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여행]by 채지형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가족을 도우러 시장에서 나온 꼬마 아가씨.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이열치열. 무더운 여름, 중국에서 가장 더운 투르판으로 첫 번째 시장구경을 떠나보자. 2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실크로드의 중심지 투르판(吐魯番). 7~8월이 되면 투르판의 온도계는 45~50도를 오르락내리락한다. ‘불의 도시’라는 별명이 딱 맞다. 땅의 열기는 여행자의 얇은 슬리퍼를 녹여낸다. 손오공을 아는 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화염산이라고. 손오공이 파초선을 빌려 불을 껐다는 화염산이 투르판에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극심한 더위에 차가 견디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투르판의 연평균 강수량은 16.6mm이다. 서울의 연평균 강수량이 1350mm 정도니, 투르판이 얼마나 메마른 땅인지 상상할 수 있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불길이 치솟는 모양의 화염산. 여름에는 여행자들의 슬리퍼를 녹여낼 정도로 뜨겁다. 태양이 직접 내리쬐는 곳은 80도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이렇게 가혹한 사막에서 어떻게 사나 싶지만, 막상 가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습하지 않아 그늘은 견딜만 하다. 넘실거리는 초록의 포도넝쿨은 눈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고온 건조한 날씨는 투르판에 세계 최고의 포도를 선물했다. 뜨거운 햇살과 힘센 바람을 맞고 자란 포도는 우리가 알고 있던 포도와 다르다. 일반 포도 대비 당도가 두 배 이상. 포도 몇 알만 먹어봐도 입안에 확 퍼지는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종류도 그렇다. 백포도, 홍포도, 장미향 포도 등 100여 종의 포도가 자랄 정도로, 투르판 포도는 급이 다르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투르판의 상징 포도. 어디에 가나 주렁주렁 열린 포도를 볼 수 있다. 

투르판의 대표 아이콘, 포도

특히 한여름의 투르판은 포도세상이다. 시장에도 길거리에도 포도가 넘친다. 여름이 되면 시내 중심에 있는 약 3km 길이의 청년로에 포도터널이 생긴다. 포도 아래에서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족들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낭만적이다. 주렁주렁 열린 포도 아래에서 오가는 대화는 다디달다. 원 없이 포도를 보고 싶다면, 투르판에서 7km 떨어진 포도 밸리에 가면 된다. 8km에 달하는 협곡에 포도송이가 끝도 없이 이어진 장관을 볼 수 있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좌) 시내 한복판에 있는 포도터널. 
(우) 포도농사를 하는 집에는 포도를 말리는 저장고가 있다. 오른쪽 격자무늬 건물이 포도 저장고. 바람이 잘 통하게 설계되어 있다.

투르판에서는 시장을 바자르라고 부른다. 바자르에 가면 산처럼 쌓여있는 건포도를 만나게 된다. 포도를 말리면 당도가 높아지고 보관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에, 투르판에서는 수확하는 포도의 상당부분을 건포도로 만든다. 1kg의 건포도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포도는 약 15kg. 여름이 되면 투르판 농가는 포도를 수확하고 말리느라 분주하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건포도 종류도 다양하다. 

