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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매트릭스 20주년 기념

사이버 농업. 식물은 매트릭스의 꿈을 꾸는가?

by김국현

기술은 무르익으면 출하할 곳을 찾는다.


딥러닝에 의해 새롭게 개화해 익어가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였다.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분야들 역시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특히 농업에 인공지능을 응용하려는 시도는 줄을 잇고 있다.


딥러닝 영상인식과 로봇 기술을 결합하여, 다 익은 작물만 정확히 골라 거두어들이는 수확(收穫)로봇은 이미 상용화 단계다. 또 로봇 청소기 같이 생긴 기계가 밭을 돌면서 잡초만을 확실히 뽑아낸다거나, IoT와 접목해서 농장이나 비닐하우스의 생육환경을 미세조정하는 일등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느 틈에 벌써 AI 농업은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트렌드가 등장한다. 바로 '사이버 농업'. 사이버라는 접두어가 지닌 사이버펑크한 느낌 그대로, 식물의 입장에서의 '사이버'를 이야기하자 한다. 식물의 입장에서 지금 자신이 자라고 있는 곳이야말로 대자연의 최적지라고 착각하게 한다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자신이 지닌 역량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가상으로 만드는 것.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하려는 모습이 인간이 자기계발에 빠지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 식물판 자기계발은 AI에 의해 통제된 환경을 제공받는 점에서 다른 AI 농업과 흡사하지만, 그 환경이 꼭 농지일 필요가 없다는 점에 반전이 있다.


이제 수직 농법(Vertical farming)이나 도시 농업(Urban Farming)처럼 도심의 공장 속에서 살면서도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마치 축사에 가축이 들어가듯, 양계장 안의 닭처럼 식물들도 패키징되지만, 동물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면 감각이 없는 식물은 어쩌면 사실 마냥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것.


이 분야의 최전선은 MIT의 오픈 어그리컬쳐 이니셔티브, 즉 OpenAg 그룹이다. 최근 발표된 리포트에 의하면, 바질은 놀랍게도 24시간 빛을 받는 편이 가장 맛있었다는 것. 이런 발견은 자연에서는 도출되기 어려운 실험 조건이었지만 자동화된 온실 속에서는 가능하다. 이처럼 극단적 상황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을 적용할 수 있는 소형 자동화 온실을 '퍼스널 푸드 컴퓨터'라 부르고, 이들을 컨테이너에 모아 놓고 '푸드 서버'라 부른다. 이들 덕분에 생장을 위한 최적값을 찾아낼 수 있다. 맛과 같은 추상적인 상품성 역시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및 질량 분광법 등에 의해 수치화가 가능하니, 말그대로 입력과 출력이 있는 컴퓨터다.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개선도 이뤄질 수 있다. 특정 성분, 예컨대 바질이 당뇨에 좋다니까 그런 역할을 하는 화합물을 극대화하는 변수를 찾아내 이를 살리는 환경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셈이다.


이걸 하나의 박스 안에서 완료할 수 있고, 이를 오픈 소스로 공개하니 대규모의 반복 실험도 가능하다. 앞으로 도처에서 퍼진 이 '푸드 컴퓨터'와 '푸드 서버' 안에서 자란 식물은 마치 앱들이 각종 정보를 제조사로 보내듯이 클라우드로 정보를 보내 최적값을 연구하게 한다. 하나의 생명체가 낼 수 있는 설정치의 최대값을 뽑아낸다.


유전과 환경. 삶에 무엇이 더 영향을 미치는지는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하지만 유전적 조작 없이 환경적 조작만으로도 필요충분한 산출물을 뽑아낼 수 있다는 이와 같은 실증 연구는 이미 이렇게 태어나버린 많은 삶에게 희망을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라면, 축사에 갇혀 사는 돼지도 초원을 내달리는 멧돼지라고 착각하며 행복하게 살다 갈 수 있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주인에게 최적의 맛을 제공하며.


어쩌면 이와 같은 공학적 환경 통제는 자기계발의 원조,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긋지긋한 삶이지만 아닌 것 같다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의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최적의 역량을 발휘하는 인간의 조건을 인공지능이 계산해 마련해 두고, 우리는 그 환경 안에 우리 삶을 맡기는 미래.


이런, 벌써 매트릭스 개봉 20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