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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원은 둥글지 않다

by계란비누

무용수들의 몸은 아름답습니다. 수천의 시간을 쏟았을 몸짓의 흔적들이 손끝과 발끝, 목선과 눈빛까지 고스란히 쌓여있습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그들의 몸은 우아한 곡선이 됩니다. 우리 몸에는 ‘원’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없지만 그 곡선으로 원을 그릴 수는 있습니다. 안무가 허용순이 택한 ‘원’이라는 주제는 무용으로 말하기에 너무나 적합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인 듯 보입니다. ‘원’이 가질 수 있는 광대한 의미들 속에서 허용순 안무가는 어떤 것들을 보았을까요? <The edge of Circle>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원을 수많은 각들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너무도 완벽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원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원은 사실 무수한 작은 각들이 모여 있는 도형이니까요. <The edge of Circle>의 한국 초연을 앞두고 공개 리허설이 있었는데요, 그 둥근 몸짓들을 살짝 소개할까 합니다.

원은 둥글지 않다

원, 회귀

작품의 시작과 끝은 모두 원입니다. 무용수들은 무대 가운데에 점처럼 모여있다가 각자 춤을 추며 흩어집니다. 이 때의 동작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원의 부드러운 성질을 보여줍니다. 무용수의 다리 혹은 파드되의 서포팅이 축이 되어 허공에 원을 그리거나,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동작들로 굴러가는 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작품의 엔딩 부분에서도 역시 무용수들이 점처럼 모이는데요, 그 일련의 움직임들을 모아보면 원을 멀리서 보았다가 가까이서 보고 또 다시 멀리 물러나서 보는 듯 합니다. 무용수들만이 아니라 관객들도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 들겠죠?

원, 탄력

비발디 사계의 ‘여름’이 힘차게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무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뀝니다. 섬세함과 유연함이 아닌 힘과 속도가 무대를 가득 채웁니다. 발레리나의 우아함이 주는 매력과는 사뭇 다른 발레리노들의 파워풀한 몸짓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격렬하게 대립하는 모습도 보이고 갈등도 보입니다. 원의 둥근 선을 만들기 위해 뾰족하게 튀어나온 각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가차없이 깎아내고…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원의 최후의 지점들은 촘촘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원, 관계

또 다시 음악이 바뀌고 일정한 소리가 시침 소리처럼 반복적으로 울립니다. 무대엔 고개를 숙인 채 우두커니 서있는 발레리노가 있습니다. 그 주변을 맴도는 발레리나가 있는데요,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이 갔다가도 무언가에 이끌려 다시 멀어집니다. 이 커플의 방황하는 관계에 이어 또 다른 커플이 등장하는데 이들 역시 서로 얽혀있습니다. 시침 소리 같은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그 관계들은 더욱 상대적인 고리를 만듭니다. 상대적이지 않으면 가늠할 수 없는 시침과 시간처럼 말이죠.

원은 둥글지 않다

허용순_The Edge of the Circle ⓒPhototgrapher Admill Kuyler

안무가 허용순과 스타 무용수들이 힘을 합쳤다는 사실만으로 이번 공연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작품에 집중하여 나만의 해석을 풀어보기에도 좋습니다. 고여있는 생각의 샘물에 안무가 허용순이 던지는 돌을 떨어뜨리면 둥글게 둥글게 생각도 퍼져나갈 것 입니다. 발레축제 기간 중 단 이틀 동안 그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본무대가 더욱 기다려지는 현장 모습들을 전하며 마무리 합니다.

원은 둥글지 않다 원은 둥글지 않다
원은 둥글지 않다
원은 둥글지 않다

글 계란비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