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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거친, 또는 매끈한 기계의 피부를 보고 만지는 날에.

by김국현

삼성은 올해 액정보호지 때문에 적잖은 수난과 수모를 겪고 있다. 지난봄 갤럭시 폴드 출시 때는 공장에서 잘 붙여준 보호막이 아무리 봐도 뜯어내야 할 것으로 보이는 보호지로 보이게 해 리뷰어들이 너도나도 뜯어내려다가 사달이 났었다.


이번에는 갤럭시 신작들의 최첨단 초음파 지문 인식 기능이 아무 지문으로도 심지어 고구마로도 뚫린다고 아우성이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이번에도 문제는 액정 보호 필름이었다.


사용자들이 폰을 사자마자 으레 붙이곤 하는 사제 액정 보호 필름이 원인인 듯한데, 특히 우레탄 재질은 유리와 달리 화면 위에 미세하고 반복적인 패턴을 만들 수밖에 없을 터, 그 위를 눌러 지문 등록을 하게 되니 마치 고무장갑을 끼고 지문 등록을 한 효과를 만들어 낸 것. 그렇게 등록된 지문 정보는 이제 남의 손가락으로 심지어 고구마라도 지문 인식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고객님, 우레탄 고무장갑을 끼시고 손가락 등록하셨으니 남의 손으로도 아니 소시지로도 뚫리는 것은 당연하다며,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은 제조사의 마음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음 또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새 폰에는 액정 보호 필름 한 장 붙여주는 것이 대리점의 정이었고, 소비자도 새 폰을 샀으면 마치 의식처럼 새 액정 보호지를 찾아 나섰다. 지문방지니 올레포빅이니 사람의 피부와 기계의 피부가 맞닿는 일에 관해 소비자들은 다양한 트렌드를 만들어 오며 취향 혹은 집착을 가져 왔다. 왜 쿨하게 ‘쌩’으로 주어진 대로 쓰지 않냐며 궁금해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로시 vs 매트

사실 액정(液晶)은 그 이름만큼이나 연약한 것이기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 공장에서부터 보통 플라스틱이나 유리가 덮이곤 한다. 이 선천적 피부 구조의 질감 또한 패널만큼이나 중요하다.


이제 립스틱 포장에서 자주 보이던 바로 그 용어 ‘그로시(glossy)'와 ‘매트(matte)’가 등장할 차례다. 전자는 투명해서 윤이 나 유리 느낌 그대로를 살리고, 후자는 논글레어(non-glare)라고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눈부심을 억제하도록 균일한 미세 엣징(산화부식)처리가 되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마치 립스틱의 질감처럼 기호의 영역이기도 했는데, 최근 제품에는 유리 느낌이 유독 많다. 그 이유는 디스플레이가 초고해상도가 되고 고도화되면서 극세 화질과 절대적 색감이 차별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표면을 거칠게 만들어 빛을 반사하는 ‘간유리’ 계열은 정작 잘 보여줘야 할 화질 또한 깔끔하게 투과시키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스펙 수치상 손해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최근 제조사들은 유리 타입을 선호하게 된 듯하다. 표면에 형성된 거친 입자보다 간유리 뒤의 픽셀이 더 작아지는 시대인만큼 어쩔 수 없다.


실제로도 극단적으로 화질이나 색에 민감해야 하는 직업일수록 그로시가 바람직한데, 일례로 유방암 진단 장비는 모두 투명한 화면 너머를 응시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도 많다. 고급형 게이밍 모니터는 매트형이 많은데, 그 이유는 실세계가 반사되는 것만큼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베젤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 반사를 없애기도 하는데, 갑자기 떠오른 내 얼굴에 ‘확 깨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전자책도 대부분 매트 계열이다. 책 위에 내 얼굴이 떠다닌다면 스토리텔링에 집중이 될 리 없다.


또한, 화면을 만져야 하는 경우에도 유리가 지닌 매끄러움이 방해가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펜 태블릿인데, 애플 펜슬은 그 자체로는 훌륭하지만, 유리에 연필로 쓰는 느낌만큼은 많은 디자이너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경합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와콤 태블릿은 매트한 질감이 자랑이다. 즉 마찰력을 늘려 종이 질감을 흉내 내고 있고 사각사각한 느낌은 중독성마저 있다.


아이패드에서 그 느낌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페이퍼라이크’라는 범주의 액정 보호지를 몇만 원이나 주고 붙이곤 한다. 하지만 이걸 붙이면 얼마나 화질이 급강하하는지는 이걸 때어 낼 때야 비로소 체감한다. 또 화면을 거칠게 한 대가는 펜촉에 돌아가 금새 닳아 버리곤 한다. 애플의 펜촉은 와콤보다 비싸다.


이와 같은 피부 질감의 차이는 이미 짭짤한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 애플 맥 프로의 무려 $4,999 Pro Display XDR은 공장에서 이미 반사 방지 코팅을 해주는 듯한데, 여기에 다시 1000 달러만 더 내면 나노텍스처라는 무광택 옵션을 살 수 있다. 스탠드 가격 1000달러가 싸 보이는 순간이다. 로컬 디밍으로 칠흑의 어둠이 찾아와도 이제 내 얼굴은 비치지 않는다.


그런데 거실 TV만큼은 그로시한 글레어 유리 느낌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우선 그 위에 글씨를 쓸 일도 없고, 반사력이 좋으면 간이 거울 대용으로 쓸 수도 있다. 볕이 잘 드는 날에는 집도 약간 넓어 보이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갤럭시 지문인식 소동 덕에 디스플레이의 피부 질감은 단지 뷰티나 패션의 문제가 아니라, 보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피부 기관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이 잡은 손을 알아보는 우리들처럼.


갤럭시 폴드의 경우에서처럼, 이제 첨단 제품은 액정 보호지 따위 사지 말고 순정 그대로 주는 대로 써야 하는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어주었을까 하며.


스마트폰 이전의 PDA 시절, 통장비닐 액정보호지가 유행해서, 은행에 비닐을 얻으러 간 기억이 난다. 가까운 미래에는 지금의 액정보호지 또한 그렇게 궁상맞은 추억으로 기억할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