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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작곡가의 명곡을 연주하는 것은 후손들의 자유

정격연주와 현대악기연주, 어느 쪽이 진리일까

by비즈니스포스트

정격연주와 현대악기연주, 어느 쪽이

정격연주는 어떤 곡이 작곡되어 초연되었을 당시의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며, 곡 해석방법이나 악기편성 등 모든 것들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데 최고의 가치를 두는 연주기법을 말한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춘 퓨전사극 열풍이 뜨겁다.

  

매주 주말 저녁이면 방송되던 철저한 고증에 입각한 정통사극이 아닌, 말 그대로 판타지이고도 현대적인 요소에 작가 나름의 해석까지 가미된 역사 드라마다. 2007년으로 기억되는데 필자도 ‘태왕사신기’라는 광개토대왕 소재의 드라마를 매우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정격연주(正格演奏). 원전연주라고도 한다. 어떤 곡이 작곡되어 초연되었을 당시의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며, 곡 해석방법이나 악기편성 등 모든 것들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데 최고의 가치를 두는 연주기법을 말한다. 즉 철저한 고증을 거치는 기존의 정통사극과도 같은 연주기법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클래식음악은 TV사극과 달리, 정격연주기법보다 현대악기연주기법이 더 먼저 쓰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퓨전사극이 먼저 나왔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카라얀이나 토스카니니가 연주한 바흐나 베토벤의 음원은 철저하게 현대에 맞게 개량된 악기를 사용하여 현재 쓰이는 주법으로 연주된 음원들이다. 

 

그러던 것이 영국의 데이비드 먼로우라는 사람이 1967년 처음으로 ‘런던 고음악 연주단’을 결성하여 그 당시 연주를 재현해 내고자 노력했던 것이 정격연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니콜라스 아르농쿠르,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존 엘리엇 가디너 등의 지휘자들이나 안너 빌스마,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프란스 브뤼헨, 빌란트 쿠이켄 등의 연주자들에 의해 정격연주는 세계적 인기를 끌게 된다.

 

정격연주가 유행처럼 번지자 음악가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애호가들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어떤 연주가 옳고 그르냐에 대한 논쟁이다. 음악에 정답이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주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한 곡을 연주하는 방법에 따른 논쟁이기 때문에 양쪽 진영 모두 의견차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원전주의파들은 그 시대의 곡들은 당연히 그 시대의 악기와 연주기법에 따라 작곡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원전악기와 원전연주기법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반대진영은 원전연주를 정확하게 하려면 그 당시의 여러 가지 문헌들을 통한 철저한 고증과 복원을 거쳐야 하고, 음악사를 포함한 방대한 예술사 전반에 걸친 풍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고를 따질 수 없다. 위에 이야기했듯이 음악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음악이란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휘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도 사실 저 고민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휘과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시절, 존 엘리엇 가디너가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베토벤 전집을 처음 듣고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카라얀의 기름기 넘치는 베토벤만을 듣던 필자가 처음 접한 정격연주의 베토벤은 정말이지 날씬하고 또한 매력적이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비교해서 들어보시라. 음높이(pitch)는 물론이고, 일단 연주시간부터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격연주는 템포가 매우 빠르다.

 

10여 년 이상 지속된 고민은 굳이 정격연주뿐 아니라 내가 지휘해야 하는 모든 악곡들의 해석의 방법을 어떻게 달리 가져가야 하는가로 번졌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유학을 마칠 시기가 다가왔는데, 유학종료 이틀 전 극적으로 그 고민이 해결됐다. 음악의 도시 빈에서.

 

필자의 유학시절 꼭 여행하고 싶었던 도시 빈을 유학종료 삼일 전 방문하게 되었다. 이미 한국으로 부칠 짐들은 다 부치고 홀가분하게 빈으로 향하는 저비용비행기에 올라 새벽부터 다음 날 늦은 밤까지 2박3일같은 1박2일 빈 여행을 하게 되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날 빈 중앙 묘지 베토벤 무덤 앞에서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말러의 무덤을 찾으러 갔던 그린칭에서 베토벤의 추억을 발견하고 흥분했다. 물론 맥주와 바비큐 립도 훌륭했고.

 

여행 첫 날 호텔로 돌아가기 전 슈테판 대성당이 있는 빈 중심가를 몇 시간동안 걸으며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그러던 중 문득 어떠한 생각이 들었고, 나의 십년간의 고민은 해결되었다.

 

유럽의 옛 시가를 여행해 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옛날 집들이 그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빈 시가도 마찬가지였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살던 집도 옛날 모습 그대로였고, 길도 마차가 다니기 좋은 돌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마차를 위해 만든 돌길 위로 지금은 BMW나 벤츠, 아우디가 다니고 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마차도 물론 다녔다. 또 베토벤이 살던 집 주변 역시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 1층에 박물관이 아닌 맥도날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이 살던 시절, 이 돌길을 닦고 건물을 올린 건축가들이 과연 이 건물에 누가 입주할 줄 알고 건물을 지었을까? 수백년 뒤 맥도날드가 들어설 줄 누가 알았으며, 마찻길에 BMW가 다닐 줄 누가 신경이나 썼겠는가. 그냥 자신의 소임을 다한 채 선물처럼 그 유산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을 뿐이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작곡가들은 곡이 나중에 어떻게 연주되리라고 상상도 못했으며, 관심도 없었다. 그냥 악보에 자신이 요구하는 전부를 다 적어놓고, 그 악보를 선물처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을 뿐이다. 

 

그럼 그 악보에 마차를 다니게 하던, 아우디를 다니게 하던 이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선택 아닌가? 200년 넘은 건물같은 악보를 보존하여 박물관을 만들건 아니면 1층에 맥도날드를 입주시키건 그것은 우리들의 자유 아닐까?

 

작곡가들의 선물과도 같은 곡들을 정격연주로 연주하건 현대식으로 해석하건 그것은 후손들의 몫이고, 이것 또한 자유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한 채 우리들에게 그 명곡들을 남기고 떠났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그 명곡들을 어떻게 재탄생시키는지 우리는 호기심을 갖고 음악을 감상한다.


김광현 777kh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