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인텔과 이별할 수 있을까

[테크]by 김국현
애플은 인텔과 이별할 수 있을까

서기 2000년. 평온한 시절이었다. 세상은 윈도우 천지였고, PC의 장래는 더없이 밝아 보였다. 세월이 조금만 더 흐르면 10GHz의 펜티엄 프로세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정말로 믿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펜티엄 4 초반까지만 해도 인텔 프로세서 칩의 제품명은 명쾌하게 몇GHz라는 표기로 끝났다. 버전이 올라갈수록 클럭스피드도 올라가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윈도우도 닷넷을 발표하며 차세대 윈도우 XP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두근두근하게 하던 시절이었으니, 바야흐로 윈텔의 중흥기였다. (불과 몇 년 뒤 인텔 칩의 이름에서 GHz는 조용히 사라진다. 소비전력과 발열 문제로 10GHz의 꿈 대신 1사이클 당 성능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명분을 대신 내걸었다.)

 

하지만 그 해는 애플에게도 특별한 해였다. 바닥을 친 애플을 2년 반 동안 iCEO로서 변화의 길로 이끌었던 스티브잡스에게서 i자, 즉 interim(잠시, 임시)이 떼어지는 순간이었다. 객석은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스티브 잡스와의 2년 반은 어떤 의미였길래 모두 그렇게 기뻐했을까?

 

구형 Mac OS는 이미 그 한계에 달한 지 오래인 데도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을 포기할 정도로 무기력했던 90년대 중반. 급한 대로 애플 출신이 만든 BeOS를 차세대로 삼으려 했으나 미완성 제품에 가격을 지나치게 높여 부르는 바람에, 그럴 바에야 차라리 스티브 잡스의 NeXT를 매수하기로 한 것. 따라서 NeXT가 만들어 온 운영체제 NextSTEP의 개방형 버전인 OPENSTEP으로 애플의 차세대 운영체제를 삼기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2000년 등장한 다윈(darwin)이라는 운영 체체다.

 

오늘날의 macOS 및 iOS도 모두 이 다윈 위에 살을 붙인 것이니 그 핵심은 같다. 1989년 처음 등장한 잡스의 NeXTSTEP은 돌고 돌아 2000년에 드디어 내 집을 찾은 셈이다. 다윈은 또한 당시 애플이 채택하고 있었던 IBM CPU PowerPC 이외에도, 인텔 x86로도 동시에 컴파일되었다. 당연히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켰지만 누구도 설마 바로 5년 뒤에 애플이 인텔과 손을 잡으리라고는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와 호환성이 없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투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여기에 CPU를 바꿔 버리는 일이란 무모한 일이기에 5년의 간격을 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앱을 새로 컴파일해야 하거나 혹은 새로 짜야 한다. 이는 플랫폼에게도 부담이지만, 이 플랫폼을 믿고 개발해 온 개발자들에게도 막대한 부담이 된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대형 개발사들조차 3년쯤은 미뤘다가 겨우 지원하기도 하곤 했다. 그 과도기 동안은 구형 OS용 소프트웨어를 흉내 내 돌려줘야 하고, 소프트웨어 배포시에도 과거와 현재판 두 벌을 만들어야 하니 여러모로 적잖이 피곤한 법이다.

 

시장과 개발자 양쪽에서 어지간한 충성도가 있지 않은 한 이와 같은 대개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당시 스티브잡스가 이끌었던 애플 플랫폼의 발본적 개혁과 과거와의 결별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인텔칩을 심은 것은 성공적이었다. 윈도우도 쾌적하게 깔리는 맥을 만들어, 윈도우가 도는 가장 멋진 노트북처럼 보이게 했다. 또 해킨토시(일반 PC에 맥용 OS를 해킹하여 설치하는 것)로 가난한 이들 또한 맥을 써볼 수 있게 되니 이들도 팬이 되어 결국은 맥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PC가 빠르니 맥이 더 빠르니 하는 스펙 경쟁 대신 똑같은 칩 위에서 누구의 소프트웨어가 더 정갈하고 심플하게 디자인되었는지로 차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의 장점을 자랑할 수 있는 평평한 토대를 확보한 셈이었다.

 

하지만 15년 뒤, 그 장점이 모두의 상식이 된 지금. 유일하게 자신의 통제하에 없는 부품을 쓰는 일은 불편한 일이다. 게다가 애플의 스마트기기용 고성능 칩 A시리즈는 이미 보통내기가 아니다. 저전력 면에서는 더 낫다. 자신감도 붙었다.

 

정말로 인텔과 결별한다면 이는 제조업으로서의 애플 자신에게는 좋은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개발자에게는 근 15년은 겪어 본 적 없는 악몽을, 또한 더 높은 성능, 호환성, 확정성, 모듈화 등을 애플에게 요구해 온 전통의 단골 ‘프로 유저’들에게는 또 한 번의 소외감을 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인텔과 다윈으로의 이행은 스티브잡스의 후광을 빼더라도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애플에만 좋은 일로 보인다.

 

게다가 대대적으로 바뀐 최상급기종 ‘맥 프로’가 내년에 나오기로 한 마당이다. 당연히 초고성능 인텔칩이 탑재될 터이고, 스마트기기가 아닌 워크스테이션급 칩을 애플이 급하게 잘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2005년 애플이 인텔로 가는 가장 큰 이유로 든 것이 바로 성능이었을 정도로 ‘프로 사용자’들은 애플에게 중요한 고객군. 그렇다면 어차피 초고성능은 인텔로 가고, 팬 없이 구동 가능한 수준의 맥북 정도만 자체 칩으로 가는 병행 전략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긴 과도기의 혼돈을 초래할 뿐이니 애플로서도 고민은 그칠 줄 모른다.

 

그런 와중에 결별 소문이 새어나가고 말았으니, 인텔도 애플도 그저 복잡한 심경에 노코멘트 이상은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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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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