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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자국의 패배를 예견한 총력전 연구소

일본이 패망할 것을 알고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고?

by유용원의 군사세계

질 것을 알고도 시작한 전쟁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아니 어떤 멍청이가 질 걸 알고도 전쟁을 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좌)히로시마 (우)나가사키

주영일본대사관 파견무관이던 타츠미 에이이치는 영국의 국방대학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타츠미 에이이치(辰巳栄一)

당시 영국은 국방대학에 각계각층의 유망한 인재들을 입학, 유사시 민관군의 협력체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제도 동일한 민관군 통합 연구기관, 총력전 연구소를 창설하게 됩니다.

지금 한국으로 치면 국방연구원이 되겠네요. 그리하여 1941년 4월 1일. 일제의 내각을 모의로 구성한 35명의 민관군 젊은 전문가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이 모의 내각은 내각총리대신(現 아베 신조의 직책), 육해공군 참모총ㆍ차장, 조선총독 등 전쟁 지휘에 필수적인 직책 뿐 아니라 농식품부 장관에 해당하는 직책은 물론, 일본 왕족 중 참관인까지 구성되어 말그대로 가상의 일제 지도부를 통째로 구성해놓았습니다.

도조 내각(당시 일제 국회)

이들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태평양 전쟁의 거의 전 기간을 지휘했습니다. 워낙 뛰어난 인재들을 뽑아놓다보니 교육시키는 교관들보다 현장과 실무에 대해 더 잘 알 정도였죠.

(그들 입장에서) 시시한 교육이 끝나고 본 연구가 시작되자 그들은 최선을 다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본래 임무는 연구와 워게임을 통한 태평양 전쟁 양상의 예측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군에서는 전략수립의 기초가 됩니다.

그들의 연구활동에는 현장견학도 있었는데요, 육군사관학교에 대해서는 "너무 정신주의를 강조하니 아무래도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육군 뿐만 아니라 2차대전기 일제 정신주의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제15군사령관 무타구치 렌야

일본인은 원래부터 초식동물이다. - 보급이 부족하다는 부하의 말에

카미카제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영국 해군 중순양함 HMS 서섹스(Sussex)

"유인" 유도어뢰 가이텐(回天). 잠수함이 아니라 어뢰. 사람이 탑니다. 내리실 곳은 없습니다.

그들은 일제 수뇌부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정신주의와 여러가지 폐혜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본연구에 들어가서 그들이 예견한 것들은


  1. 미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더라도 시점은 최대한 뒤로 미루어야 한다.
  2. 미국과 전쟁을 피할 수는 없지만 장기전을 고려해야한다.(적중)
  3. 첫전투 승리→강화조약 맺는다는 건 상대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발상(적중)
  4. 독소전쟁은 모스크바 및 레닌그라드 동쪽에서 교착될 것이다.(적중)
  5. 소련이 미국과 연계할 조짐(적중)
  6. 1942년, 석유 비축분이 바닥나고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다.(적중)

'국력이 허하는 바가 아니라는 견해. 각의는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선언. 모의내각(연구소) 총 사퇴.

결론

우리가 집니다. 전쟁하지 마세요. - 연구소

일본제국 내각총리 도조 히데키

제군의 성과는 탁상공론이라 할 수는 없으나 의외성이 반영되지 못했다. 제군은 이 책상연습의 결과를 경솔하게 발설치 말라.

도조 히데키의 말은 일견 맞는 말 같지만 의외성이란 대부분 아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아니... 전쟁을 하지 말라니까요? 이럴 거면 왜 불렀어?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연구원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질 원폭까지 예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한 것은 당시 일본의 조악한 산업기술, 강대국에 비해 열세한 자원상황, 그리고 과도한 정신주의 등의 패인을 찾아냈고 그들의 말대로 일본은 일본 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엄청난 피해만 입힌 채 패배하고 말았죠. 굴욕은 덤ㅋㅋ

(좌)주머니 손 맥아더 (우)꼿꼿이 선 쇼와천황

총력전 연구소의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는 아니지만 분명 배울 점이 있습니다. 듣기 싫고 불리한 예측을 절대 간과하지 않고 가끔은 물러설 줄도 알며 물러서지 못한다면 충분히 대비하는 자세가 정신승리로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 말이죠.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이니까요.


구성 및 제작 / 디지틀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