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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노이즈 캔슬 에어팟 프로, 역위상의 인생론.

by김국현

최근 노이즈 캔슬 이어셋 시장이 뜨겁다.


노이즈 캔슬 기능은 종래의 헤드폰 위주 제품에서 이어폰으로 확산 중인데, 이번에도 시장 숙성의 신호는 애플의 참전이었다. 소문이 무성하던 에어팟 프로는 30만 원을 마음껏 넘는 고가로 등장했다(물론 한국의 출시는 늦어져서 내일).


노이즈 캔슬 기능이란 그리 첨단 기능은 아니라 민생 가전에서의 역사가 깊다. 1936년에 특허가 처음 나왔고, 50년대 부터 헬리콥터나 비행기 조종석에서의 활용이 활발히 연구되었다. 기술도 충분히 대중화 되어서 AA 배터리를 넣어 쓰는 오래된 중국산 사은품도 비행기 기내에서 귀신 같이 잡음을 날려 줄 정도다.


그 기본 원리는 음파라는 소리의 파도에서 시작한다. 듣기 싫은 음파의 정확히 반대 음파, 즉, ‘역위상(Anti-phase)' 음파를 충돌시키면 상쇄가 일어나 제로로 만들어 버린다. 바깥쪽을 향한 마이크가 주변 소음을 읽어 들여 재빨리 역위상 신호를 만든 후 이를 잡음과 합해 ‘잡음’을 ‘취소'시키는 것. 그 위에 음악을 토핑처럼 더하면 정적 속에서 뮤지션의 음색이 숨결과 함께 전해져 오니 다른 세계의 음질로 느껴진다.


마이크와 스피커와 적절한 회로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도 그렇다. 웅웅거리는 낮은 대역의 반복적 잡음에 강하고 사람 목소리와 같이 간헐적이고 높은 대역의 소리에는 약하다는 기술적 특징도 고가와 저가 제품에서 대개 큰 차이가 없다. (극적인 효과가 높은 곳은 역시 비행기 안이어서 주된 홍보 영상의 배경이 되곤 했다.)


그래도 제품 차별화는 일어나는데, 최근의 지향점은 노이즈의 기계적 차폐만은 아닌 듯하다. 노이즈 캔슬은 기본적으로 바깥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막아야 하기에 그 특유의 귀마개적 불편함과 거북함이 있다. 노이즈 캔슬 이어폰은 대개 커널형으로 귀를 꼭 막곤 한다.


하지만 에어팟 프로의 경우 통풍구를 마련하여 기압에 의한 밀폐상태가 주는 불쾌감을 해소하려 든다. 노이즈 캔슬된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 사이의 전환이 비교적 위화감 없이 진행된다는 점을 제품 특장점으로 삼고 싶어 하는 듯한데, 이를 위해 마련된 장치 중 하나다.

역위상의 마법

역위상이란 음향 믹싱의 세계에서는 ‘역상’이라는 업계 용어로 불리는 흔한 일이다. 다양한 음원이 배합될 때 소리가 상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공연장에서도 마이크 배치 및 믹서의 설정 잘못으로 텅 빈 듯 맥 빠진 사운드가 홀 내를 잠기게 하는 아는 사람은 아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살려야 할 사운드가 노이즈처럼 캔슬된 것이다.


180도의 역위상은 잡음을 사라지게 하지만, 적절히 차이가 있는 위상들의 조합은 공간과 입체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위상차의 마술을 교묘히 이용하여 오히려 공간감을 만들어 내는 기법은 애용되기도 한다. 돌비 서라운드도 결국은 이 위상 차이를 이용해 입체감을 만드는 기술이다. 큰 홀에서 있을 수 있는 그 차이를 좁은 공간에서 가상으로 연출한다.


고교 물리에서 배운 파동의 간섭. 다른 파동의 물결을 겹치면 심하게 진동하는 곳도 생기고, 서로 부딪혀 약해지는 곳도 생긴다. 그리고 언젠가 역위상을 만나면 무위(無爲)로 돌아가기도 한다.


지우고 싶은 잡음은 세상 곳곳에 있다. 고가의 오디오 기기에는 자신이 증폭하는 신호에 있을 수 있는 노이즈를 제거하는 방편으로 이 역위상을 활용한 얼개가 들어 있곤 한다.


각종 소음 저감 기술에도 활용될 수 있어, 차내나 실내 소음 대책에도 쓸모가 있다. 킥스타터에서도 위스퍼(Whisper)라는 제품이 몇 년 전 건물용으로 나왔는데, 펀딩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우리 신체에도 이러한 기술은 장착되어 있다. 우리 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안구는 역위상으로 위치 조정을 하고 있다. 짐벌(Gimbal)이나 손떨방(OIS)의 보정 기능도 결국 원리는 마찬가지다.


인생은 가끔 예측 불허의 파도를 보내오곤 한다. 인생의 어떠한 파고도  휩쓸리며 증폭되지만 않으면, 다른 위상으로 생각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보정 가능하다. 완벽하게 막지는 않더라도 그 보정된 결과가 서라운드 음향과 같이 뜻밖의 효과를 주기도 한다.


세상의 잡음이 나를 괴롭힐 때 그 정반대로 행동해 보는 것도 좋고, 내 생각과 180도 다른 이를 만나 보는 것도 좋다. 인생의 너울은 고교 물리와 같이 알 수 없는 법이다.