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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자판기폰 KaiOS 는 어떻게 세계 3위의 폰 플랫폼이 되었나

by김국현

복점(複占, duopoly)이라는 단어의 대표적 사례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든다. 너나 할 것 없이 안드로이드 아니면 아이폰이니, 고인 물 그대로 1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3위의 자리는 없었다. 천하삼분지계를 노리고 많은 이들이 뛰어들었지만, 빈손으로 패퇴해 갔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막대한 손해만 보며 망해나갔을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오죽했겠는가. 2015년 말 모질라의 파이어폭스 OS도 백기를 든다. 오픈 웹의 선구자 파이어폭스가 꿈꾸던 웹 세상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다. HTML5 기반의 저렴한 대안 스마트폰을 꿈꿨지만, 안드로이드의 가성비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고, 플레이스토어에는 별의별 앱들로 넘쳐났다. 어설픈 열린 웹이 치밀한 닫힌 앱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구글에도 고민은 있었다. 점유율로는 안드로이드가 세계를 점령한 것 같았지만, 수적으로는 아직 무려 30억이나 되는 인구가 인터넷에조차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전기마저 사치인 지역에서는 PC도 인터넷도 그저 꿈이다. 안드로이드폰이 아무리 싸다 해도 한 10만 원은 하니, 도저히 무리다.


구글의 입장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인터넷으로 불러들이고, 그들이 검색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안드로이드의 존재의미였다. ‘넥스트 빌리언’, 즉 다음 10억 명의 인구를 위한 마케팅으로, 안드로이드의 경량 버전인 안드로이드 고(Go) 등을 내놓게 된 이유도 그랬다. 그러나 구글은 영리하게도 안드로이드 고가 잘 안될 경우를 위한 백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그리고 정말 잘 안되었는데), 그 실체는 바로 파이어폭스 OS의 후예들이었다.


파이어폭스 OS를 채택해 봤던 얼마 안 되는 제조사 중 하나였던 중국 TCL은 오픈 웹의 가능성이 내심 아까웠다. 그래서 미국에서 별도 법인을 만들도록 투자하고 파이어폭스 OS를 만들던 30여 명을 데리고 온다. 바로 KaiOS의 탄생이었다. Kai라는 이름 자체가 중국어 개(開)에서 유래했는데, 오픈에 대한 집착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인터넷을 아직 모르는 30억 명이었다.


이후 220억 원 규모의 펀딩이 구글 주도로 주입되는데, 수혈된 것은 돈뿐만이 아니었다. 지메일에서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구글의 가장 핵심적인 생태계가 적극적으로 탑재되니 분명 사양은 피처폰임에도 느낌은 제법 스마트폰스러워진다.


이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는데, KaiOS는 오픈 웹의 철학에 맞게 대부분이 웹 기반으로 구동되므로 이미 웹 기반의 플랫폼이 기본인 구글의 서비스들이라면 이식이라 할 것도 없다. 게다가 완전체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PWA까지 지원하므로 웹을 앱처럼 쓸 수 있고, 스토어까지 마련되어 있다.


파이어폭스 OS가 안드로이드와 싸우겠다고 달려들 때는 우스워 보였겠지만, 망한 뒤에 다시 보니 구글의 눈에는 안드로이드가 못하는 일을 해줄 수 있는 가볍디 가벼운 그럴듯한 웹 운영체제였다. 지난 5월에는 5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추가 펀딩에까지 구글과 TCL은 다시 참여하게 된다.


단돈 2~3만 원으로 살 수 있는 21세기의 ‘스마트’ 피처폰은 그렇게 탄생한다. 큰 화면을 포기하는 대신 더 튼튼했다. 배터리도 오래가서 충전 없이 1주일은 거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맵과 구글 어시스턴트도 되니 스마트한 기분이다.


인도의 JioPhone은 수천만 대가 팔리며 대박이 나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자판기에서 살 수 있는 7달러짜리 WizPhone이 등장했다. 어느새 전세계적으로 8천만 대의 KaiOS가 가동 중이다. 3위라고는 하나 보잘것없는 수치다. 하지만 미개척 시장이 29억이나 남아 있다.


국내에도 작년 말에 정발된 노키아 바나나폰이 KaiOS 기반인데, 한글화도 얼추 되어 있다. 아직 10만 원은 넘으니 인도나 인도네시아급의 가성비는 아니지만 다른 스마트폰에 비하면 싸다.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카톡이 안된다는 장점 때문에 학생용 공신폰 등으로 수요가 조금 있는 듯하다.


카톡은 안 되지만 영리한 글로벌 기업들은 KaiOS를 버리지 않았다. 구글도 은근히 개발 리소스를 측면 지원중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이제는 어설프지만 그래도 무리 없이 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인도에서는 공무원에게 민원도 트위터로 넣는다고 한다. JioPhone에서도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SNS라서다.


애초에 웹 기반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고, 웹 기반의 보편성이란 이렇게 질기다. 앞으로 어느 무엇이 독점하고 복점을 하더라도, 그렇게 또 웹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