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예절과 사랑

[컬처]by 윤홍식

유자가 말하기를 “약속이 ‘정의’에 가까워야 그 말한 바를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하더라도 ‘예절’에 가까워야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친애하는 이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또한 숭상할만하다.”라고 하였다.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13절은 일상의 교제에서 갖추어야 할 ‘군자의 덕목’에 대해 말한 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수시로 ‘약속’을 하는데요, 약속이란 미래의 실천을 미리 말로써 기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실천으로 그 말을 지켜야 신용이 생깁니다. 그런데 약속을 함부로 하다보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만약 친구와 한 약속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다면,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실천할 수 없을 때가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실천을 하지 않으면 신용을 잃게 되니 문제요, 그렇다고 신용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약속을 실천하게 되면 남에게 큰 피해를 주니, 참으로 딱한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단지 약속을 잘 지킨다고 해서 올바르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남을 해치는 깡패들도 서로 간에는 신용이 있고 의리가 있으니까요. 따라서 군자는 약속을 할 때부터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을 실천할 수 있으니까요. 

 

정의롭지 못한 약속, 즉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약속, 양심에 가책이 오는 약속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고, 또 실천으로 옮겨서도 안 됩니다. 오직 약속을 할 때 정의로운 약속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용을 얻는 것은 좋지만 반드시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죠. 즉, 이 구절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양심의 덕목 중 ‘성실함’(信)과 ‘정의로움’(義)을 강조한 대목입니다.

 

그 다음으로, 공손한 것은 좋은데, 예절에 가까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절에 가깝지 않으면 치욕스러운 일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옳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예절에 맞다면 사실 당당해야 합니다. 내가 당당하게 남을 배려해주는 것이 예절인데, 공손함이 지나치면 비굴해질 수가 있어요. 

 

자신이 비굴해지는 것은 양심에도 맞지 않다고 느낄 겁니다. 그런 행동은 하고 나서 본인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도 찜찜해집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왜 저렇게까지 하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결국 각자 딴생각을 하게 되고 서로의 관계가 안 좋아집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굽신거린다면 뭔가 의심이 들지 않겠습니까? 공손함을 표현하는 사람이 양심을 넘어서 지나치게 비굴하게 했다는 것은, 결국 자기 욕심 때문에 그랬거나, 예절을 잘 몰라서 그랬거나, 뭔가 자신의 양심을 당당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치욕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자는 남과 올바르게 교제하는 법을 논하면서, 늘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정의로운 약속을 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과, 남에게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공손하더라도 예절에 맞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는 이렇게 늘 정의롭고(義), 공손함(禮)으로써 친애하는 이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숭상할만하다고 했습니다. 친애하는 이들, 즉 자신이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 되는 이들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바로 ‘사랑’(仁)입니다. 정의로움과 공손함을 통해 사랑을 이루었으니, 참으로 양심에 충실한 사람 아닙니까? 이런 양심의 달인은 ‘군자’로서 존경할만합니다. 비록 그가 경전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숭상해야 마땅합니다.

 

『논어』에서는 “양심의 덕목들을 실천하고 남는 힘이 있거든 그때 글을 배워야 한다.”라고 하였고, “비록 학문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양심의 덕목을 실천한다면 나는 반드시 학문을 하였노라고 말하겠다.” 하고 가르칩니다. 경전의 이해보다 중요한 것은, 양심의 실천이라고 말이죠. 

정의와 예절과 사랑

양심을 매뉴얼로 배워서리.... (삽화: 차망우인)

이처럼 『논어』에서는 경전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보다, 삶에서 양심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를 중시합니다. 유가의 창시자 공자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양심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잘 실천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경전을 만들고 제정해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경전은 빠삭하게 외우고 있는데, 실천에서는 정의롭지 못하고, 예절 감각이 없고, 친해야 할 사람들과 척을 지는 사람들을 좋게 볼 수 없죠. 

 

사실 경전은 ‘양심 사용 매뉴얼’일 뿐이니까요. 매뉴얼만 연구하고 양심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군자로서 존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직접 양심을 실천하면서 경전을 참고하여 공부해야만 진정한 철학자, 진정한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201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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