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정말로 ‘밥그릇’ 때문에 들고일어났을까?

[이슈]by 직썰

지난 23일 1, 2년차 전공의가 무기한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대한의사협회의 파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충 및 한방 첩약의 급여화를 포함한 보건복지부의 4대 정책에 대한 반대를 전면에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으며 코로나-19 사태 와중 강경하게 진행된 파업으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반대 여론은 매우 거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업의 타이밍과 방식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의협의 주장과 정부의 정책이 과연 어떠한 논리와 근거를 갖고 맞서고 있는지는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로 의사들은 ‘밥그릇’ 하나를 지키려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길거리로 나선 것일까? 또는 대한민국 의사들은 모두 아스팔트 우파라서 그저 정부에 반대하고자 하는 것인가? 의과대학생들은 그저 공부밖에 할 줄 몰라서 이러는 것일까? 당연히 전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책과 의협의 요구는 어떠한 쟁점에서 충돌하고 있으며 정책적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의사의 숫자가 적은 것은 어떤 의미인가

숫자뿐만 아니라 의료 시스템이 중요하다

의대정원 증원 반대 의사협회 기자회견. 연합뉴스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의 숫자는 OECD 평균 3.5명을 밑도는 2.4명이다. 참고로 미국은 2.6명, 독일은 4.3명, 프랑스는 3.2명, 일본은 2.5명, 영국은 2.8명이다. 반면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의 숫자가 많은 주요국은 이탈리아/스페인 4명, 호주 3.8명, 스위스 4.3명 등이다. 의외로 선진국 중에서도 의사가 부족한 국가는 제법 된다. 미국은 의사의 소득이 높기로 유명하지만 만성적인 의사 부족 문제가 늘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의사의 숫자와 의료서비스의 활용에는 한 가지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의료서비스 이용자가 필요한 의사에게 적시, 그리고 적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이다. 만약 의사의 숫자가 적어서 의료소비자가 병원 앞에 긴 대기열을 형성한다면 이는 의사의 공급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및 보건적 문제가 발생함을 의미한다. 즉 ‘부족’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절대량의 많고 적음에 의한 부수적인 효과까지 모두 검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면에서, 대한민국은 국민 1,000명당 의사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보편적 의료접근성 자체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쉽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의 의료제도가 매우 특수하기 때문인데, 첫째로는 낮은 가격으로 전 인구를 모두 포괄하는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존재하는 한편, 주치의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료보험 가입자라면 누구나 필요한 병원과 의사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반면 영국의 경우 주치의 제도와 사적 의료 제도를 병행하고 있어서 병원 대기열 문제가 상당한 사회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공공보건지표를 의사의 수와 함께 놓고 판단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인구비 의사의 상대적 숫자가 OECD 평균보다 적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으로 상당히 양호한 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 정원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의료체계가 겪고 있는 도농간 의료서비스의 밀도차 문제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경우 서울의 1,000명당 의사 수가 3.0명인데 비해 경북은 1.7명에 불과하고, 독일의 경우 주치의로 지정된 지방 가정의들이 지속적으로 고령화되는 문제에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때문에 의사의 숫자가 정말로 부족하냐 아니냐의 문제는 의대 정원 이외에도 각국의 의료 정책과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의료 정책에서 비롯되는 의사 수 ‘부족’ 의 문제는 결국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되는데, 결국 지방 의사 부족의 문제와 중증환자 케어 시스템의 결핍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의 수가, 단순히 낮아서 문제인 것일까

노동집약적 의료행위를 배제하는 수가체계

의대정원 증원 반대 의사협회 기자회견.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의료수가가 낮다. (근본적으로 대다수의 의료 행위가 원가보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주지의 사실이나, 이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경우 한 가지 특이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의료수가가 낮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과 더욱 가까울수록, 그리고 수술의 케이스가 많을 수록 의사들이 특정 의료행위를 경제적으로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표면화된 문제가 바로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로 연결된다.


