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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Opinion

영화 "기생충", 기이하다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스포 없습니다

지난 5월 25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지난 2017년, 영화 '옥자'로 경쟁 부분에 진출한 지 2년이 지난 후 그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어떤 영화인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감독이 스포일러를 비밀리에 부쳐달라는 간곡한 호소만을 보았다. 간간히 흘러나온 이야기는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특히 조여정과 이정은의 연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는 말을 보았다.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참지 못하고 영화관으로 바로 달려갔다.

영화 <기생충>은 백수인 기택(송강호)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친구가 부탁한 고액 과외 일자리로 박사장(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의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기우네 집은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고, 반지하 창문이 간신히 햇살을 드리우는 곳이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구성원은, 집에서 피자 박스를 만들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기우네 식구들과 으리으리한 고급 저택에서 사는 부부가 서로 얽히면서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가진자와 빈자의 만남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때, 어떤 사건이 발생할까.

봉준호 감독이 사회 계급이 겪는 갈등을 영화의 주 소재로 사용함은 익히 알려진 바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사회학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딱딱하지 않다. 그는 "<기생충>에서 가난한 자와 부자, 굳이 양극화 같은 사회·경제적 단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우리 사회에서 늘 마주치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사실적으로 다뤄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장면을 통해 전개되고, 특별한 과장 없이 담백하게 표현된다. 또 오히려 초반 부분은 너무나도 평범해서 계급 갈등을 그린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선과 악을 정해두고 어느 한 쪽에 편을 들어가며 영화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1시간이 지날 무렵, 영화의 장르가 갑자기 달라진다. 기우가 고액 알바로 부잣집에 들어가는 순간, 빈자와 부자가 나누는 공간의 범위는 좁아진다. 애초에 두 집의 관계는 수직이었지만, 점차 수평을 향해 나아간다. 칸에서 장르가 '봉준호'라고 말한 것이 절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로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열린 스릴러의 문에서 '기생'과 '숙주'의 관계가 더욱 명확히 나타난다.

'기생'하며 사는 것에 만족했던 존재가 '기생'에 만족하지 않는 순간, 사건이 일어난다. 부잣집에 다가갈 수 없다는 현실을 강렬하게 마주하고 세상이 그에게 제동을 걸 때, 이 기묘한 사건은 극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이 사건의 시작점인 기우는 재물을 향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재물의 상징물을 꼭 끌어 안고 끝까지 나아간다. 무엇이 그의 이뤄지지 못할 욕망을 자극했는지 살짝 설득력이 부족하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 공허함이 그가 사유없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는 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계급 갈등의 상징은 '냄새'다. 가난한 기택(송강호)의 열등감을 가장 강렬하게 자극하는 것은 '냄새'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사실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많이 없다. 비행기를 타도 퍼스트와 이코노미로 나눠지는 것처럼 겹치는 동선이 별로 없다”며 “이 영화에 나오는 가정교사 등의 직종들은 어쩌면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을 만든다. 이 영화는 그 상황들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 이 영화에서 쓰이지 않으면 안 될,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가 냄새”라고 했다.

 

극 중 부잣집 박사장이 기택의 냄새를 두고 "지하철에 타는 사람들한테서 나는 냄새"와 같다고 한다. 박사장이하는 말은 악의가 없다. 그는 그저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 싫어 말한 것 뿐이다. 하지만 이는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의 삶이 당긴 체취다. 몇 세대에 걸쳐도 극복될까 싶은 가난에 대한 체취는, 기택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계급의 꼭대기 부근에 위치한 박사장은 타인이 자신의 바운더리를 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은연 중에 기택의 선을 넘는다.

이는 봉 감독이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자체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의 존엄에 대한 부분을 건드린다”고 말했던 것처럼, '선'을 넘는 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작용한다. 두 집단은 상당히 다른 공간, 시간 속에 삶을 보내지만, 한 사회 속에서 의도치 않게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숙주와 기생 사이에 놓인 균형은, 둘 사이의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상생의 관계로 마주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 같이 부가 심하게 양극화 되고, 계급 간의 이동이 점차 줄어드는 사회에선 전자만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다. 관람객의 평점과 서서히 나오는 후기들에서 '부모님' 그리고 '애인'과는 보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영화가 신파적이진 않지만,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불편함을 넘어 좌절감을 받을 수도 있다. 영화가 계급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난이 블랙 코미디로 소비되는 것에 씁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영화를 보고난 뒤 이 비참한 비극에 대한 '해석'을 넘어,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이 과정에 감독이 어느 집에 사는 지는 넣어두자.

 

이다빈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