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뚱그려 잡식성 뮤직으로 된 영화음악

[컬처]by 김연일

1년 남짓 글을 연재하면서 본의 아니게 주로 할리우드 위주의 영화음악을 이야기 해왔습니다. 아무래도 제일 많은 제작 편수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만큼 다양하기도 하고, 또 그만큼 좋은 영화와 음악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대적인 주류와 비주류가 없을 수 없겠지요. 자신들에게 익숙한 서양 클래식 음악 기반 음악이 일단은 주류에 속할 거라 생각되구요, 현대 미국의 대중음악 장르도 역시나 주류일 것입니다. 숫자를 헤아려보진 않았습니다만 클래시컬한 스코어 음악이 얹히는 영화와 팝, 록음악, 재즈가 얹히는 영화의 비율은 거의 비슷한 걸로 판단됩니다. 스코어 음악에 소스뮤직으로 대중적인 음악이 섞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상중씨 톤으로)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미국과 할리우드, 주류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미국과 할리우드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영화와 그 영화에 얹힌 음악들을 찾아보는 것도 아주 재밌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비주류 음악들을 모아보면 개개의 경우는 적을지 몰라도 그 총량은 만만치 않지 않을까 해요.

 

미국영화 외의 영화, 미국영화라도 비교적 비주류라고 생각되는 영화 중에 기억에 오래도록 남고, 때로는 좀 더 애착이 가는 영화음악들을 나열해볼까 합니다.

주목할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회자될 것 같은 감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감독들은 ‘거장’이지만 저처럼 ‘얕은’ 사람은 깊게 빠지지 못하죠. 영화 공부를 좀 하다보면 내러티브라던가 영화 기술적인 이유로 빠져들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 것 같고, 세상에 대한 어떤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면 영화의 성향이랄까 주의랄까 그런 것 때문에 동조하다가 빠져드는 것도 같습니다. 어떤 동기건 간에, 거장들의 영화에는 국경과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성이 있고, 영화적 장치들을 주렁주렁 달지 않아도 은은하지만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마땅한 감독들이지요. 

 

그 중에 한 명, 그리스 영화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 감독의 영화 음악을 들으면 지리하게 서술한 제 말씀을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 자체만 놓고 본다면 서양 클래식의 연속선 상에 있는 음악이긴 한데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일반적인 클래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멜로디가 가장 큰 이유이지 않나 싶은데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서가 있어요. 그리스의 역사적인 상황과 그에 반응하는 감독의 주관, 거기에 반응한 음악 감독의 정서적인 결과물이 복합적으로 엮인 거라고 ‘멋있지만 알맹이없게’ 설명할 수 밖에 없는데, 그냥 넋놓고 듣게 되는 음악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들으면 말할 것도 없구요.

 

앙겔로풀로스 감독 영화의 음악을 주로 담당한 음악감독은 엘레니 카라인드로우(Eleni Karaindrou)라는 여성 작곡가입니다. ‘영원과 하루’, ‘안개 속 풍경’, ‘율리시스의 시전’ 등을 같이 했는데, 공히 특유의 비장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몇 개 더 링크해 봅니다.

주목할 스타일, 집시 음악(Gypsy Music)

클래식이 아닌 민속 음악이 주는 정서는 ‘절제할 필요 없는 감정 자체’ 라고 할까요. 청승일 수도 있지만 절제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북받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 다룬 적 있는 제임스 호너는 그 점을 잘 활용한 ‘클래식’ 작곡가였구요.) 그런 음악 중 전 유럽에 걸쳐서 일정 부분 정서를 공유하는 음악은 집시 음악(Gypsy Music)입니다. 

