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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기록매체의 어느 미래,
DNA 스토리지

by김국현

기록매체의 어느 미래, DNA 스토리

국립중앙도서관에는 기록매체박물관이 상설 개장하고 있다. 레트로 감성의 빈티지 기기들이 늘어서 있으니 컴퓨터 애호가라면 추억을 소환하기에 좋은 장소다. 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라도 충분한 교양의 자극을 주는데, 종이에 기록하던 인쇄의 역사로부터 현대 컴퓨터의 등장까지 기록 매체가 어떻게 기하급수적 성장을 해 왔는지를 엿볼 수 있어서다.

 

스마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조차 우리 스스로 이렇게 많은 정보를 뿜어내고 그 모든 것이 디지털로 기록되리라고는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발전의 가속도를 굳이 수치화하지 않아도 기록 매체의 가공할 진보는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이미 체감하고 있는 일이다. 박물관에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기 위해 나름 최신 SSD도 전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전시하는 순간 그 최신 제품은 구형이 되어버리는 전자제품의 숙명은 피할 수 없다. 현대 기록매체의 상징으로 진열된 마이크로SD 카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 손톱만한 크기에 수백GB가 들어가는 것인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해지기는 한다.

 

최근 화웨이는 NM(나노 메모리)카드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노 유심 크기로 더 작아졌다고 하는데, 마치 마이크로 USB처럼 ’마이크로’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은 모두 과도기적 구형이 되고 마나 보다.

 

점점 작아져 기록밀도가 높아지면 데이터의 수납공간이 작아져서 물리적으로 휴대하고 운반하기는 쉬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물리적으로 불안정해지는 탓인지 고장이 잘 나곤 한다. 지금 책상 위에는 두 장의 고장 난 마이크로SD 카드가 굴러다니고 있다.

 

또 소모품이 된 탓인지 고치기도 쉽지 않다. SSD의 데이터 복구는 HDD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어렵다. 이처럼 기록매체는 진보한 만큼 점점 불안해진다. 하드디스크는 몇 년 못 가 힘을 잃고, 광디스크는 피막이 벗겨지며, 자기테이프는 그나마 좀 안정적이지만 아직 100년 뒤를 겪어 보지 못했다.

 

이와 같은 기록매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여러 움직임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으니 바로 생화학적인 접근법이다. 그중에서도 DNA에 기록해 보자는 아이디어는 오래되었다.

 

컴퓨터가 0과 1의 이진수라면, 생명의 설계도인 DNA는 핵산을 구성하는 4가지 염기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의 4진수 부호화인 셈이니 적절한 인코딩을 하면 매체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DNA는 이미 자연에 대량으로 존재하는 고분자물질이기에 임의의 염기 배열로 자동 합성해낼 수 있다. 두루마리 종이가 뽑혀져 나오듯 DNA 이중나선도 출력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

 

게다가 DNA는 포장만 잘되면 기록매체로서 안정적이다. 냉동이든 화석이든 적절히만 보존된다면 만년은 거뜬하다. 오죽하면 쥬라기 공원 같은 상상이 가능하겠는가. 모든 생명체가 자기 존재의 기록 매체로 이걸 채택한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피 또한 작다. 메모리나 디스크 매체라면 컨테이너 한 대는 차지할 양의 데이터도 DNA라면 각설탕 크기로 줄일 수 있다. 1그램 DNA에 담을 수 있는 데이터 양은 무려 2억 GB. 언젠가 저 우주 너머로 인류 문명을 백업해야 할 때, 우주선으로 반출하기에 아주 적절한 크기다.

 

게다가 매체로서 상하위 호환성이 뛰어나다. 모든 생명의 공통 포맷인 DNA이기 때문에 먼 미래의 재생 장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생명과 생물학이 있는 시공간이라면 DNA가 무엇인지는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오디오용 카세트테이프를 데이터 저장에 썼던 8비트 컴퓨터의 여명기처럼 애초의 용도와는 다르게 쓸 뿐이다. DNA 안에 담긴 정보가 생명의 설계도가 아닌, 컴퓨터 데이터라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DNA를 생명이 아닌 기계로 합성해 출력해 내는 일은 참으로 느리고 비싼 작업이다. DNA 메모리라는 아이디어는 오래되었지만, 그간 현실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이 기술적 병목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DNA 처리 기술의 속도와 가격은 무어의 법칙보다 빠르게 진보했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등 전통적 IT 강자들도 이 분야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고, DARPA(미국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계획국, 이곳에서 최초의 인터넷이 탄생했다.)도 이 분야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또 재미 한국인 과학자 박현준씨가 창업한 스타트업인 카탈로그도 이 분야에서 많은 조명을 받고 있는 등 수년 내로 우선은 백업 분야에서부터 DNA 스토리지는 상용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복사기 회사 리코도 성장 전략으로 DNA 프린팅을 내걸었다.

 

물론 DNA 메모리는 다른 DNA들처럼 생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겠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인류의 설계도를 미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