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95년생의 모바일 경험 차이가 야기할 미래의 격차

[테크]by 유재석

우리에게도 온라인 게임과 함께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중 95년생의 모바일 경험 차이가

요즘 중국 대학생들의 결제 트렌드를 조사한 재미난 자료가 발표됐습니다. 지우우허우(95后)라고 불리는 이들의 90%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기를 싫어한다는 내용입니다. 어제(7/13) 페이스북 라이브로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중국 현지 IT 매체인 왕이과학(网易科技)이 발표한 ‘1995년생 이후 태어난 대학생(만 21세~)의 모바일 결제특징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이후 출생한 조사 대상 중국 대학생의 90%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신 이들 중국 대학생 80% 이상은 휴대폰에 3가지 이상의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선호하는 모바일 결제 앱은 중국의 3대 인터넷 기업이 운영하는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가 각각 운영하는 간편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支付宝), 위챗페이(微信支付), 바이두지갑(百度钱包)인 것으로 나타났다. — 中대학생, 현금보다 모바일페이 더 선호(뉴시스)

중국에서 신세대를 뜻하는 키워드가 빠링허우(80后), 지우링허우(90后)로 불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95년생이 바통을 이어받게 됐습니다. 저를 포함한 빠링허우들이 이제 아재가 되기도 했…죠.

여튼, 이들 지우우허우의 결제 패턴은 오로지 모바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참으로 신선합니다. 이들은 알리페이(支付宝), 위챗페이(微信支付)를 통한 모바일 결제만을 추구합니다.


단순히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게임 아이템을 살 때만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앱 내에 구현돼 있는 바코드나 QR코드를 통해 물건을 구매합니다. 중국에서는 양꼬치나 양말파는 노점상들도 모바일 결제를 해줄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하니 말 다했죠.

베이징 부임 초기에는 살고 있는 집도 잘 못 찾았다. 큰길에서는 입구가 잘 보이지 않고 근처에 비슷한 길이 많기 때문이다. ‘내 집’인데 동네는 낯설고, 간판도 생경하고, 온통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전혀 다른 건물 입구에 내려 한참 걸어가야 하는 일을 몇 번 겪은 후에 생각해 낸 방법이 ‘양말트럭’이다. 아파트 입구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노점트럭은 훌륭한 지표가 됐다. 출퇴근할 때마다 양말트럭을 두리번대다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 푯말을 발견했다. 몇 백원짜리 양말을 파는 노점인데, 놀랍게도 ‘즈푸바오’로 전자결제가 가능했다. —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양말 파는 노점상도 ‘즈푸바오’ 전자결제(주간경향)

중국 모바일 3자 결제의 90%를 차지하는 게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입니다.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두 서비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1%대의 미미한 비중을 차지할 뿐입니다. 바이두의 바이두치엔빠오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죠.

한-중 95년생의 모바일 경험 차이가

모바일 결제 비중. 알리페이 51.8%, 텐페이(위챗페이 포함) 38.3%. 나머진 1%대. 출처:아이리서치

이에 따라 중국인이 모이는 곳에는 이러한 간편결제 모듈이 뒤따라 설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요우커들이 주로 방문하는 면세점, 명동 주변 화장품 가게, 편의점, 경리단 길 등의 매장에서는 알리페이로 결제를 할 수 있게 돼 있죠.

한-중 95년생의 모바일 경험 차이가

명동 지하상가에 게재된 알리페이 광고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플라스틱 카드가 주요 결제 수단입니다. 2011년 민관이 합작해서 명동에 NFC 거리를 조성하려고 했으나 보기좋게 실패했습니다.

관련 기사: “휴대폰 결제 안 돼요”…불 꺼진 명동 NFC(지디넷코리아)

이유는 단순합니다. 카드사, VAN사, PG, 은행 등 이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는 바람에 간편한 결제환경이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한-중 95년생의 모바일 경험 차이가

국내 오프라인 결제 패러다임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출처: 더울림커뮤니케이션즈

이렇듯 이해당사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입니다. 이들은 그동안 실시간으로 타행 계좌에 입금할 수 있고, 추가 비밀번호 없이 카드를 긁기만 하면 결제가 되는 편리한 환경을 만들었던 점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욱 편리한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이 영역에 들어올 수 없는 규제 장벽이 만들어졌죠.


