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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매화보다 빠른 '봄의 전령'...동백꽃 여행지

by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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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도는 긴 뱀이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 해 붙은 이름이다. 길쭉한 이 섬에 약 10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한다.

새빨간 꽃잎, 샛노란 꽃술…. 남녘에서 동백꽃 소식이 들려온다. 동백꽃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입춘이 지나면 빛깔이 선명해진다. 매화보다 먼저 피는 ‘봄의 전령’으로 동백꽃이 꼽히는 이유다. 동백꽃으로 이름난 몇 곳을 추려봤다. 꽃구경을 위한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고 주변 풍광도 참 멋진 곳이다.

경남 통영 장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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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도 동백나무 터널.

경남 통영 장사도는 연인이 좋아할 만한 ‘동백섬’이다. 2012년 ‘까멜리아’라는 해상공원으로 예쁘게 꾸며졌고 이듬해인 2013년 한류의 중심에 있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드라마에서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이 지구 여자 ‘천송이’(전지현)에게 프러포즈를 하던 곳이 바로 이 섬이다. 물론 예쁘기만 한 섬은 아니다. 여운이 오래 남을 정서와 천연한 자연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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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나면 동백꽃의 빛깔은 더욱 선명해진다.

일단 동백나무 이야기. 장사도에는 약 10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한다. 중앙광장 옆의 동백나무 터널은 이 섬의 상징이다. 섬 전체에는 동백나무를 비롯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팔손이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울창하다. 여느때 찾아도 초록의 싱싱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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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죽도국민학교 장사도분교. 장사도에는 한때 약 8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

장사도라는 이름은 긴 뱀이 누운 모양에서 비롯됐다. 길쭉한 형태의 섬에는 한때 8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 사는 것이 불편해진 탓에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결국 1986년에 마지막 주민이 섬에서 나갔다. 이후 공원이 조성될 때까지 섬은 무인도로 남아 있었다. 사람 손이 타지 않은 덕에 자연이 오롯이 보존됐다. 인공의 느낌이 덜한 이유다. 산책로는 오래된 거목을 에둘러 지난다. 건물들은 옛집과 공지를 활용해 지어졌다. 천천히 섬을 산책하다보면 ‘오래된 것’들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장사도 주변 전망은 장쾌하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풍경이 제각각이다. 섬 곳곳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특히 승리전망대에서는 비진도, 한산도, 죽도를 포함해 멀리 통영의 미륵산까지 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승리전망대 앞바다를 거쳐 경남 거제 옥포만으로 나아갔다. 그곳에서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인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달팽이전망대도 인기다. 길게 뻗은 섬의 등줄기가 오롯이 내려다보인다.


통영유람선터미널에서 장사도까지 유람선이 수시로 다닌다. 약 40분 거리. 섬은 행정구역상 통영에 속하지만 거제에서도 가깝다. 거제 저구항에서 장사도행 배를 탈 수 있다. 약 20분 걸린다.

전남 여수 오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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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가 울창한 여수 오동도. 오동나무와 관련이 깊지만 정작 유명한 것은 동백꽃이다.

전남 여수 동쪽 앞바다에 오동도가 있다. 섬이지만 육지와 방조제로 연결돼 있다.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름의 유래는 오동나무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정작 유명한 것은 동백꽃이다.


오동도에는 약 5000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한다. 약 2.5km에 걸쳐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조붓한 숲길은 울창한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고 이국적인 대나무 숲을 관통해 우아한 자태의 하얀 등대까지 이어진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섬의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했다. 소라바위, 병풍바위, 코끼리바위, 용굴 등의 기암이 눈을 즐겁게 한다. 언제 찾아도 손해보지 않을 풍광이 섬에 있다. 그러나 동백꽃 필 무렵의 분위기는 봄바람 만큼 상쾌하고 싱싱하다. 사람들은 싱싱한 기운 받으려고 동백꽃 피기를 기다려 멀리서 애써 찾아온다. 붉은 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꽃길’이 펼쳐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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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신우대) 터널은 오동도의 또 다른 볼거리.

오동도의 동백꽃에는 애틋한 이야기 하나가 서려있다. 옛날 어느 어부의 아내가 도적에게 쫓기다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어부는 슬퍼하며 아내를 오동도에 묻었다. 그해 겨울 찬바람이 몰아치더니 무덤가에서 붉은 꽃 한송이가 피었다. 동백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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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정상의 오동도 등대.

오동도는 위에서 내려다 보면 오동잎을 닮았다. 옛날에는 섬에 오동나무도 지천이었단다. 이런 오동도가 어쩌다 동백섬이 됐을까. 고려 말의 승려 신돈이 섬의 오동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그는 오동나무에 봉황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새 왕조가 일어날 ‘불길한’ 징조라고 여겼단다. 오동나무가 대부분 자취를 감춘 이유다.


오동도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우대(조릿대)도 많다. 울창한 대나무터널은 동백나무터널 못지 않은 섬의 볼거리다. 충무공 이순신이 이곳에서 군사를 훈련시키며 신우대를 잘라 화살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여수는 한동안 수도권에서 멀게 느껴졌다. 2012년 여수엑스포 개최로 고속철도(KTX)가 뚫리고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가 인기를 끌며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좁혀졌다.

전남 강진 만덕산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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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부도탑 주변의 동백나무 숲.

백련사는 전남 강진 만덕산 기슭에 있다. 두 가지가 유명하다. 첫째 고려 대몽항쟁기의 불교개혁운동 ‘백련(사)결사’의 중심이 이곳이다. 이 천년고찰에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국사와 종사가 각각 8명씩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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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들머리에도 동백나무가 울창하다.

다음으로 부도탑 주변의 동백나무 숲이 이름났다. 수령 500~800년 된 동백나무 약 700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붉은 꽃이 고운 봄 볕을 받아 오글거리는 풍경이 어찌나 싱싱한지 딱 5분만 보고 있으면 겨우내 묵었던 가슴 속 앙금이 말끔하게 떨어진다. 일주문에서 경내로 드는 진입로에도 동백나무가 지천이다. 초록의 잎사귀 사이로 꼬마전구처럼 반짝이는 붉은 꽃은 또 어찌나 탐스러운지. 이제 곧 이토록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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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웅장한 현판 글씨는 조선시대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가 썼다.

백련사에서는 대웅보전을 꼭 구경한다. 웅장하면서도 단청 빛깔이 참 곱다. 특히 현판 글씨를 눈여겨본다.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 압권이다. 조선시대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가 썼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이어진 조붓한 산책로도 걸어본다.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다산초당에 머물 당시 백련사 주지 혜장선사를 만나러 다니던 길이다. 두 사람은 길을 걸으며 학문과 사상을 논하고 차(茶)를 즐기며 다도를 이야기했다. 1km 남짓한 짧은 구간이지만 첩첩산골 숲길 못지 않은 운치가 서려 있다. 지금부터는 달콤한 동백꽃 향기가, 봄이 질펀해지면 풋풋한 차향이 진동한다. 걷다 만나는 천일각, 해월루는 장쾌한 강진만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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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약 11년간 머물렀던 다산초당. ‘목민심서’ 등이 이곳에서 집필됐다.

길 끝에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은 18년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이 가운데 11년을 초당에서 머물렀다.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해 무려 600권의 저서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고운 볕을 쬐며 툇마루에 앉아 게으름을 부리면 마음은 벌써 봄의 한복판이다.


글·사진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