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와 공경은 사랑의 근본

[컬처]by 윤홍식

유자有子가 말하길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며,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난리를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 군자는 근본(효ㆍ제)에 힘써야 하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자연히 발현된다.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운 것은 ‘사랑’(仁)을 실천하는 근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有子曰 其爲人也 孝弟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여기에서는 유자有子라고 불렸던 유약有若이라는 분이 말하는데, 공자의 제자입니다. 공자를 많이 닮았기 때문에 돌아가신 뒤에 이분을 공자 대신 스승처럼 모시려는 흐름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분도 공자의 제자이니 배운 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겠죠. 사람이라면 응당 사랑(仁)이 있고, 정의(義)가 있고, 예절(禮)이 있고, 지혜(智)가 있고, 성실함(信)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경천(敬天), 즉 하늘을 공경하여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의 본질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500년간 연구한 것도 바로 인의예지신경(仁義禮智信敬)입니다. 이것들은 억지로 만들어낸 덕목이 아니라, 인간의 선천적인 양심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입니다. 


유자가 말하기를,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여기에서 벌써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은 분도 계실 겁니다. “아이고, 효도 얘기를 또 하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얼마나 더 대접을 받으려고 효도를 강조하는 것인가? 유교의 어른들은 왜 이럴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교에서 그렇게 효도를 강조한 것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것입니다. 그 진정한 뜻을 한번 이해해 볼까요? 

효도와 공경은 사랑의 근본

공복(公僕)을 부르짖으면서 본인은 방만한 오늘날의 리더들 (삽화: 차망우인)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 이 문장은 결국 윗사람에게 하극상을 하지 말라는 얘기이고, 뭔가 복종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유교의 문제점입니다. 좋은 말도 많이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남아서 전해지는 것은 대부분 아랫사람들을 향하는 말들이거든요. 아마도 이걸 편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랫사람들아, 잘 해라!”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요즘의 기업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번트 리더십’을 부르짖으면서, 리더는 공복公僕의 마음으로 경영해야 된다고 강조하는데, 정작 리더들이 그것을 지키지는 않죠. 부하 직원들에게만 ‘주인정신’을 요구하고, 그 리더들은 방만하게 살다가 교도소를 드나드는 일이 비일비재 하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이 글을 냉정하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왜 우리가 읽어야 하는지도 한번 생각해보죠. 지금 ‘효성’(孝)과 ‘공경’(弟)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효’(孝)는 자식(子)이 늙은 부모(老)를 업고 있는 형상의 글자입니다. ‘제’(弟)는 본래 ‘悌’라는 글자입니다만, 뜻은 동생(弟)으로서 형을 공경하는 마음(忄)을 나타냅니다. 즉, 자식을 낳고 키울 때에 고생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역지사지해서 부모님에게 베푸는 것이 ‘효성’이고, 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남을 대하는 것이 ‘공경’입니다. 


유교에서는 가정 안에서 필수적인 이 2가지 덕목이 모든 ‘사회적 덕목’을 포괄한다고 보았습니다. 사회적 인간관계의 훈련이 가정에서 충분히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죠. 사회적 덕목이 ‘효제’(孝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에, ‘효성’과 ‘공경’은 가정과 사회를 아우르는 근본적인 덕목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공경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집에서는 부모님의 마음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것에 힘을 쓰고, 밖에 나가면 사회적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나보다 윗사람이라 생각하고 대접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만나더라도 공경해주어야 합니다. 인격체에 대해 기본적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공경’(弟)인데, 나이가 어리더라도 독자적인 한 인격체이니까요. 즉, 어떤 사람을 대하든, 상대방을 누르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의 기운을 좀 살려주면서 만나라는 것이죠. 


이렇게 ‘효제’(孝悌)를 실천하는 것은 곧 ‘양심의 실천’에 충실한 것이 됩니다.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자!”는 유교 최고의 도덕률을 충실히 실천한다는 것의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효성과 공경이 양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사랑’(仁)을 실천하는 근본이 된다고 하는 것이죠. 


인의예지의 다른 덕목들까지 종합하여 이야기 해보면,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義), 무례하지 않은 방식으로(禮), 나와 남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는 것(智), 이것이 유교의 핵심입니다. 나머지는 곁가지일 뿐이에요. 그러니 집에 들어와서는 나를 키워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소홀히 할 수가 없고, 밖에 나가면 남들도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심 실천의 근본이니까요.


이렇게 ‘양심’을 제대로 익혀서 ‘양심지능’(영성지능)이 높아진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함부로 가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양심이 꽉 찬 사람이 어떻게 윗사람 침범하기를, 즉 뒤통수치기를 좋아하겠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윗사람을 중심으로 말했지만, 사실 직장에 자신의 성공에만 집착하는 ‘욕심꾼’인 소시오패스가 존재하면, 위, 아래를 불문하고 모두가 초토화됩니다. 암세포처럼 자신만 살겠다고 모두를 힘들게 하고 난리를 일으키는 것이죠.  


그래서 ‘효제’(孝弟)를 강조한 것입니다. “도道를 닦는다!” 하고 산으로 가는 분들이 있는데, 공자는 이런 태도를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중용』에서 “도를 닦는다면서 사람을 멀리한다면 그건 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 하셨죠. 도는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 한자로 ‘도’(道)는 ‘길’이라는 뜻이죠. 즉 우리가 따라야 하는 길, 특히 ‘인간의 길’을 의미합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길’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인간관계 속에서 구현되지 않는 ‘길’이란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없죠. 따라서 유교에서 본 진정한 ‘수도修道’는 집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밖에 나와서는 남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군자’인 것입니다. 


직장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밖에 나와서는 남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양심이 꽉 찬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남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인 ‘군자’라는 것이 공자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재능이 있는 백수들이 참 많은데요. 취업이 안 되는 것을 걱정한다고 해서 당장 뭐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답이 없는 걱정은 자신의 정신력과 긍정의 힘을 갉아먹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효제’(孝悌)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권해봅니다! ‘양심 오타쿠’가 되어 보세요. 내가 가족이나 남을 위해 뭔가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를 한번 돌아보면서, 그날 하루를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게 사는 훈련을 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활로가 보이고, 세상을 바꿀 힘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윤홍식의 논어 강의] 1장 학이學而편 1-2. 효도와 공경은 사랑의 근본


20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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