중국의 20대가 모바일로 송금하고, 음식을 사먹고, 심지어 앱 내의 신용평가 지수로 대출도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 우리의 20대는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카드를 긁어 음식을 사먹고, 보안카드의 비밀 번호를 입력해 송금을 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양국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 측면에서 말이죠.


간략한 예로 중국에서는 모바일 QR 결제가 활성화돼 있는데요. 상점 매대에 붙어있는 QR 코드를 촬영하거나, 자신의 QR 코드를 스캔하게 하면 즉시 결제가 이뤄집니다. 이렇다보니 관련 기업들의 스캔 속도와 이미지 인식 기술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게 됩니다.


심지어 바코드가 없더라도 이미지를 인식해 해당 제품의 바코드를 찾아내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는데요.


중국 뉴미디어 플랫폼 찐르토우티아오에서는 텐센트의 QR 결제 기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위챗이 공식 발표에 따르면 자가 개발한 QBar라는 QR 인식 엔진이 바코드 식별 전에 내장된 QR 인식 예측 모델이 먼저 바코드 없는 이미지를 인식한 뒤 역으로 이 제품에 해당하는 QR 코드와 바코드를 인식합니다. QBar는 iOS 환경에서 5초, 안드로이드 환경에선 12초만에 제품을 인식해 구별합니다. — 微信扫码为什么快?官方科普终于来了(今日头条)

무엇을 의미할까요?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이용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서비스 제공자 역시 이용자의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해 관련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1990년대 후반. 그때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갖고 있는 나라라 불렸으며, 인터넷 강국으로 꼽혔죠.


이러한 빠른 인터넷 속도의 근간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바람의나라와 리니지로 대표되는 온라인 게임의 시작과 궤를 같이 합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님은 3년 전 인터뷰를 통해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 기술의 발전 상관관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한-중 95년생의 모바일 경험 차이가

전길남 교수는 “게임을 만들고 구현하는 건 소프트웨어 기술의 극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한다”며 “당시 그 정도의 소프트웨어가 없었기에 이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주와 송재경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끝나고 박사학위로 입학할 때 과에서 수석 아니면 차석 수준이었습니다. 카이스트는 물론이고 MIT, 스탠퍼드도 가능했어요. 낮에는 제가 사무실에 있으니 연구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잘 만들었죠. 저는 밤에 학생들이 다른 일하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 송재경은 리니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김정주는 비즈니스 관련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게임잡지 등이 쌓여있던 책상만 봐도 네트워킹 연구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 게임과 마약을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이 읽어야 할 네 가지 이야기(마이크로소프트웨어)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이용자를 하나 하나 떼어놓고 보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모이면 서비스의 방향을 새롭게 만들어냅니다. 제공자의 입장에서는 이용자의 요구에 맞도록 제품을, 제품을 둘러싼 네트워크 인프라를 개발하게 되고, 이는 곧 기술의 발전을 견인합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 그러한 날렵함이 점점 없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나 모바일 결제 영역은 멈춘 것과 다름이 없는 수준입니다. 간편 송금 서비스인 토스, 폰2폰 오프라인 결제 환경을 만든 한국 NFC 등 편리한 서비스들이 등장했으나, 규제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죠.


한국과 중국 95년생들이 모바일에서 갖는 경험의 차이는 서비스 발전의 차이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모바일 오프라인 결제를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10년, 20년 뒤 생각해낼 수 있는 아이디어의 차이는, 그리고 이들의 ‘수준’에 맞춘 서비스의 격차는 얼마나 벌어지게 될까요? 상상하기가 두렵습니다. 

2016.07.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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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비스·이커머스 취재하나, 개그맨 유재석에 묻혀 기사 검색 잘안되는 슬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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