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콧노래같은 악기 클라리넷(Clarinet)과 색소폰(Saxophone)

[컬처]by 김연일

제목이 좀 구식이고 요즘 표현으로 ‘오글거리는’ 것 같지요? 딱히 모던한 듯 담담하면서 간단한 표현을 하려니 저란 사람이 역시나 구식인 면이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악기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서 하고 있는데, 소리내는 방식에 따라서 대표적이거나 개성이 분명하다거나, 혹은 그냥 제가 좋아서 고른 악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클라리넷입니다.

연인의 콧노래같은 악기 클라리넷(Cl

우선 가장 유명한 곡을 하나 링크합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이 곡은 곡 자체보다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에 삽입되었다는 것 때문에 대중적으로도 익숙한 곡입니다. 여기서 들리는 클라리넷은, 멜로디의 움직임을 비교적 자제한 탓에, 악기 고유의 음색에 집중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차분하지만 솔로 악기로서의 존재감이 확연합니다.

 

음색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가요? 이걸 말로 설명하려면 그때마다 말이 달라지긴 하겠습니다만, 저는 제목처럼, ‘누군가 친밀한 사람이 바로 옆에서 흥얼거리는 콧노래’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위에 링크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클라리넷 협주곡 부분의 클라리넷은, 그 연주하는 음역대가 가장 클라리넷다운 음역입니다. 예의 그 콧소리같은 느낌도 있고, 적당히 묻히는 느낌도 있지만, 사실 클라리넷은 목관악기 중에서 가장 음역이 넓으면서, 음역에 따라서 음색이 많이 차이가 나는 악기에요. 저음에선 다소 위협적으로 들리거나 바람소리가 많아서 낮은 한숨처럼 들리기도 하고, 고음역에서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들리게도 할 수 있습니다. 

 

넓은 표현력을 가진 덕택에 익살스럽거나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도 적당한데, 그런 예를 하나 링크합니다.

언젠가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존 윌리엄스의 ‘터미널 (The Terminal)’ 사운드트랙의 1번트랙입니다. 여기서의 클라리넷은 모짜르트 협주곡의 클라리넷처럼 마냥 차분하지는 않습니다. 움직임도 화려하고, 앞뒤로 막 움직이는 것처럼 음색도 묻혔다가 귀를 자극했다가 그러지요. 그런 움직임과 음색의 변화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달되는 느낌은 ‘장난스럽고’, ‘유쾌하고, 좀 ‘익살스럽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공항에 갖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낙천적인 사람이라 그런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에는 클라리넷 - 정확하게는 ‘막 움직이는’ 클라리넷 - 이 적당하다고 수긍이 됩니다. 

역시나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한스 짐머의 ‘드라이빙 미스데이지 (Driving Miss Daisy)’에서도 클라리넷의 음색이 주는 ‘유머러스한 콧노래’의 느낌이 잘 살아있지요. 살짝 늘어지는 듯한 음들의 연결은 노인들 특유의 적당한 심술(?)인 듯도 하구요.

 

클라리넷은 재즈 음악에서도 초기부터 굳건한 위치에 있습니다. 사실은 위에 링크했던 ‘터미널’의 사운드트랙은 재즈 오케스트라로 볼 수도 있구요. 재즈 역사상 유명한 클라리넷 주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일단 생각나는 사람은 베니 굿맨(Benny Goodman) 입니다.

연인의 콧노래같은 악기 클라리넷(Cl

근데 뭔가 생각나는 게 있지 않습니까. 재즈야 현대음악에서 기존 악기들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장르라서 뭐가 딱히 대표적인 악기다 말할 수 없이 가리지 않고 좋은 연주자들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재즈를 대표하는 악기는 뭐니뭐니해도 색소폰(Saxophone)일 것입니다. 또 근데, 클라리넷의 음색과 색소폰의 음색은 특유의 콧소리 같은 음색과 음역대별 특징이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이유는, 애초에 색소폰은 클라리넷을 개량해서 나온 악기라서 그렇습니다. 연주자들도 클라리넷 주자들은 대부분 색소폰도 잘 연주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Cinema Pradiso)’ 사운드트랙의 연이은 트랙에서 9번 트랙에서는 클라리넷이 멜로디를 담당했지만 10번 트랙에서는 색소폰이 멜로디를 담당하는 것도 클라리넷과 색소폰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의도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라리넷과 매우 유사하다지만, 색소폰이 조금 더 콧소리가 있고, 때론 더 부드럽기도 하고, 리드를 어떻게 무느냐에 따라서 때론 살짝 거친 소리도 나고, 멜로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섹시(sexy)’한 이미지까지 주는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연애씬이나 정사씬에 처음엔 진지하게 등장했을 색소폰 음색의 그 적나라한 이미지를 차용하고 변용해서 코미디적인 씬에 많이 쓰이긴 했어요.

영상이 들어있는 클립을 링크할 순 없고, 이와 비슷하게 에로틱한 부분에 색소폰 음색을 일부러 웃기려고 집어넣는 경우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목관악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플룻(Flute)이긴 할텐데, 클라리넷 역시 만만치 않게 인기있는 악기이긴 하지만, 한국영화에서는 이 악기를 메인으로 사용한 경우는 ‘올드보이(Old Boy)’ 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영화에서는 조금은 수평적인 용법으로 들어가 있지만 음악만 들으면 정서적인 임팩트가 강합니다. 색소폰도 한국영화에서 메인으로 나온 걸 들어본 기억은 거의 없는데, 아무래도 직전에 말씀드린 과도하게(!) 섹시한 이미지 때문인 것도 같긴한데, 꼭 그렇지도 않고,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처럼 아련한 느낌을 주기에도 적당하니, 언젠간 한국영화에서도 잘 쓰일 날이 오긴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번동안 악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말미에는 항상 배워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이 악기도 마찬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입문자용 제품은 가격대가 2-30만원선이면 무난한 거 구해서 쓰실 수 있습니다. 음, 저라면 클라리넷이나, 아님 소프라노 색소폰을 배워보겠습니다.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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