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도 쫄게 한 RISC-V는 리눅스처럼 용솟음칠까?

[테크]by 김국현
ARM도 쫄게 한 RISC-V는 리눅

CPU는 명령을 받아 수행한다. 그 명령이 어떠한 구조와 구문으로 되어 있는지에 관한 기술을 ISA(Instruction Set Architecture)라 한다. x86이니 ARM이니도 하는 것도 모두 결국 ISA의 종류. C언어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컴파일한다는 의미는 모두 이 각각의 ISA로 변환한다는 뜻. 그런데 이 ISA는 지적 자산이다보니, 라이센스를 받고 나서야 칩을 만들어낼 수 있다. x86 같은 경우는 라이센스조차 사실상 힘들다. 따라서 컴퓨터의 두뇌 CPU란 여전히 몇몇 큰 기업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두뇌를 만드는 기업은 애초에 따로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업계는 고정되어 있었다. ARM의 생태계가 풍성히 커졌다고는 하나 이제는 IoT와 5G 시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CPU는 스며들어 가야 할 텐데, 이대로 충분한 것일까?


CPU업계는 그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열과 전력이라는 물리적 한계의 극복이 힘들어 보였기에, CPU의 선형적 발전은 이제 어렵다는 변명도 이해는 간다. 그래서 멀티 코어화, 또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용도 등 특정 목적화하는 것이 근래의 추세였다. 그렇다면 몇몇 기업에만 CPU의 미래를 맡기지 말고, 모두가 칩의 혁신에 동참하도록 해 극단적인 다양성을 쏟아 내 보는 계기를 마련하면 어떨지 생각되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세계는 그 성공체험을 이미 겪어봤다. 바로 리눅스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에서 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마음 대로 쓸 수 있는 CPU 명령, RISC-V(리스크 파이브라고 읽는다.)가 요즈음 뜨겁다. 누구라도 RISC-V 칩을 부담 없이 설계할 수 있다. 오픈소스처럼 아무나 이를 계승하여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오픈소스 라이센스와 마찬가지로, 이를 가져다가 상용화를 할 수도 있고, 폐쇄적인 제품을 내놓아도 무방하다. 모듈화로 필요한 부분만 구현할 수도 있고, 이를 다시 확장할 수도 있는 만큼 자유도가 높다.


전산학의 명문 UC버클리에서 개발된 RISC-V는 이름 그대로 어느새 5세대다. RISC란 ‘Reduced’의 머리글자가 뜻하듯이 간소한 명령집합으로 ARM과 비슷한 계통이니(반면 x86은 대표적인 CISC, 즉 Complex한 명령군), 스마트 시대에 어쩐지 어울린다.


2018년 6월, ARM은 괜스레 쫄았는지 “팩트”를 알려주겠다며, RISC-V 대응 마케팅 사이트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스마트시대의 총아 ARM 자신도 그 위에서 돌리는 소프트웨어면에서는 오픈소스 개발자에게 의존해 왔으면서, 그 자유와 공유의 새로운 상징을 디스하는 짓은 무모한 일이었다. 결국, 내부의 반발까지 일으켜 며칠 만에 삭제돼 버리고 만다. 오히려 RISC-V란 무서운 것일지 모른다는 최적의 홍보자료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그저 대학에서 공부용으로나 쓰는 장난감이라는 느슨한 상식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혹시 그거 정말 물건인가보다 생각해 버리고 만 것이다. 생각해 보면 리눅스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장난감이었다.


지난 2월 초 브뤼셀에서 열린 FOSDEM이라는 오픈소스 행사에서도 RISC-V로 리눅스를 돌리기 위한 화제로 달아 올라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두 숟가락 한번 얹고 싶지 않을 리 없다. 특히 하드디스크 명가 웨스턴디지털(WD)사처럼, 구시대의 제조사가 아닌 데이터 컴퍼니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라면 더 절절하다. 자신들의 제품 칩에 적극 도입하고, 그 자산을 소스공개 공유사이트 github에도 공개하고 있다. 딥러닝 수퍼 프로세서를 만드는 에스페란토 테크놀로지에도 WD의 자금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국내 스타트업인 파두(Fadu)가 RISC-V 기반 SSD 컨트롤러를 만드는 등 똑똑한 연산이 어디나 필요한 시대답게 새로운 세포분열이 시작 중이다.


WD나 엔비디아처럼 구체적 제품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구글, 삼성 등처럼 미래에 대한 복안으로 구체적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은 수도 없다.


심지어 국가 정책으로 밀기도 한다. 인도는 RISC-V 생태계의 선두가 되고 싶어 한다. ARM의 세계 공장이 되어 버린 중국을 뛰어넘을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Shakti라는 칩을 만들어 리눅스를 부팅하며 즐기고 있다.


RISC-V가 꿈꾸는 CPU 설계의 오픈소스화, 과연 x86과 ARM과는 다른 제3의 길이 될 수 있을까?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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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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