집시 음악은 사실 하나의 ‘풍’으로 정리 하기 쉽지 않더군요. 전 유럽을 방랑하는 사람들을 통틀어 집시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인가 어느 나라의 집시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특징이 묻어나는 음악을 다양하게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위에 링크한 ‘집시의 시간’의 사운드트랙은 그런 면에선 집시 음악의 한 부분인데, 세련되기 보다는 투박하지만 직접적으로 정서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집시 음악은 많은 작곡가들한테도 영향을 줘서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집시풍의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저예산 영화 뿐 아니라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에서도 영화의 톤이나 이미지를 위해서 차용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 중에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한스 짐머의 ‘셜록홈즈’ 테마에요. 한스 짐머가 음악을 한 영화 셜록 홈즈1과 2는 집시 음악을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마이너로 와서, 집시음악은 아니지만 거리 음악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 중에 영화 ‘아멜리에 (Amelie)’의 사운드 트랙이 있습니다.

아멜리에의 음악을 담당한 얀 티에르센(Yann Tiersen)의 음악이 전체적으로 다 거리 음악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사용하는 악기들의 조합이나 진행은 클래식 베이스의 음악들과는 거리가 있는 ‘다른’ 음악이긴 합니다. 그 중에 아코디언 음색이 도드라지는 아멜리에는 그 음색에서 주는 연상작용 때문에 더 그렇구요.

주목할 지역,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옮겨서,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쿠바 음악, 자메이카 레게, 브라질의 삼바, 아르헨티나의 탱고, 멕시코의 마리아치 음악, 하나하나 따로 한 번씩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친숙한 음악들입니다.

나중에 ‘데스페라도’라는 영화로 비용이 투입되서 리메이크되는 로드리게스의 저예산 영화 ‘엘 마리아치(El Mariachi)’는 제목이 나타내는 그대로의 음악을 시종일관 사용하는데, 저는 이게 나중에 세련되게 나온 데스페라도보다 좋게 들리더라구요.

가장 유명한 댄스씬 중의 하나인 ‘여인의 향기 (Scent of a Woman)’ 중 춤 장면에 쓰인 음악은 아르헨티나의 탱고지요. Por Una Cabeza라는 유명한 곡입니다.

역시나 너무 유명한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은 쿠바가 배경이지요.


영화 ‘흑인 올페 (Orfeu Negro)’에는 원래 더 유명한 곡이 있긴 합니다만, 브라질 음악 링크는 같은 영화의 끝장면인 이걸로 할게요.

영화 ‘쿨러닝 (Cool Running)’에 삽입된 이 노래는 팝스타일에 가까워서 듣기 편한데, 베이스는 레게입니다.

 

이외에도 민속음악에서 유래해서 클래식에 적용된 음악들도 많이 있는데 그것들이 들어간 영화도 꽤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민속음악의 톤을 더 거칠게 유지하고 있는 음악들도 많이 있지요. 우리에겐 많이 사라진 집단 노동의 노래라던가, 어머니들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던 자장가라던가, 또는 성향이나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완전 개인적인 음악까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런 음악들은 어쨌든 할리우드에서 많이 쓰는 클래식이나 팝 베이스의 영화음악에 비하면 비주류 음악이긴 한데, 중요한 것은 이런 음악들이 그 주류 음악들에 양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베토벤, 모차르트가 좋고 바그너, 말러가 좋긴 하지만 당대의 현실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장르인 현대 영화에서 그런 음악들을 고집할 수는 없고, 그런 음악들로만 채워진 영화가 사랑받기는 쉽지 않지요. 마이너한 음악들이 메이저 영화에 신선한 기운을 넣어주고 그래서 영화음악도, 결과적으로 영화도 다양해지고 궁극적으론 그 영화가 나타내려는 현실감이 생생해지는 결과를 내주는데에는 이런 음악들 - 그리고 능력부족으로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다양한 음악들 - 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요즘에 어떤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새로 나왔다 하면 과연 거기에는 어떤 ‘비주류’ 적인 신선한 음악이 있나 찾아 듣는 재미로 사운드트랙을 듣는데, 이거 꽤 재밌으니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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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음악과 사운드 위주로 보는 글. 몇 박자 늦게, 근과거의 영화들을 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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