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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파란만장 메탈돔 버터플라이 키보드의 4번째 도전

by김국현

어떤 펜을 쓰는지에 따라 글씨체가 달라진다. 글씨체가 달라지다 보면 결국 문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자신이 악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인생의 펜을 만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키보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장할 수도 있다. 여러분의 글이 좀처럼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실은 키보드가 손에 맞지 않아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디지털 문방사우의 대표격인 키보드는 21세기의 지적 생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신경회로다. 그래서인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기술혁신이 이뤄져 왔고, 지금도 다양한 골자의 구조들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보통 PC에 딸려오는 가장 대중적인 키보드는 멤브레인 방식. 키보드 밑에 러버돔이라는 일종의 실리콘캡이 들어 있다. 이 돔이라는 구조는 스프링을 쓰는 기계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키보드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러버돔은 생긴 것도 촉감도 아기 젖병 뚜껑과 같아서 꾹 누르면 부드럽게 들어가면서 전기 접촉을 만든다. 키보드가 기능하게 하고 또한 키의 반발력을 가져오는 중요한 부품.


멤브레인 방식의 경우 플라스틱을 끼워 넣는 구조이다 보니 마찰에 따라 키감이 달라진다, 플라스틱과 러버돔이 세월에 따라 열화함에 따라 키감도 망가진다는 한계가 있지만, 저렴한 맛에 애용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노트북에서는 키보드를 납작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초창기 랩탑은 데스크탑 키보드 같은 도톰한 키보드가 그대로 쓰이곤 했지만, 이래서야 두께가 얇아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노트북의 슬림화를 가능하게 한 펜타그래프 방식이 등장, 대세가 되었다. 펜타그래프라 하면 마름모처럼 늘어났다 펴지거나하는 얼개를 보통 말하는데, 전철 지붕에 붙어 있는 신축형 집전장치도 같은 이름이다. 노트북의 키 하나하나 밑에도 이런 플라스틱 지지구조가 들어 있어 키의 네 구석을 받치고 있다. 따라서 키의 중심에서 벗어나 힘이 가해져도, 즉 약간 키를 밀듯이 타건해도 그 수평압력을 수직압력으로 변환할 수 있는 물리적 구조이기에, 큰 힘이 필요 없이 타이핑이 가능하다. 이 경쾌한 터치감은 중독성이 있어서, 노트북이 오히려 키감이 좋다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키보드를 더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이들이 있었다. 바로 애플이다. 애플은 다른 노트북들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X자형으로 겹쳐 놓은 펜타그래프 구조물(영어로는 Scissor-switch) 대신 플라스틱을 나비 모양으로 깎은 한 장의 플라스틱으로 지지구조를 변경했다. 바로 버터플라이 키보드다. 여기에 혁신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멤브레인이나 팬타그래프에서 쓰이던 러버돔 대신 메탈돔을 채택한 것.


실은 메탈돔은 휴대전화나 PDA 등의 버튼 등에서 오래전부터 쓰여온 값싼 자재. 솥뚜껑처럼 생긴 원형 금속의 중앙부가 휘어지면서 나오는 반발력은 그 독특한 쫀득거리는 키감을 가져다주곤 했다. 애플은 여기에 지지구조의 지랫대 원리를 더해 맥북 특유의 키감을 완성한다.


위의 세 가지 키보드 중 어떤 키감이 좋냐고 한다면 전적으로 개인적 선호의 영역이지만, 나는 버터플라이의 손을 든다. 얇으면서도 절도있는 메탈 하나하나를 넓은 키캡으로 누르는 맛은 색달랐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내구성이었다.


애플 맥북의 키보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히 한 번 눌렀음에도 두 번 눌리거나 입력이 안 되는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난 것. 버터플라이 키보드를 포기하라는 맥북 애호가들의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주 발표된 2019년형 맥북 프로에서는 또다시 버터플라이 키보드를 개량하면서 네 번째 도전에 임했다. 분명히 애플 내부에서도 버터플라이 키보드에 대한 애착이 형성된 모양이다.


똑같이 메탈돔을 채용한 아이패드용 스마트 키보드는 아마도 고장이 잘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먼지가 원인인 것으로 추측은 가능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먼지방지용으로 작년부터 끼워 넣은 보호막을 올해는 실리콘에서 나일론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메탈돔 자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요즈음 하고 있다. 메탈돔의 탄력에 의한 떨림 현상인지, 아니면 녹 등 금속의 열화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전부터 메탈돔을 쓴 기기류에서 비슷한 고장이 잦았다. 국내에서도 발매된 소니 엑스페리아 X1은 키보드의 열악한 내구성으로 악명이 높았다.


버터플라이는 세대별로 정말 미묘하게 키감이 다르다. 약간 몽글거리는 1세대에서 절도감이 지나치게 강조된 듯한 2세대, 그리고 먼지막이를 설치한 부대 효과로 다소 정숙해진 3세대까지.


메탈돔과 보호막에 신소재를 채택한 4세대의 키감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키감이란 사실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것으로, 구매 전에 이름 석 자만 쳐보지 말고, 최소한 애국가 1절까지는 타자해보도록 하자.


기분 좋은 키보드를 만나는 일은 번잡한 일이다. 키캡의 재질에 따라, 지지구조의 자재에 따라, 그리고 그 밑 돔의 탄성에 따라 미묘하게 손끝의 키감은 달라진다.


나도 한때는 고전적인 싱크패드 600시리즈의 키감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클래식 테크놀로지를 고집한 적이 있었으나, 신기술은 늘 새로움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았다. 한번 광에서 싱크패드 600을 꺼내 타이핑해봤으나, 아무리 구관이 명관이래도 역시 전자제품은 새것만 못하다.


타이핑 하는 일에 매너리즘을 느낀다면 올봄에는 키보드를 한 번 바꿔보도록 하자.


아, 그런데 이번 회에서는 스프링을 채용하는 기계식(정전용량접점식 포함)이라는 위험한 장르의 소개가 빠져 있다. 본격적인 키보드 마니아로의 도락은 다음 기회에 탐색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