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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SNS용 전시,
이대로 괜찮을까?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 미술가의 개인전에 방문했다. 전시장 저 멀리에서도 길게 이어진 입장 대기 줄이 보일 정도로 미술관 입구는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명의 작가를 궁금해하다니. 새삼 미술계 내 해당 작가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 또한 이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실제로, 그것도 한국에서 만나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막상 전시실에 들어가니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전시실에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훑어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도슨트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이어폰을 낀 채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몇 명의 사람들이 인파에 휩쓸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사람의 수가 많은 탓도 있었지만, 관람객들이 전시장 안에 있는 모든 작품을 빠르게 훑어보기 위해 제각기 신속한 걸음으로 전시장을 누빈 탓이 컸다.


사람들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크다’, ‘예쁘다’ 등의 인상을 즉각적으로 표현했다. 전시실 중간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전시장에서 몰래 작품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을 모두 둘러본 이들은 곧장 굿즈 샵으로 가서 예쁜 디자인의 포스터를 구매했고, 전시실 외부와 입장 티켓을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SNS에 업로드했다.

KLIMT INSIDE (클림트 인사이드)

이는 분명 내가 방문한 전시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대형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전시를 가볍게 둘러본 뒤 굿즈 샵에서 한두 개의 기념품을 구매하고 SNS에 인증샷 올리기. 우리에게 익숙한 전시 소비 방식을 요약하자면 위와 같다. SNS, 특히 인스타그램이라는 어플의 대중화와 함께 소위 ‘감성 문화’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전시 방문 경험을 그럴듯한 사진과 함께 SNS에 게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천천히, 그리고 '고상하게’ 감상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한 방식은 예술을 향유하는 유일한 방법도, 절대적으로 옳은 방법도 아니다. 여느 전시에서 그렇듯, 내가 방문했던 전시에도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고 작품을 진심으로 감상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다만 본 글이 지적하고 싶은 점은 최근 전시라는 문화 공간이 그럴듯한 SNS 게시물을 업로드하기 위한 소재로 지나치게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시실에 놓인 수많은 작품들은 최근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꽤나 번듯한 피사체가 되어주고 있다. 사람들은 간직하기보다는 과시하기 위해 작품의 사진을 찍는다. 향유되기보다는 그저 소비되고 있는 최근의 전시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SNS 이용자들에게 일종의 그럴싸한 '오픈 소스’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전시들이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 무민원화전 등처럼 (구분의 기준이 다소 모호하고 임의적이긴 하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듯 보인다.

푸룻푸룻뮤지엄

이러한 경향은 소위 ‘콘셉트형 전시’의 유행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전시들은 전시의 콘텐츠, 즉 전시의 실질적인 내용과 구성보다는 전시가 가지고 있는 콘셉트나 분위기를 강조하며 기꺼이 자기 자신을 ‘인생샷 남기기’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만든다. 과일을 테마로 한 ‘푸룻푸룻 뮤지엄’이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배경으로 한 '앨리스: 인투더래빗홀’과 같은 전시들이 위와 같은 콘셉트형 전시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전시들은 일종의 테마파크와도 같다. 콘셉트형 전시들은 주로 이해하기 쉽고 단시간 안에 시각적 매료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제작된다. 이러한 전시들에 설치된 회화나 조형물들은 우리의 일차적 감각을 자극하며, 관람객에게 미디어 매체를 활용한 화려한 연출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꾸며진 전시실에서 찍은 예쁜 사진들은 우리의 SNS 피드를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물론 이러한 SNS용 전시의 유행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전시 관람 경험을 SNS에 게시함으로써 전시에 대한 정보를 다수의 SNS 이용자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시와 예술에 대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SNS의 확장성과 개방성은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전시라는 문화 공간에 익숙해지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SNS용 전시는 과거에 미술 애호가 층만의 폐쇄적 문화 혹은 ‘어려운 문화’라고 여겨졌던 전시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전시 관람 문화를 대중의 일상과 가까워지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전시 관람이 평범한 일과이기보다는 특별한 행사로 여겨지는 문화권에서는 그러한 효과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앨리스: 인투 더 래빗 홀

그러나 SNS용 전시는 '빈약한 전시 내용’이라는 맹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시의 실질적인 내용과 구성보다는 전시의 콘셉트과 분위기 강조에 치중한 SNS용 전시는 그 구성이 다소 헐겁게 느껴진다. 또한 필연적으로 이러한 ‘보여주기식’ 전시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플랫폼이 자기 표현의 수단이 아닌, 자기 전시의 수단으로 고착화되는 데에 일조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SNS용 전시는 전시들 간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전시 콘텐츠를 확일화한다. SNS 상에서 주류를 차지한 콘셉트형 전시가 마케팅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동안, 한 명의 관객이 절실한 내실 있는 소형 전시는 전자의 화려함에 가려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전시 콘텐츠의 획일화는 결국 대중의 문화적 풍요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전시 콘텐츠의 다양화를 위해서라도 '콘셉트 잡기'에서 벗어난 양질의 전시들이 더 많은 공간에서 개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문화 예술의 향유자로서 우리는 전시의 질과 대중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전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전시들은 예쁜 사진 뿐 아니라 다양한 감상과 생각, 고민을 남기는 전시였으면 한다. 예술가와 관람객이 교감할 수 있는 전시, 관람객들이 스스로 대화의 꽃을 피우는 전시를 곧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승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