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 뭐 꼭 그렇진 않습니다.

[컬처]by 김연일

기다리신 분은 거의 없겠지만, 오랜만입니다. 흔한 핑계이긴 한데, 그 사이 좀 바빴습니다. 먹고 살려다 보니 요즘엔 음악 일보다는 사운드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데요, 청각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이는 두 작업의 궁극적인 차이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영화 상에서 음악과 사운드가 구현되는 것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즉, 현대의 일반적인 유성영화에서라면, 음악 없는 영화는 있을 수 있지만 사운드 없는 영화는 없습니다. 음악 없는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은 어떻게 느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 개인적인 기억만으로 유추해보면, 음악이 있는 영화를 보는 게 더 편하긴 합니다.


영화 음악의 기능 중에는 이야기의 시간적인 경과를 압축하는 기능도 있고요, 심각한 장면이 나올 때 그 정서를 양식적으로 만들어 너무 깊게(?) 빠져드는 걸 막아주기도 합니다. 속도감이나 리듬감을 조절하는 기능의 영화 음악은 그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태껏 써 온 대로, 그 음악들이 제 각각의 이유로 좋기까지 하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화에 음악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가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자체로만 놓고 보면, 배우들의 연기와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련의 과정을 연출할 감독, 딱 여기까지면 됩니다. - 그렇다고 이 외의 것들의 중요성을 낮게 보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음악이 없는 영화가 종종 있습니다. 사실에 근거하거나 사실인 것처럼 보이려고 음악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영화 본연의 요소들에 집중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상당히 유명한 코엔 형제입니다. ‘노인을 위한…’ 이전과 이후에도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어온 감독 콤비이지요. 매 영화마다 상당히 영리한 연출 특성을 보여주고 있어 영화 애호가들한테 인기가 많은 감독입니다. 흥행작으로는 ‘애리조나 유괴 사건’, ‘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있는데, 참고로 저는 ‘인사이드 르윈’을 제일 좋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인에 관한 영화에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함께 같은 해에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도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만큼 안 쓴 건 아닌데, 일반적으로 음악이 사용되는 자리가 아닌 풍경∙마스터 샷을 보여줄 때에 소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로 영화 전체적으로는 ‘어, 음악이 없네’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폴 토머스 앤더슨은 전작인 ‘매그놀리아 (Magnolia)’나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 Drunk Love)’ 를 통해 다소 엉뚱하지만 깊이 있는 연출을 보여준 바 있어 나름 매니아층이 있는 감독입니다. ‘마스터 (The Master)’란 영화도 특이하구요. ‘마스터’의 음악은 제가 기억하는 선에서 ‘희한하게 음악을 쓰는 케이스’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하려고 묵혀두고 있습니다.

‘그래비티 (Gravity)’ 로 유명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 도 음악을 소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소스 음악 위주인데, 씬에 따라서 소스 음악이 스코어 음악으로 변했다가 다시 소스 음악이 되는 식으로 진행되더군요. 링크한 씬은 일반적인 영화에서라면 음악이 얹힐 법한 자리입니다. 만약 자동차 라디오라도 틀어놓았다는 설정이라면, 자동차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서 스코어 음악으로, 그리고 다시 자동차 스피커로 집어넣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가하게 음악을 켜놓고 듣고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는지 다른 씬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씬에 맞게 작곡한 영화 음악을 넣지도 않았구요. – 음악 사용법에 있어서 일관성을 깨는 게 되겠지요 - 


‘그래비티’에서 쿠아론 감독은 우주공간이라는 현실에 맞추기 위해 사운드를 과감히 생략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서 스타워즈 등 다른 영화들에서는 우주 공간임에도 소리들이 다 들립니다. 그런데 사실 소리는 공기가 없으면 전파되지 않으니, 그래비티처럼 소리가 없는 게 과학적으론 맞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을 텐데, 쿠아론 감독은 그렇게 해버렸네요. (주인공이나 라디오 교신의 목소리라던가 빈 공간을 채우는 음악정도는 들어옵니다.)

블록버스터로 홍보 해놓고 뚜껑을 열어보니 홈 무비였다는 희대의 마케팅으로 유명한 ‘클로버필드 (Cloverfield)’는 마치 편집이 안된 듯한 개인용 홈 비디오처럼 만들어졌습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올 리는 없지요. 이처럼 다큐적인 매너, 사실성 또는 사실성을 가장하려는 영화들은 그래서 음악을 안 쓰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클로버필드’와 ‘블레어위치 (The Blair Witch Project)’도 그렇고, ‘알이씨 (REC)’ 같은 영화들은 공포나 슬래셔 장르이면서  음악을 사용하지 않은 대표적인 예들입니다. (공포스러워서 영상은 생략합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음악을 안 쓰거나 조금만 쓰게 되면 연기라던가 연출적인 구성 같은 영화 본연의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음악은 영화에 장식을 더해주거나 메시지 과장 내지는 감소의 의도를 표현해줄 수 있고, 그것도 연출의 방식이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화적인 메시지에 무게를 많이 두려는 감독들은 음악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서, 정말 필요한 부분에서만 혹은 영화 본연의 것을 능가하지 않는 선에서만 정선한 음악이나 최선을 다해 만든 음악을 사용합니다. 극단적인 경우, 음악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아예 음악을 쓰지 않는 역선택을 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러한 감독주의(?)적인 방식이 일반적인 영화에도 타협적으로 적용되면서, 현대 영화는 음악의 배치 측면에서 1980년 이전 영화와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감정적으로 중요한 부분 또는 감독이 힘을 주고 싶은 씬에 음악을 같이 얹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그 앞까지 음악이 전개되다가 정작 그 자리에서는 빠져 연기나 연출을 더 잘 보이게 하거나, 정서적인 여운이나 상황 이해의 연산이 끝날 때쯤에서야 음악을 배치하는 식으로 구성합니다. SF블록버스터 같은 영화에서도 이런 방식을 써서 중요한 감정 씬이나 순간을 음악 없이 처리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 이게 좀더 모던하게(!) 느껴집니다.


여튼 음악 없는 영화가 있나 싶지만, 찾아보면 그런 영화들이 꽤 있고, 그 중에 좋은 영화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명감독들은 음악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법 없이 많이 쓰지 않는 경우가 더 많구요. 물론, 좋은 음악들이 많이 얹혀져 정서적인 울림이 극대화 되고 또 그 울림이 오래도록 남는 영화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식으로 치면 양념보다는 원재료에 신경을 더 쓰듯, 음악이 없거나 조금 쓰인 영화가 연기나 연출력 같은 영화 본연의 측면에서 좋은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쪽이신가요?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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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음악과 사운드 위주로 보는 글. 몇 박자 늦게, 근과거의 영화들을 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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