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 원짜리 애플 모니터 스탠드의 행동경제학

[테크]by 김국현

얼마 전 SNS에서는 한국어로 주문하면 벌금 500원을 받는다는 일본식 선술집이 빈축을 사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주인장의 의도는 벌금은 기부하고 문화체험을 시켜준다는 것인데, "일본어로 주문하시면 500원 할인"이라고 했었다면 분위기는 달랐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옵션이 나타날 때, 우리는 그 가격을 뜻밖의 지출, 즉 손실로 인지하기 쉽다. 한국어로 주문할 권리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500원이라도 가격이 붙으니 황당한 일이다.


500원이라면 모를까 가격마저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바로 애플의 999달러짜리 모니터 스탠드, ‘프로 스탠드’의 이야기다. 999달러라고 하면 체감이 덜한데, 최근 환율을 적용하면 거의 120만 원이 된다. 음, 모니터는 빼고 스탠드만 120만 원.


함께 발표된 모니터 가격 4999달러(매트한 질감의 화면을 원하면 5999달러)가 잠시나마 싸 보이는 명품 프라이스다. (그래서인지 발표회장에서는 이 제품 발표 때 신음에 가까운 탄식이 흘러나온 낯선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만약 스탠드를 언급하지 않고 그냥 6,000달러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대신 스탠드를 사지 않으시면 특별히 999달러 대폭 할인이라고 하면 어땠을까? 지금도 가전 대리점에 가면 그 정도 가격의 TV는 얼마든지 있는 마당이기에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세분하여 추가로 판매되니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이다.


“어, 잠깐, 이 기능이 이 가격이라고?"


컴퓨터의 다른 옵션인 CPU의 코어수라든가 SSD 용량은 작업자의 생산성과 그럴듯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런데 스탠드는?


파리 패션 위크도 아닌, 무려 이름도 세계 개발자 회의인 WWDC에서 발표된 만큼, 작업공구의 하나일 텐데, 설비 투자와 생산성과의 함수가 도무지 낯설다.


물론 모든 가격에는 설명이 있을 수 있다. 그 공예적 완성도라던가 엔지니어링의 정성스러운 구조, 아니면 요즈음 같은 시대에는 인스타그램 한 장을 위해 120만원 쯤 얼마든지 낼 수 있을 사람들도 있다. WWDC에서 발표는 되었지만, 전혀 ‘프로’나 개발자를 위한 제품은 아니어도 좋다. 럭셔리의 세계는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여러분 팀원이 올린 구매요청서의 이 999달러는 쉽사리 결제해 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올리는 사람 입장에서도 사유를 쓰는 데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120만 원으로 모니터를 세워 두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


묻어 있다가 할인되면 기뻐할 가격도, 쪼개져 따로 파는 순간 정신을 차리게 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옵션 프레이밍 효과라고 부른다. 프레이밍 효과란 느낌이 달라져 의사 결정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인데, 옵션을 더 해 나가는 프레이밍에서는 옵션 추가를 금전손실로 인지하여 옵션을 추가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풀 옵션에서 원치 않는 옵션을 제거해 가는 편이, 베이스모델에서 원하는 옵션을 추가할 때보다 결국 더 많은 옵션을 선택하곤 한다는 것. 이미 1999년에 등장한 국내 논문에서도 옵션은 제거해 나가는 편이 더 판매자에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제품의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고 옵션에 더 큰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 이처럼 옵션을 삭제해 가는 프레이밍에서는 옵션 삭제를 효용손실로 인지하여 옵션을 좀처럼 삭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옵션을 추가하라고 하는 프레이밍보다 옵션을 삭제하라는 프레이밍에서 옵션 선택 수 및 상품 총 가격이 높게 나타남은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옵션의 효용이 모호하고 가격마저 비싸다.


베이스모델에서 옵션을 더하는 상황에서는, 금전적 손실을 얻을 수 있는 효용과 비교하게 된다. 즉, 내 주머니에서 사라지는 120만 원과 모니터를 세우는 일의 효용을 비교한다. 어딘가 배가 아프다.


반면 풀 스펙에서 빼 나가는 상황에서는, 사라지는 효용을 할인으로 보는 득과 비교하게 된다. 스탠드만 집에 있는 것을 쓴다면 120만 원 득을 보니 '꿀이득'이라고 여기게 된다(안타깝게도 애플의 이번 제품은 VESA 어댑터를 200달러나 주고 사야하지만). 그런데 어차피 이 정도 돈을 쓰는 이들은 허세를 포함한 미적 효용을 중시하기에 그냥 다 사고 말지도 모른다. 이미 들어 있는 옵션은 자신이 소유하였다 느끼며 현 상태에서 변하려 하지 않는 현상 유지 편향이 작동된다. 손실이란 금전이든 효용이든 거북한 일이다.


이처럼 999달러 스탠드의 별도 판매란 행동경제학적 상식에 반한 옵션 프레이밍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사실 애플스토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맥 구매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베이스모델에서 추가해 나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왜 그럴까?


그건 풀 옵션의 제품을 굳이 팔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다. 베이스 모델은 말 그대로 기본, 즉 다른 PC와의 가격비교를 위한 준거로 작용하기도 하고, 동시에 수율을 고려할 때 양산해서 팔아야 할 목표 모델이라서다. 메모리와 SSD의 가격은 용량이 올라갈수록 급증하지만 마진 증가는 그러한 소비자 부담만큼 크지가 않다.


앞선 일본식 선술집의 경우도 500원을 할인해 주는 옵션 삭제 프레이밍을 선택했다면, 옵션 삭제가 효용의 손실, 즉 한국어로 주문할 권리를 잃는 일이기에 대개의 고객은 옵션을 삭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매출(또는 기부금)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500원씩 전부 올라 가격경쟁력을 잃을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즉 치열한 경쟁 시장일수록 적정가의 베이스모델을 많이 팔고, 꼭 원하는 이들을 위한 옵션 추가가 팔기가 쉬워 보인다.


하지만 999달러의 옵션 제품은 이미 경쟁 가격을 고려해야 할 양산품 카테고리가 아니다.


애플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PC의 저가화, 소모품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 속에서 애플은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3세대 라이젠과 함께라면 499달러 칩으로도 12코어 24 스레드의 괴물 같은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 시대가 2019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맥 프로는 기술 기업에서라면 개발자들에게 사주곤 하는 제품이었으나 올해부터는 그 노선에서 벗어나고 있다. 프로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프로에게도 부담스러운 제품이 되고 있다.


고가 상품답게 상식적 옵션 프레이밍을 했어야 하는데, 추가 옵션을 분리해 버리는 바람에 이 프로 스탠드는 섣불리 사줬다가는 투자자들에게 빈축을 살 사치품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행동경제학의 교과서적 내용을 애플이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애플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다른 제품들이 줄곧 옵션 추가 방식이었으니 상관없을 것이라는 타성일지, 애플은 뭐를 내놔도 팔릴 만큼은 팔릴 것이라는 자만일지 알 수 없으나, 애플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반전처럼 이 또한 의도된 것일까? 이런 물건을 이런 식으로 내놔야지, 화제가 되고, 모두가 이 이야기를 하고, 급기야 이런 만평도 나오는 법이니까.


행동경제학적으로 약간 속은 것 같다.​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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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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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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