 도시락 식사를 할 수 있다. 방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지인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차림에서 도시락으로 판매 방식을 바꿨다. 이 도시락에서는 여느 도시락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산나물 장아찌 등 진짜 화전민들이 먹던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오가피순 장아찌와 두릅 장아찌, 땅두릅 장아찌는 물론 참외 장아찌도 제공된다. 특히 바로바로 담근 김치가 신선하다.


(봉화=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polpori@yna.co.kr

2020.08.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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