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테크 ]

도그푸딩. 애사심이 반찬이지요.

by김국현

경쟁사 제품을 쓰지 말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내부 메모가 공개되며 해외토픽이 되었다.


특히 최근 상장할 정도로 급성장한 슬랙(Slack)과 같은 가상 작업장 소프트웨어가 문제였다. 어느 직장이나 오프라인의 소통은 점점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었는데, 온라인 소프트웨어의 특징은 쏠림 현상이 빠르다는 점이다. 한 번 대세가 된 제품답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 기업 내에서도 꽤 쓰였나 보다.


이제 협업의 경계가 기업 내로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파트너 또는 오픈소스 기여자들과의 공동작업이 필수가 된 시대이기에 주류가 되어 버린 협업 플랫폼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지금은 스마트폰 탓에 업무 방식의 공사(公私) 구분 또한 모호한 시대다.


하지만 경쟁사 제품이니 쓰지 말라고 하는 듯한 뉘앙스로 들리지 않을 수 없으니 세태를 거스르는 지령인 듯 화제가 되었다. ‘역시 MS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오래간만의 감정적 반응 또한 흘러나왔다.


그런데 원래 기업이란 그런 곳이다. 모든 클라우드가 망라적으로 금지된 국내 대기업 및 공기업들에 비교하면 애교다. 직원이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모든 직원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다. 능력도 충성심도 그리고 조심성과 꼼꼼함도 모두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본의 아니게 기업으로서 꼭 지켜야 할 것이 흘러나가 화를 자초하는 것보다는 융통성 없다고 욕먹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고 파일을 공유할 제품도 없으면서 클라우드를 막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을 아예 하기 힘들게 만들어 생산성을 떨어뜨리니 말이다. 그러므로 자사에 있는 것은 자사 것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없다면 자체 보안성 검사를 통과한 것만을 쓰게 하는 것이 규모 있는 기업의 상식적 규제일 것이다.


캐쥬얼하게 쓸 수 있는 협업 플랫폼은 무료에서 시작하게 하므로 쉽게 시작하여 깊이 중독되게 마련이다. 현재의 1등 제품을 남들 쓴다고 모두 함께 쓰다가는, 자사 제품은 자라날 수 없고 점점 더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다.


도그푸딩(dogfooding)이라는 일종의 IT의 문화가 있다. 자사가 만든 제품을 실업무에 쓰자는 것인데, 마이크로소프트가 한창 성장하던 88년 “우리 개밥은 우리가 먹자(Eating our own dogfood)”라는 한 통의 이메일에서 시작되었다. 어원은 명확하지 않다. 70년대 어떤 개밥 업체의 광고 모델이 자신의 애견에게 먹인다는 설정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주주미팅에서 자기네 개밥 제품을 먹던 또 다른 개밥 업체 회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적어도 IT 업계에서의 확산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구글, 페이스북 등 복도에서 도그푸드를 독려하는 포스터들이 당연히 목격될 만큼의 직장인 교양이 되었다.


우리 제품을 우리가 쓰지 않으면 누가 쓰겠는가, 실업무에서 실전 테스트를 하게 되니 절호의 QC가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마케팅의 전제가 된다. 우리도 안 쓰는 제품은 누구에게도 팔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은 금융에서도 유의미한데, 자기 돈이 들어간 상품의 수익률이 더 높다는 것은 정설이다.


하지만 덜 만들어진 제품을 쓰느라 당면한 생산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생산성 하락에 대한 걱정은 당장 자기 조직의 단기적 목적에 충실하기 쉬운 팀들에게는 자기가 편한 타사 제품을 쓰기 위한 가장 좋은 핑계가 된다. 가끔 도저히 쓸 수 없는 덜 익은 제품을 '우리가 남이가' 하며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민폐 자사품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더 좋은 변명도 있다. 경쟁사 스터디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경쟁 제품을 쓸 줄도 모르고 어찌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잘못하면 충성심을 가늠하는 잣대에 역으로 걸리기도 한다. 비슷한 변명 등을 구사하며 국내 전자 회사 내에서도 아이폰을 쓰는 이들은 적지 않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임원이 보기에 어떤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될지 생각하면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법일 것이다.


회사 다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