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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조성진과 윤디 리,
그리고 쇼팽콩쿠르 우승자의 품격

by비즈니스포스트

조성진 쇼핑콩쿠르 우승, 과거 우승자 윤디 리의 구설수

조성진과 윤디 리, 그리고 쇼팽콩쿠르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

얼마 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전해진 낭보가 있었다. 바로 피아니스트 조성진 군이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권위의 제 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는 소식이었다.

 

쇼팽 콩쿠르 하면 그냥 쇼팽을 기념하는 대회려니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수많은 피아노 콩쿠르 중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피아노 콩쿠르를 꼽으라면 보통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그리고 쇼팽 콩쿠르를 꼽는다. 

 

이 가운데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 부문밖에 없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앞의 두 개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여겨진다. 체감온도가 더욱 높다는 이야기이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기자들이 쓴 기사에서는 이번 수상을 일컬어 알아듣기 쉽게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이라고 했는데, 어쨌든 이번 수상은 우리나라의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2005년 대회에서 공동 3위에 오른 이후 10년만의 쾌거이며, 실제로 결선에 오른 한국인 피아니스트도 2005년 대회의 임동혁, 임동민, 손열음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지금 언급한 피아니스트들 모두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연주가들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이 쇼팽 콩쿠르 우승자를 위해 협연자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린다. 물론 조성진 군은 이미 예전부터 세계적인 대가들과 수많은 협연을 했지만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써 협연하는 연주는 조금 더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쇼팽 콩쿠르 홈페이지만 봐도 전 세계를 도는 연주 일정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년 2월 2일에 입상자들의 연주가 계획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같은 쇼팽 콩쿠르에서 15년 전에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윤디 리의 내한공연이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시드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였는데, 마침 곡도 자신이 우승했던 바로 그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조성진 군이 이번 결선 무대에서 연주한 곡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무대에서 윤디 리는 1악장 초반부터 음을 빼먹는 등의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더니, 템포를 마음대로 당기다가 쳐야 하는 마디를 완전히 건너뛰어서 다른 부분을 연주하고, 결국 오케스트라가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 되자 마침내 연주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한손을 들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제스츄어를 취하더니 틀린 부분부터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연주는 역대 내한공연 사상 최악의 졸연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앙코르 요청도 없었고, 윤디 리도 연주가 끝난 후 바로 퇴장하여 커튼콜 없이 곧장 호텔로 돌아갔다고 한다.

 

자, 일단 지휘자로써 솔직히 고백하겠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에서 지휘자가 잘못할 만한 부분은 단 한군데도 없다. 그 말은, 지휘자가 지휘를 틀려도 웬만하면 오케스트라가 맞추면서 그냥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휘자가 3박자 지휘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템포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와 계속 교감하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안고 가야 하는 라흐마니노프도 아니고, 쇼팽의 협주곡은 피아니스트가 말 그대로 연주력만 과시하며 흘러가듯 제대로만 연주해 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곡이다. 

 

그런데 자신의 연습 부족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 탓을 하는 듯한 무대 위에서 손동작과 연주 후의 무성의한 퇴장, 심지어 공연 후 할로윈 의상을 입고 내일 기대하라는 SNS 글까지. 정말 연주를 망친 연주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을 한 당사자가 바로 그 쇼팽 콩쿠르로 유명해진 윤디 리라는 점에서는 정말 실망스럽다.

 

물론 무성의한 연주로 내한공연을 가진 해외 연주자들은 꽤 있다. 몇 해 전 내한하여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모 피아니스트도, 남들 다 외우는 곡을 악보를 보고 치는데도 불구하고 음표를 다 빼먹고 쳐서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악보를 보고 치는 것은 뭐 별로 상관없다 쳐도, 상식적으로 정말 너무한 연주였다. 그런데 그런 연주 후 열화와 같은 박수세례를 받아 더욱 어이없었다. 물론 훤칠하니 잘생긴 외모로 국내에 많은 팬을 거느린 연주가이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환불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이번 윤디 리의 연주와 행동에 비하면 그것은 그냥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이번 연주는 조성진 군의 수상과 오버랩되어 더욱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윤디 리의 그 연주회장에 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의 속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부상 혹은 순간적인 기억 장애가 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계획된 연주 후 즐기는 할로윈 파티도 솔직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기획사에서 올렸을 수도 있고. 

 

하지만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다. 윤디 리는 최정상급의 개런티를 받는 프로 연주자이고, 프로 연주자에게는 자신을 보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여 연주회장에 앉아 있는 관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최고의 연주를 할 의무가 있다. 

 

무대 위에서의 매너도 마찬가지로 프로다워야만 한다. 아마추어가 아니다. 철저하게 준비해 왔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날 윤디 리는 프로 연주자로써 자신의 가치를 보이는 데 실패했다. 바로 그 점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베를린 유학 시절, 마에스트로 샤를르 뒤트와가 객원으로 지휘한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협연자는 무려 에프게니 키신. 곡은 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 3번. 그런데 돌연 키신은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했고, 그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 사람은 무려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였다. 

 

자신의 장기 레퍼토리답게, 또한 최고의 호흡을 보여 준 바 있는 전 남편 샤를르 뒤트와 협연무대답게 연주는 최상이었는데, 연주 후 그는 관객을 향한 90도 이상 허리를 굽히는 수차례의 무대인사도 해 필자는 큰 감명을 받은 바 있다. 그 또한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다.

 

쇼팽 콩쿠르는 1등을 줄 만한 사람이 없으면 아예 수상자를 내지 않는 콩쿠르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권위와 자존심이 있는 콩쿠르라는 것이다. 역대 우승자들만 봐도 그렇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 세계 최고의 대가들이 다 이 콩쿠르를 거치지 않았는가. 

 

조성진 군이 언젠가 이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함께 거명되길 기대한다. 아시아 최초로 우승한 당 타이 손이나 윤디 리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