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집념? 자기 영화 음악을 스스로 만든 감독들

[컬처]by 김연일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다른 감독들과 구별되는 점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은 역시나 ‘이야기를 잘 구성하고, 연기를 잘 뽑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영화를 만드는 데에 동원되는 각 파트들의 사람들과 접점이 없는 감독 고유의 역할이지요. 

 

사실 이러한 고유의 역할만 잘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어떤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에 들어갈 음악을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애정? 집념? 자기 영화 음악을 스스

우선, 당장 기억하는 사람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입니다.

위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음악의 주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작곡한 걸로 되어있습니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 어렵지는 않다 하더라도 처음에 나오는 피아노의 하향 아르페지오성 멜로디는 일단 화음을 알아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곡 수준은 일반인의 그것을 넘어섭니다. 이후에 나오는 현 오케스트라 섹션이나 그 다음의 어쿠스틱 기타 섹션은 제 생각엔 전문 편곡자의 손을 거친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구성하자는 아이디어도 작곡의 일부분이니 어쨌든 이스트우드 작곡이라는 오리지널리티를 해하지는 않겠지요.

성공한 배우 이스트우드는 나이가 일흔이 넘었지만, 아주 좋은 작품들을 최근까지도 만들고 있는 여전히 현역인 감독입니다. 재즈에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고, 피아노 연주 실력도 상당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다 자신이 연출한 많은 영화들에 한두 곡 정도는 곡을 만들어서 집어넣어 왔더군요.

 

이스트우드의 아들인 카일 이스트우드는 재즈를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대학에서 재즈를 전공했고, 아버지의 영화에 참여해 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멜로디를 만들면 아들이 편곡해주는 식의 작업이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심지어는 노래도 불렀습니다. 

물론 전문 음악감독이 붙어서 얼마간의 조정을 하긴 할 겁니다. 본인이 음악을 좋아하고 수준이 있다고 해도 그게 영화에 들어가는 음악이면 기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이 생기는데 그걸 감독 본인이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는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또 생각나는 감독은 이와이 슌지 (Shunji Iwai) 에요.

 

저는 밝은 쪽의 이와이 슌지를 좋아하는 보통 팬인데, 매니아들은 ‘어두운 이와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요. 이 감독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작곡가로 몇 개의 작품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익숙한 건 ‘하나와 앨리스’의 음악입니다. 


역시나 아주 어려운 텍스쳐를 가진 음악은 아니지만, 멜로디와 반주를 정하고 일정시간 구성해서 끌고 나가는 능력은 오랜 시간 학습하지 않으면 자연히 생기지 않는 능력입니다. 

 

몇 년이 지나서 ‘하나와 앨리스 - 살인사건’이란 애니메이션도 나왔는데, 거기에도 이와이 슌지는 음악에 크레딧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듣기로 이와이 슌지 본인은 실사판 ‘하나와 앨리스’의 음악 이후 다시는 곡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그렇진 않은가 봐요.

 

놀랍게도, 천재감독이라 불리는 데이빗 린치 (David Lynch)도 ‘이레이져 헤드 (Eraser Head)’의 음악을 직접 작곡 했습니다.


게다가 더 놀랍게도, 보통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멜로디와 반주로 구성된 전통적인 형태의 음악도 아닙니다. 악기소리가 아닌 사운드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구성한 전자음악에 가까운 음악이에요. 천재적인 감독이라 ‘소리의 구성’이라는 음악 원천적인 정의에 바로 접근했나 싶은 느낌마저 듭니다.


이외에, 에밀 쿠스트리챠 (Emir Kustrica) 감독은 아예 밴드를 구성해 그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음반까지 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집시 음악을 베이스로 깔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더 오래된 감독들 중에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나 존 카펜터(John Carpenter),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같은 명감독들도 음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스(Robert Rodriguez)는 멕시코 음악을 하는 밴드의 일원이기도 하구요.

 

감독들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떠오르는 음악적인 이미지를 직접 혹은 최소한의 도움으로 구체화시킨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적합한 영화음악을 만들어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영화에 들어간다고 하는 순간부터는 좀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걸 간과해선 안됩니다만.)

 

제가 만나본 감독들도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본인 영화의 한 구성요소라는 측면에서 음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는 욕심을 다들 갖고 있더군요.

 

그러나 앞서 얘기한 해외 감독들의 음악적 활약은 아직은 한국 영화 시장에서 낯선 현실입니다. 빠듯한 후반제작 일정으로 가는 한국영화 상황이 좀 나아진다면 우리도 감독이 직접 만들어 넣은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감상하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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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음악과 사운드 위주로 보는 글. 몇 박자 늦게, 근과거의 영화들을 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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