물론 정부에서 이러한 저수가 문제에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그 방식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어 왔다. 지난 2017년 정부는 3차 의료기관의 주요 수술인 위아전/직장/에스장절제술의 수가를 원가의 90% 수준까지 상향했지만 그와 동시에 충수(맹장)/치핵근/치루 등의 수가는 인하했다. 전자보다 후자의 수술 빈도가 월등히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사실 윗돌을 빼어 아랫돌을 괴는 점이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사명감만으로 일할 수는 없다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큰 수술이 필요한 중증질환 또는 긴급한 외상 치료를 담당하는 전공과의 경우 기본적인 인력 충원부터가 쉽지 않고, 또한 이 때문에 지방의 해당 의료인력은 더욱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의료수가의 문제는 절대적 수준의 낮음도 문제이지만 위험도가 높을수록 상대적 레벨이 더욱 낮았다는 것이 문제이고, 이것이 실제로 지방 의료인프라의 결핍을 초래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보혁을 막론하고 그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동일하게 발생했던 문제였다.


물론 통상적으로 의사들은 우리 사회에서 고소득자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소득 이면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의료 원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반드시 상기해야만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물론 의사의 공급은 정부가 지정한 의대 정원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혹자는 ‘면허’ 의 문제라고 강변하나, 의사 면허를 한 해에 백만 장을 뿌린들 국시 응시 가능 인원은 의대 정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궤변일 뿐이다.) 의사는 정부가 만들어 준 경제적 지대에 기대는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경제적 지대와 관계없이 의사들은 의료행위에 투입되는 원가만큼의 보상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는 의사가 아니라 결국 정부와 심평원이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심평원이 지난 2012년 공동조사를 한 결과 수술/처치/기능검사의 보상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영상 및 진단의 보상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심평원 자체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과도한 의료비 지출의 방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병을 ‘정확’ 하게 파악하여 과잉진료를 막겠다는 명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상과 진단의 상대가치점수가 높은 것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심평원의 의료수가 책정 체계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특히 영상/진단 분야에 대한 높은 상대가치점수는 적은 의사 수에 비해 높은 의료장비 수요를 불러옴으로써 의료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 즉 의사들의 노동행위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수가책정 체계가 결국 돌고 돌아 기피 학과를 만들어 내고 지방 의료체계에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다.

파업에 대한 생각과 문제의 해결 방법

이쯤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스스로 묻자. 의사들은 정말로 의사 수가 증가하면 단순히 돈벌이가 줄어들까봐 파업을 시작한 것일까. 물론 그런 의사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들이 정말로 돈벌이에만 눈이 멀었다면 코로나 사태가 터져나왔을 당시 생업도 버려두고 대구로 달려갔던 의사들의 의료 행위에 대해 우리는 대관절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그 때는 그들을 영웅으로 칭찬하고 이제 와서는 사악한 이익집단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의료인력의 순수한 노동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다. 의료인력의 노동가치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물적 원가로 상대가치점수를 산출하여 수가를 책정하게 되고, 이렇게 되니 리스크가 큰 의료행위에 대한 상대적 보상이 낮아짐으로써 예비 의료 인력이 특정 전공을 기피하게 되고, 이것이 지방과 중증/외상 부문의 의료서비스 결핍을 낳은 것이다. 출발은 바로 이 지점이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확충 방안은 이러한 점들 때문에 상당히 성급했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의 전반적인 고령화 등을 고려했을 때 의사 수는 지금보다는 증원돼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가 고소득이라고 해도 원가 보전이 안 되는 노동행위에 위험을 지며 종사할 사람은 없다는 당연한 경제적 현실을 직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국 정부는 의사의 숫자에 집중하지 말고 의료서비스별 접근에서 어떻게 차이가 발생하는지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의료서비스 소비자는 자신의 생명이 저당잡혔다 여길 것이고, 의료서비스 공급자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여길 것이며 이 두 가지 생각은 절대로 접점을 찾을 수 없는 평행선과도 같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협회 회장의 정치적 행보, 일부 인력의 특정 퍼포먼스 및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와 학업에 드는 비용에 대한 과도한 보상심리의 노출 등은 파업에 대한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모양새다.


전공의 1인을 양성하기 위한 사회 부담 총비용은 2019년 기준 약 8.67억원으로, 개인이 납부하는 의대 등록금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책임이다. 파업의 방식, 주장의 프레임과는 별개로 의사들의 주장은 분명히 일리 있는 부분이 있다. 모쪼록 정부에서 이번 일을 토대로 제발 원점에서부터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재검토했으면 한다. 비가 오면 땅이 굳어진다 하지만 이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경우이지, 보통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축대가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by 힝고

2020.08.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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