투르판 바자르에서 첫 번째로 맛봐야할 것이 포도라면, 다음은 국수다. 투르판에서 국수는 별식이 아니라 주식이다. 투르판에 여러 민족이 살고 있지만, 위구르족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위구르족의 음식 문화에서 국수는 중심에 있다. 이들은 양고기와 토마토, 고추, 피망을 볶은 소스를 면에 얹어 비벼 먹는데, 중국어로 ‘빤미엔’(拌面)이라고 부른다. 매콤하면서 느끼하지 않고 고소한 맛이 난다. 생각 만해도 침이 고인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투르판 사람들의 주식인 국수.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집에서 빤미엔을 만들기 위해 주부들은 바자르에서 면을 산다. 투르판 바자르는 우리나라 시골 재래시장처럼 아담하고 소박하다. 한가해 보이는 상인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사지 않을 물건이라도 가격은 얼만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물어봤다.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노점에서 한참동안 시간을 보냈다. 가족을 도와 장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기특해서였다. 시장에 나와 있는 것이 힘들 때도 있으련만, 아이들은 연신 싱글벙글거렸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이곳을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에선가, 친구들도 나타났다. 가방에서 홍삼캔디를 꺼내 까먹으며, 손짓발짓을 하며 웃음을 나누었다. 역시 노는데 언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좌) 시장에서 국수를 사고 있는 위구르 여인. 
(우) 투르판 시장에서 함께 놀았던 장난꾸러기 꼬마 아가씨.

화려한 위구르 여인들의 패션

투르판 바자르에서 눈을 반짝이게 만든 것은 옷과 모자다. 자그마한 시장에 옷 가게는 왜 이렇게 많은지. 옷 가게에 걸려 있는 옷들은 왜 이렇게 화려한지 놀라웠다. 한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이라면, 위구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입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음식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은데 비해, 옷과 액세서리는 형형색색 다양했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1) 위구르 남자들이 쓰는 모자. (2) 스카프를 고르고 있는 여인들. (3) 위구르 여인들이 사랑하는 원피스. 알록달록 화려하다.

바자르 입구에 들어서서 발길이 먼저 닿은 곳은 모자 가게. 명당자리에 모자가게가 턱 하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자가게 안에는 남자들을 위한 무채색의 모자들과 아이들을 위한 원색의 모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위구르 남자들에게 모자는 패션의 완성이 아니라 패션의 기본. 티셔츠부터 정장까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든지, 사각형 모양을 한 도파(doppa)는 빠지지 않는다. 

 

위구르 여인들은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특히 공작의 깃털처럼 생긴 위구르 특유의 패턴을 한 원피스가 많다. 패턴은 비슷하지만 빨주노초파남보, 여러 색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그 어떤 옷보다 화려하다. 알록달록한 위구르 원피스는 서구적인 얼굴형을 가진 위구르 여인들에게 잘 어울린다. 젊은 여인들은 맵시를 위해, 옷감을 따로 사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상가 2층에는 옷을 맞춰주거나 수선해 주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처음 위구르 여인들의 옷을 봤을 때는 익숙하지 않은 패턴 때문에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는지 시장을 나설 때 내 손에는 위구르 문양의 원피스가 한 벌 들려 있었다. 분명 집에 가서 후회하게 될 것이 뻔하지만. 

 

위구르 여인들은 모자 대신 스카프를 쓴다. 시장에는 천과 색, 패턴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스카프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들은 이 스카프 중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스카프를 고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좌) 자수는 위구르 여인들의 취미생활. 
(우) 꽃무늬 양탄자. 투르판 바자르 어디에서나 꽃모양을 찾아볼 수 있다.

투르판 바자르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재미는 자수제품. 위구르 어로 된 경구를 한땀 한땀 수 놓을 수 있는 것부터 꽃과 과일 모양을 내는 패키지까지 다채로운 상품들이 놓여 있다. 이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것은 꽃 모양 자수였다. 위구르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더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고 보니 바자르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꽃 패턴이었다. 위구르 사람들 집에 꼭 필요한 제품인 카페트에도, 차를 마시는 주전자 위에도 꽃이 들어 있었다.   

 

신기한 것들을 따라 바자르 구경을 한바탕 하고 나니 목이 말랐다. 위구르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다보니, 투르판 바자르가 더 없이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척박한 땅에서 포도를 키우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위구르족. 문득 투르판 바자르가 오아시스 같은 도시 투르판의 한 송이 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아시스의 꽃, 투르판 바자르

장을 보고 있는 위구르인. 도파라고 하는 사각형 모자를 쓰고 있다.

201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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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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